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의 금요일] (10) 돈·사람 줄이는 대구 공공기관 혁신이 놓치게 될 것

지원부서 중심으로 통폐합‧인원 감축
노조 “기존만큼 안전관리 된다는 게 어불성설”
김철 사회공공연구원 “절차상‧ 내용상 문제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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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가 민선 8기 시작과 함께 발표한 지방공공기관 경영혁신계획의 주요 골자는 ‘재정 건전화와 공공서비스 혁신’이다. 하지만 <뉴스민>이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확인한 8개 대구 지방공공기관 경영혁신계획 전문을 보면, 혁신의 핵심은 ‘인력 감축’으로 요약됐다. 공공서비스 혁신을 위해 부서를 통폐합하고, 재정 건전화를 위해 신규 채용을 줄인다는 계획은 결과적으로 인력을 줄이겠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기관들은 대구시가 재정 절감을 공포한 상황에서 인건비를 줄이는, 가장 쉬운 선택을 혁신안에 담았다. 그로 인한 공공 역할 축소 및 안전 문제 발생 등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대구시 담당부서와 각 기관이 내년 상반기 협의를 통해 계획안을 현실화하는 과정이 남았지만, 지역에서 공공의 역할이나 안전 중심의 논의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원부서 중심으로 통폐합‧인원 감축
노조 “기존만큼 안전관리 된다는 게 어불성설”

이른바 ‘지방공공기관 혁신’은 대구만의 움직임은 아니다. 지난 6월 기획재정부가 국무회의에서 발표한 ‘새정부 공공기관 혁신방향’을 보면 공공기관 혁신 추진방향으로 ▲공공부문 생산성 제고 ▲공공기관 관리체계 개편 ▲민간·공공기관 협력 강화가 제시됐다. 이후 공공기관 혁신이 추진됐고, 대구시는 후보 시절부터 ‘공공기관 통폐합’을 주장한 홍준표 시장이 당선되면서 본격화됐다. 서울, 부산 등 다른 지역도 지방공공기관 혁신이 쟁점으로 부상했다.

대구의 경우 아직은 ‘안’이기 때문에 각 기관별로 외부 기관 조직진단 용역 결과에 따라 내용이 바뀔 수 있다. 하지만 대구시가 29일 ‘2023년 7대 주요 시책방향’을 통해 ‘재정건전화 강력추진 유지 방안으로 공공기관 혁신 및 조직 슬림화 결과를 반영해 공기관 등에 대한 보조금 규모를 감축한다’고 발표한 만큼, 줄어든 예산에 조직 운영을 맡겨야 하는 상황은 변동이 없을 분위기다.

부서 통폐합은 주로 지원부서 중심으로 이뤄진다. 특히 민선 8기 들어 통폐합된 기관의 경우 중복되는 부서를 합하는 방식으로 인원 절감 계획을 세웠다. 유사‧중복 부서가 통폐합되는 경우 업무추진비, 행사운영비, 사무관리비, 인건비 등을 절감할 수 있지만 한편으론 기존 대비 한 명이 처리해야 하는 업무가 늘어나거나 책임을 지는 부서장의 수가 줄어 위기 대응 능력이 떨어질 수 있는 문제가 있다.

유사 업무 부서를 통합한다는 말은 얼핏 타당해 보이지만, 업무량은 그대로 두고 인원을 줄인다는 뜻도 된다. 통폐합 기관은 모두 지원업무 관련 부서를 합쳐 인원을 감축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 외에도 모든 기관이 유사‧중복 조직을 통폐합한다고 발표했다.

대표적인 기관은 대구공공시설관리공단이다. 민선 8기 들어 대구시설공단과 대구환경공단을 합친 기관으로, 인사‧회계‧감사‧안전 등 스태프(지원) 부서 6팀을 통합한다. 18개 팀이 12개 팀으로 줄고, 지원부서 간부 인력 20% 감축 계획을 세웠다. 이를 통해 줄어드는 인원은 40명이다.

대구시와 각 기관은 “인위적 구조조정 계획이 없다”고 밝혔지만 신규 채용 축소, 퇴직자TO 채용 지연 등 자연적 인력 조정을 통해 전체 정원은 감축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이 같은 혁신안이 제대로 된 분석과 절차, 의견수렴 과정을 통해 도출된 게 아니라는 점이다. 노조를 중심으로 반발이 나오면서 대구교통공사의 경우 일단 한발 물러선 상태다.

▲30일 민주노총 대구지하철노동조합은 고강도 구조조정과 3호선 운행관리원 민영화에 반대하며 파업을 예고했다가, 철회했다.

이성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대구지하철노조 정책실장은 “협상을 통해 사측에 ‘일방적 구조조정이나 외주 민영화를 추진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긴 했는데, 내년에도 시에서 예산으로 압박을 계속한다면 어떻게 될진 모르겠다. ‘일방적으로 추진하지 않겠다’는 건 반대로 말하면 노동조합과 협의를 통해 추진하겠다로 해석된다”고 설명했다.

이 실장은 “대구시가 재정 절감 방안을 가져오라는 상황에서 공사는 실적을 가져가야 하고,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게 인력 감축이다. 당장 사람을 못 줄인다면 결국 용역이나 민영화 카드를 꺼낼 것”이라며 “업무가 줄거나 기술력이 향상돼서 사람을 줄이는 게 아니라, 업무는 그대로이면서 사람을 줄인다면 업무 부실로 연결될 것이다. 특히 인력 감축은 전체 안전의 문제로 연결될 수 있어 우려스럽다”고 덧붙였다.

권순필 한국노총 공공시설관리공단 환경노조 위원장도 안전 문제를 우려했다. “지원부서 중심으로 통합하고 인원을 감축한다는 내용인데, 핵심은 기존에 1,000명을 관리하던 간부가 그 두 배를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만큼 안전 관리가 되길 바라는 게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권 위원장은 “이전부터 노조는 사측에 안전 인력을 확충해야 한다고 요구해왔다. 하지만 (민선 8기 들어) 기관이 통합되고 혁신안이 나오면서 그간의 논의가 다 중단됐다”며 “안전에 대한 기준과 시민 눈높이는 올라가는데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예산과 인력은 준다. 안전은 결국 돈과 사람이다. 돈을 줄이려 하면 기관은 사람부터 줄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대구 8개 공공기관 혁신안은 인력 감축으로 인한 예산 절감으로 요약됐다. (자료=각 기관 혁신안 발췌)

김철 사회공공연구원 “절차상‧ 내용상 문제 있어”
대구공공시설관리공단 노동조합 “안전은 결국 돈과 사람”

정확한 진단을 통한 혁신이 이뤄지는 게 아니라 예산 절감을 위한 통폐합, 인력 감축이 추진되면서 방향성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더해진다.

김철 사회공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 9월 발행한 연구보고서 ‘지방공공기관 통폐합 방안 비판-잘못된 진단, 엉뚱한 처방’에서 “왜 지방공공기관 혁신을 추진하는 것인지, 혁신 추진의 결과가 왜 통폐합인지부터 제대로 제시되지 않고 있다. 중앙정부의 ‘지방공공기관 혁신 지침’과 지방정부의 지방공공기관 통폐합 방안이 서로 강화하면서 생산성 제고 명목으로 지방공공기관의 공공성이 악화되고 공공서비스 질이 저하되는 등 악순환을 야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연구위원은 29일 <뉴스민>과 통화에서 “‘인위적인 인력 감축 없다’, ‘민영화하지 않는다’, ‘안전인력 줄이지 않는다’고 지방공공기관 모두 똑같이 말한다. 하지만 실제 내용을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 특히 안전은 평소엔 문제가 생기지 않기 때문에 괜찮아 보이지만, 꾸준히 비용을 투자하고 인력을 추가하지 않으면 큰 사고로 이어지는 부분”이라고 비판했다.

김 위원은 “무작정 통폐합과 혁신을 밀어붙일 게 아니라 기관 설립취지와 존속 필요성, 통폐합 대상 등에 대해 그 기관이 제공하는 공공서비스를 이용하는 시민들과 지방공공기관 구성원들을 설득할 수 있는 분명한 기준이 필요하다”며 “기관 통폐합 및 구조조정의 문제점 도출에서부터 해결방안 제시에 이르는 모든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고 충실하게 논의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퇴직자로 인한 감소분 있는데, 신규 채용은 억제
전체 정원 감축 가능성 높아

인건비 절감 중심으로 경영혁신안이 마련되다 보니, 내년도 신규 채용도 대폭 줄어들 예정이다. 대부분 기관은 혁신안에 퇴직자로 인한 감소분을 신규 채용으로 충원하지 않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대구시가 일자리 정책을 공공 중심에서 민간 중심으로 전환하겠다는 것과 맥이 닿는다. 대구시는 예산 절감을 위해 공공기관 채용을 줄이는 만큼, 기업 투자로 민간 부분에서 일자리를 늘리는 선택지밖에 없는 셈이다.

대구교통공사는 ‘4년간 170명의 퇴직자가 발생한다’면서 ‘신규 채용을 최대한 억제하겠다’고 명시했다. 퇴직자로 인한 결원이나 신규사업에 필요한 인력 등은 자체 해소하겠다는 설명이다. 신용보증재단, 공공시설관리공단, 도시개발공사 등도 ‘신규채용 억제’, ‘정원대비 결원 유지’ 등 유사한 방침을 세웠다.

공공기관 취업준비생들은 신규 채용 축소 분위기에 벌써부터 걱정이 늘고 있다. 3년 차 취업준비생 손의정 씨(27)는 “대구경북 공기업과 공공기관 중심으로 취업 준비를 하고 있다. 주로 온라인 카페를 통해서 정보를 공유하는데 내년도 채용 규모가 줄어들 거란 우려가 벌써 나온다”며 “코로나19 때에도 특수한 상황 속에서 신규 채용이 적었는데, 그 다음에도 계속 줄어든 상황이 유지돼 걱정”이라고 전했다.

대구시는 공공기관 통폐합이 정리되면서 공공기관 통폐합 업무를 진두지휘했던 부서는 없애고 각 기관 담당 부서로 혁신 계획을 이관했다. 통폐합은 일시에 추진됐지만 이로 인해 발생한 문제의 해결은 각 부서로 넘겨진 셈이다. 공공혁신팀장을 맡았던 이완성 대구시 소통민원과장은 “공공혁신팀은 당시에 공공기관 통폐합 등을 위해 구성된 것”이라며 “이젠 해당 기관과 담당국에서 조율하고 협의해 나갈 문제”라고 말을 아꼈다.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