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산 땅이 알고보니 국유지’···군위 돌담지구 부동산 사기 의혹 ①

투자자도 모르는 조합 설립···새마을금고 이사장의 투자 권유
믿음의 근거 “오래 봐서”, “이사장이니까”
‘믿는 도끼’가 찍은 발등, 계약한 땅이 국유지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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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이진숙(가명, 61)씨는 오래 알고 지낸 새마을금고 이사장으로부터 솔깃한 이야길 들었다. 경북 군위군에 좋은 땅이 있는데, 사두면 얼마 가지 않아 2~3배는 가치가 뛸 거라는 이야기였다. 이 씨는 오래 봐온 이웃이자, 새마을금고 이사장이라는 그의 경력을 믿고 투자를 마음먹었다. 부동산 투자라는 건 모르고 살아온 그였기에, 투자는 이사장에 대한 신뢰에 기반했다.

같은해 5월경 이 씨는 이사장의 처를 매도자로 해서 부동산 매매 계약을 맺었다. 매매 대상 토지는 군위군 부계면 대율리 산 5-1번지 외 8필지. 산 5-1번지 외의 다른 필지는 주소지조차 확인하지 않았다. 계약서에 기재된 이 씨 취득 토지 면적은 565평, 매매 대금은 모두 1억 2,430만 원이다.

▲이진숙 씨가 2012년 새마을금고 이사장 처를 매도자로 해서 체결한 계약서. 계약서에는 대율리 산 5-1번지 외 다른 필지를 확인할 수 없고, 확인되는 산 5-1번지는 군위군 소유 국유지로 확인된다.

그 후 수년이 흘러서야 이 씨는 속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유일하게 주소지를 알았던 산 5-1번지는 군위군 소유 국유지다. 그가 실제 등기된 토지는 1,200평이 조금 넘는 대율리 233번지인데, 그마저도 22명이 지분을 쪼개 등기된 상태다. 이 씨 지분은 4/74, 68평이 조금 넘는 수준이다. 알고 보니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이가 한둘이 아니었다. 그들 14명은 지난해 12월 검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피고소인은 이 씨에게 투자를 권한 새마을금고 이사장 A 씨를 포함한 4명이다. 이들은 부계면 대율리 일대에서 전원마을 조성사업을 한다며 조합까지 설립한 상태다. 피고소인 중 1명은 이 조합의 조합장 B 씨고, 다른 2명은 다른 투자자를 모은 C 씨와 그의 처 D 씨다. C 씨와 D 씨는 대구시의원을 지낸 지역 유지다. C 씨는 현재 한 지역농협 조합장이고, D 씨는 대구시 산하 공공기관장을 지내기도 했다. 고소인들은 그들의 경력과 지위를 믿고 투자했다고 말하고 있다.

투자자도 모르는 조합 설립
참석자도 모르는 회의 발언
“내가 그렇게 말을 조리 있게 하는지 몰랐다”

“조합규약 변경에 관한 안건을 논의하겠습니다. 변경된 사항에 대해 설명 해드렸는데 조합규약에 대해 의견이 있으시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돌담지구 전원마을정비조합장 B 씨가 말하자, 이진숙 씨가 손을 들고 발언권을 요청했다.

“자세한 설명 감사드립니다. 조합규약의 경우 앞서 조합장님께서도 말씀하셨듯 자치법과 같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시공자 선정 건에 있어서도 마을정비조합에서 선정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2013년 대구 신천동 모처에서 이뤄진 것으로 기록된 돌담지구 전원마을조합 총회 회의록. 회의록을 보면 이진숙 씨가 참석해 발언까지 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붉은 박스안), 이 씨는 회의의 존재 여부도 알지 못한다.

2013년 2월 20일 저녁, 대구 동구의 한 토목설계업체 사무실에서 열렸다는 돌담지구 전원마을정비조합 총회 회의록의 한 단락이다. 지난 15일 만난 이 씨는 해당 단락을 읽어주며 회의 참석과 발언 내용에 대한 기억을 묻자, 허탈한 웃음부터 보였다.

이 씨는 “저는 직장 때문에라도 회의 같은 걸 참석 할 수 없었다. 평일엔 아예 못 간다”며 “제가 그렇게 말을 조리 있게 잘 했다고 하니, 믿어지지가 않는다.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자기들 임의대로 쓴 것 같다”고 회의에 참석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회의록으로 남아 있는 회의에는 이 씨 외에도 류경희(가명, 70), 전미진(가명, 65) 씨 등도 참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류 씨는 “회의 다운 회의를 한 적이 없다”며 회의 사실이 없다고 말했고, 전 씨도 “조합 총회 이런 건 없었다”며 “대여섯 명씩 모아서 돈 내라고 한 적은 있다”고 말했다.

2015년 6월 24일 경북 군위군은 군보를 통해 부계면 대율리 산 5번지 일원의 생활환경정비사업 기본계획 수립을 고시했다. 이른바 ‘돌담지구 신규마을 조성사업’이 공식적으로 대외에 알려진 시점이다. 이 씨나 류 씨, 전 씨가 참여한 적 없다고 말한 회의는 돌담지구 신규마을 조성사업을 추진하는 조합 총회다.

돌담지구 신규마을 조성사업은 농어촌정비법에 따라 추진됐다. 정부는 애초 시장, 군수, 구청장, 농어촌공사가 할 수 있던 생활환경정비사업을 마을정비조합 등 민간인도 할 수 있도록 개정한 법을 2010년부터 시행했다. 법률 요건만 충족하면 민간인도 농어촌의 산이며 들을 전원주택단지로 조성할 수 있게 됐다.

2014년 군위군이 작성한 ‘정책실명제 사업관리이력’ 문건을 보면 돌담지구 조성사업은 2012년부터 본격 추진됐다. 그해 7월 전원마을 건립 추진위원회가 결성됐고, 같은해 11월에 조합원 26명으로 조합 설립이 인가났다. 총사업비는 73억 2,000만 원. 국비, 도비, 군비가 약 18억 원 지원되고, 나머지 55억여 원은 조합이 자부담하는 것으로 설계됐다.

법에 따르면 조합은 토지 및 건축물 소유자와 지상권자 총수의 ⅔ 이상 동의를 받아 해당 지역 단체장의 승인을 받아 설립할 수 있고, 조합원은 주택건설 예정 세대수의 ⅔ 이상이면서 최소 20명은 넘겨 구성되어야 한다. 더 구체적인 조합원 자격 요건은 규약에 담아야 하고, 규약은 총회를 통해 결정하며, 설립 인가를 위해 반드시 제출되어야 한다.

군의 고시나 조합 회의록 등을 보면, 돌담지구 신규마을 조성사업은 문제 없이 이뤄진 것 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씨나 류 씨, 전 씨의 증언과 군의 고시문, 규약 등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사업은 처음부터 사실과 다르거나, 부실하게 추진된 것으로 확인된다. 돌담지구 전원마을 조합 설립이 군위군에서 인가가 난  과정부터 의구심이 들 정도다.

새마을금고 이사장의 투자 권유
믿음의 근거 “오래 봐서”, “이사장이니까”
‘믿는 도끼’가 찍은 발등, 계약한 땅이 국유지

▲이진숙, 류경희, 전미진 씨는 지역 새마을금고 이사장 A 로부터 투자 권유를 받아 부동산 투자에 나섰다가, 뒤늦게 자신들이 속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 씨나 류 씨, 전 씨는 자신들이 투자한 돈이 돌담지구 신규마을 조성사업에 사용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세 사람은 모두 공통의 인물로부터 군위에 좋은 땅이 있으니 사두면 몇 배가 올라 이득을 볼 것이라는 투자 권유로 부계면 대율리 일대 토지 매입에 나섰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어떤 토지를 사는지도 정확히 설명 받지 못했거나(류경희, 전미진), 알고 보니 국유지를 매입하는 계약서를 작성(이진숙)했다.

세 사람의 투자 이력은 2009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류 씨와 전 씨는 오랫동안 대구 북구의 한 새마을금고 이사장이었던 A 씨로부터 투자 권유를 받았다. 이진숙 씨는 류, 전 씨보다 늦은 2012년 5월경, 역시 A 씨로부터 투자 권유를 받았다. 세 사람은 오랫동안 지역 유지로 알고 지내던 A 씨의 제안을 신뢰했다.

2009년부터 2021년까지 류 씨와 전 씨는 수차례에 나눠 몇 백 만 원에서 몇천 만 원까지 합계 2억 5,000만 원 가량을 투자했고, 이 씨는 2012년부터 마찬가지로 수차례에 나눠 약 2억 원을 투자했다. 평생을 모은 돈이거나, 남편의 퇴직금, 암 투병하는 가족의 병원비를 아껴 만든 돈이다.

류 씨는 “새마을부녀회 활동을 하면서 이사장을 알게 됐다. 밀접한 관계가 됐고, 땅을 혼자 사면 힘들고, 여러 명이 나누면 적은 돈으로 살 수 있다고 권했다”며 “땅을 사놓으면 부계면이 발전이 많이 될거다. 땅값이 오를거다. 그런 말을 들어서 사기로 했다. 땅을 사서 조합을 만들고 집을 지어야 할 거라고 했으면 안 했다”고 말했다.

전 씨도 “남편이 퇴직할 무렵 땅을 보러 다녔다. 그 소문이 났는지 이사장이 날 부르더라. 땅이 하나 있는데 투자할 생각이 없냐고 했다. 그래서 같이 보러 갔다”며 “한 사람이 사면 안 되고, 10명 정도 여럿이 사야 한다고 했다. 마을금고 이사장니까 믿을 수 있지 않나, 그래서 샀다”고 말했다.

이 씨는 “동네 아저씨로 알기 시작해서 마을금고 산악회 활동도 같이했다. 오래 봤으니까 믿었다. 한 30년 얼굴 보고 살았다”며 “‘땅을 사놓으면 그 땅이 3배로 가는 금싸라기 땅이다. 이젠 노후는 별걱정 없이 산다.’ 그렇게 이야기를 들었다. 전적으로 믿고 땅을 샀다”고 말했다.

이들 모두 부동산 투자와 거리가 먼 주부고 직장인이었다. 구체적인 내용은 확인할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믿을만한 사람’이 제안한 투자처에 돈을 넣었다. 그 탓에 류 씨는 뒤늦게 조합 감사로 이름이 올라 있다는 것을 알았고, 전 씨는 총무로 일했지만, 조합 설립은 4년 뒤(2016년)에야 알게 됐다. 이 씨는 A 씨 부인을 매도인으로 해서 대율리 산 5-1번지 일대를 매수하는 계약을 맺었지만, 산 5-1번지는 군위군 소유였다.

이 씨는 “국유지인지도 몰랐다. 최근에 군위 가서 (서류를) 떼서, 알게 됐다”며 “우리는 믿고, 그거(등기부등본) 하나 떼볼 생각을 안 했다. 진짜 바보, 모지랐다. 막연하게 금싸라기, 그런 것만 생각했다”고 말했다. 류 씨도 “해놓으면 된다고 해서 해놓은거지 조합 감사인지 뭔지도 몰랐다. 이렇게 우리를 속이고, 잘못되게 했으면 했겠나? 그 사람들 신분을 믿고 한 거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업을 이끌어간 A, B, C 씨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A 씨는 “자신과 관련 없는 일“이라고 했고, B 씨도 “내가 잘못한 게 있으면 벌써 잡혀 갔을 거다. 횡령을 했다거나 배임이면 잡혀 갔지, 내가 지금 이렇게 있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C 씨는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조사 하면 다 나올거다. 대화가 안 될 땐 법대로 하는 방법 밖에 없다”고 말했다.

약 1년째 수사를 이어가고 있는 대구경찰청 광역수사대 반부패 경제범죄수사계는 신속하게 처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계속) ‘내가 산 땅이 알고보니 국유지’···군위 돌담지구 전원마을 부동산 사기 의혹 ②

이상원, 장은미 기자
solee412@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