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선우] ‘타이타닉’ 전의 디카프리오가 궁금하다면, ‘로미오와 줄리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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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에게 잘생긴 외모는 장점일까, 단점일까? 배우 강동원은 데뷔 때부터 지겹게 따라다닌 ‘꽃미남’ 수식어를 떼려 부단히 애썼다. 잘생긴 외모 ‘탓’에 초기엔 멜로영화를 주로 소화하다가 <그놈 목소리>를 통해 목소리로나마 유괴범을 연기하며 변신을 꾀했다. 배우 송승헌은 “비주얼이 좋아서 연기가 안 보인다는 핑계는 대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연기력에 앞서 멀끔한 외모가 먼저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연기에 대해서는 출연작마다 인색한 평가를 들었다.

헐리우드의 대표적인 미남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희대의 꽃미남 스타에서 중년의 연기파 배우로 변화했다. 이에 따라 <타이타닉> 전 그의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는 팬이 있는가 하면, 뛰어난 연기를 선보이는 현재 모습에 만족하는 팬도 적지 않다. 디카프리오는 연기를 잘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 했다고 한다. 곱상한 외모보다는 선이 굵은 외모를 원해, 의도적으로 미간에 깊은 주름을 새기려 노력했다는 건 유명한 일화다.

그런 그가 1996년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로미오를 연기한 것은 다소 의외다. 스무 살이던 1994년 <길버트 그레이프>에서 길버트 그레이프(조니 뎁)의 동생으로 지적 장애인 어니 그레이프를 연기할 때는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외모를 조금 가렸다. 그는 이 영화로 LA 비평가 협회상에서 신인상을 수상하며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이듬해 <토탈 이클립스>에서 시인 랭보를 연기할 때는 동성애가 금기시됐던 19세기 프랑스를 배경으로 부정적 시선에 억압된 사랑을 슬프지만 아름답게 그려냈다. 그런데 관객의 첫인상은 ‘잘생겼다’. 마지막 인상도 역시나 ‘잘생겼다’였다.

디카프리오는 1996년에 전 세계 소녀 팬을 사로잡은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로미오를 맡아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얻었다. 로미오의 외모는 줄리엣(클레어 데인즈)보다 더 아름다웠다. 세간은 온통 디카프리오의 외모 얘기뿐이었다. 1990년대 말 그는 전 세계 60억 명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남자’로 꼽혔다.

<토탈 이클립스>부터 그를 눈여겨봤던 제작사는 바즈 루어만 감독에게 셰익스피어의 원작 고전인 <로미오와 줄리엣> 각색 조건으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캐스팅을 걸었다고 한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고전을 20세기로 가져와 현대화했다. 몬태규와 캐퓰릿 두 가문은 거대 기업으로 바뀌었고, 로미오의 친구 머큐시오는 흑인으로 변했다. 의상과 소품을 비롯해 시대배경은 20세기이지만, 원작의 대사와 전개를 그대로 사용했다. 이 때문에 대결이 칼부림에서 총격적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총기의 이름은 Sword라서 대사는 그대로다. “내 장검(Long Sword)가져와”라는 대사를 하는데, 장총에 Long Sword라고 새겨져 있다. 뻔히 총을 들고 있는데 “칼 버려(Sword down)”라는 대사를 친다. 영화 마지막에 줄리엣은 칼 대신 총으로 자결한다. 그래서 ‘내 몸이 너의 칼집이 될 것’이라는 대사는 생략됐다. 영화는 MTV 스타일의 빠르고 감각적인 연출로 뮤직비디오에 가까웠다. <타이타닉>과 함께 디카프리오가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영화다.

<로미오와 줄리엣>과 <타이타닉>의 대성공으로 디카프리오의 이미지는 굳어졌다. 자신을 가장 유명하게 만들어 준 영화가 한계를 가져다 준 셈이다. 대중에 잘생긴 배우로만 인식되던 디카프리오에게 배우로서의 비전을 생각하게 한 단초가 됐을 것이다. <아이언 마스크>에서 악역으로 변신한 디카프리오는 <갱스 오브 뉴욕>과 <에비에이터> 등을 거치며 청춘스타에서 연기파 배우로 변모해갔다.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에서는 연기의 정점을 찍었다. 외모에 의지할 지, 연기력으로 슬부를 볼 지는 배우의 몫이다.

손선우 전 영남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