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054] 참사를 제대로 추모하지 못하는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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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동문회 참석을 위해 서울을 방문했다. 동문회에서 만난 동기는 심리 상담을 받고 오는 길이었다. 그 친구는 이태원 참사를 취재했다. 참사 현장도 다녀왔다. 1m가 조금 넘는 좁은 골목길에서 158명이 사망하고, 그 이상의 사람들이 갇혀 다쳤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현장에선 한 종교단체가 추모제를 치르고 있었다. 침통한 표정을 짓는 사람들과 내 표정은 비슷했다.

대규모 참사는 제3의 사람들에게도 트라우마를 공유한다. 지하철, 번화가, 인파가 몰리는 곳곳에서 참사가 떠올랐다. 위험이 피부로 느껴졌다. 땀이 나고, 몸이 움츠러들었다. 지하철 곳곳에는 몰리는 인파를 우려한 안전수칙 같은 것도 나붙었다. 최근에 붙여진 거란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참사에 대한 제대로 된 추모는 급하게 나붙은 안전수칙 만으로 역부족이다.

▲ 지난 10월 29일 사고가 발생한 이태원 골목 모습.

전국적으로 참사를 추모하는 추모제가 열렸고, 대구도 마찬가지였다. 참석자들에게 신분을 밝히고 생각을 물었다. 참석자들이 전하는 안타까움은 모두 비슷했다. 공무원도 한 명 만났는데, 그는 신분 때문에 추모제 참석이 알려지길 원치 않았다. 익명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 것도 걱정했다. 참사 생존자였던 10대 청소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에 안타까움을 전하는 정도였는데도 그랬다. 참사를 제대로 추모하지 못하는 것 역시 참사라고 생각했다.

오는 7일이면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활동이 종료된다. 짦은 활동기간으로 제대로된 성과도 없는 상황이다. 활동 시한 연장 이야기가 나오지만,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은 참사에 대한 반성과 사회적 공감이다. 정부·여당 관계자는 여전히 망언을 쏟아내고, 온라인상의 2차 가해는 충격적인 수준이다. 반성과 공감이 없는데 적절한 조사와 필요한 대책이 나올리 만무하다.

유가족과 생존자를 보듬고, 정치권 망언은 제대로 비판하고 대응해야 한다. 제대로 참사를 조사하고, 적절한 대책을 마련하는 과정도 필수적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희생으로 안전한 사회에 한 발 다가간다. 우리는 그들에게 갚을 수 없는 빚을 졌다. 새해에는 안전한 사회가 되길 기도한다.

장은미 기자
jem@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