[#053/054] 홍준표 대구시장, ‘신천지’와 ‘이슬람’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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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머리에 대한 강렬한 인상에 이끌려 15년 전에 봤던 영화를 다시 꺼내 틀었다. <파리대왕>에는 조난 당한 소년들이 돼지머리를 잘라 괴물이 나올 것 같은 동굴 앞에 떨면서 바치는 장면이 나온다. 무인도에 갇힌 소년들이 보여주는 인간 본성에 대한 이야기로 봤는데 이번에는 폭력이 자라나는 과정에 특히 몰입됐다.

조난 사고로 무인도에 도착한 소년들은 정착 초기 협동하며 주어진 사회에 적응해간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발생하는 여러 문제에 대한 견해 차이가 누적되면서 결국 소년들은 두 무리로 나뉜다. 악의는 사소한 차이에서 빚어진다. 몸이 비교적 둔하거나 유약한 성격을 가진 소년들은 점차 무리에서 배제된다. 급기야 약한 무리를 약탈하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약탈하는 무리의 얼굴에 피칠갑이 짙어진다. 피칠갑이 온몸에 퍼져나갈 무렵, 소년들은 결국 약한 소년들을 해친다.

영화에서 돼지머리는 결국 그들도 두려웠을 뿐이란 걸 보여주는 상징이다. 어두운 동굴이 무섭고 기약 없이 방치된 시간이 두려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소년들의 피칠갑이 짙어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점이다. 파국은 사소한 차이들이 오랜 시간 조율되지 않고 누적된 결과다. 시스템의 부재로 인한 파국적 결말을 지켜본 관객은, 소년들에게 죄를 물어야 한다거나 악행에 대한 책임이 오롯이 소년들에게 있다고 느끼진 않을 거다.

▲대구 북구 대현동 이슬람 사원 건축지 진입로에 돼지머리가 놓여 있다

10월 대구 북구 대현동 이슬람 사원 건축지에 돼지머리가 놓였다. 11월 하나가 두 개로 늘었다. 그동안 먼저 놓인 돼지머리는 부패가 진행됐고 파리가 날렸다. 돼지머리가 놓인 골목. 사원과 주민들의 생활공간이 얽힌 그 골목은 전과 다른 공간이 된 듯 했다. 사원 건축을 두고 대립하는 상황도 새로운 단계로 들어섰다.

현실이 무인도가 아니라면 갈등을 중재할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더 파국으로 치닫기 전에 답해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 중 한 명인 홍준표 대구시장은 최근 처음으로 이슬람 사원 건축 갈등 문제와 관련한 공식적 언급을 했다. 홍 시장은 20일 열린 신천지 종교행사와 관련한 ‘청년의꿈’ 질문에 대해 “북구 이슬람 사원 신축을 막을 수 없듯이 (신천지 행사는) 헌법상 종교의 자유 영역”이며, “대구시, 경찰, 소방 합동으로 방역, 안전, 경비에 만전을 기할 것”이라고 답했다. 신천지 행사를 막지 않고, 나아가 사고에도 대비하겠다는 결정은 홍 시장의 용기 있는 결단이다. 행사에 절차적 문제가 없다면 애초에 금지할 권한도 없긴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과거 소동을 생각하면 상당한 정치적 부담을 감수한 결정이라 짐작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원칙이 이슬람 사원 건축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돼야 한다는 점이다. 사원 건축을 “막을 수 없는 것”이라고 하면서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에는 개입하지 않는다면, 이는 시민들을 무인도에 버려두는 꼴이다. 방치로 인해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대한 책임은 홍 시장에게도 있다. 반대로 정치력을 행사해 문제를 풀어낸다면, 홍 시장의 성과도 될 것이다.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