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5.18민주화운동 ‘정신적 손배’ 재판서도 ‘고문 증거 없다’

첫 답변서에선 없던 주장, 정부 교체 이후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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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불법적인 연행과 고문을 당한 피해자들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정신적 손해배상청구 재판에서 정부가 피해자들이 불법적인 연행·고문을 당했다는 걸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주장해 논란이다. 이미 국가폭력의 피해자로 인정돼 정부의 보상 대상으로 지정되었음에도 국가폭력 피해자란 증거가 없다는 주장을 해 피해자들에게 또 다른 가해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2021년 11월 대구·경북에서 5.18민주화운동에 함께했다가 국가로부터 불법구금, 고문 등을 당한 5.18민주화운동유공자들이 정부를 상대로 정신적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같은 해 5월 헌법재판소가 민주화운동 유공자 보상금을 수령했다는 이유로 정신적 손해배상 대상에서까지 제외하는 건 위헌이라고 결정한 것에 따른 것이다.

이들의 재판은 대구지방법원 민사 재판부 3곳에 나눠 배당돼 각각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1월 정부(법무부)는 한차례 답변서를 내고, 3월부터 5월 사이 준비서면을 제출했다. <뉴스민> 취재에 따르면 정부는 1월 답변서에서는 피해자들에게 5.18민주화운동유공자 보상금을 지급하는 과정에서 정신적 손해배상청구 권리도 소멸됐다는 취지로 반박했다.

하지만 3월부터 5월 사이 새로 제출한 준비서면을 통해서는 피해자들이 불법구금, 고문 등을 당했다고 주장하지만, 당시 군, 경찰, 정보기관 등의 구체적 불법행위를 인정할 증거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피해자들이 고문을 당했다는 증거가 없으니 손해배상청구 책임도 정부에는 없다는 논리다.

정부가 고문 피해가 없었다는 취지로 주장함에 따라 피해자들은 법정에서 직접 피해 사실을 증언할 준비를 해야 했다. 다행히 지난해 8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명백하게 위헌인 긴급조치를 근거로 이뤄진 경찰, 검사 등 공무원의 직무행위는 고문·폭행·과실 등 구체적 사실을 개별 피해자들이 입증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기본권을 침해한 불법행위로 본다고 판결함에 따라 직접 증언 상황은 피할 수 있게 됐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정부가 인민혁명당(인혁당) 재건위 사건 피해자들에게 과다 지급된 배상금과 배상금 반환 지연에 따른 이자 문제를 두고, 이자는 면제해주기로 하면서 국가 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정부의 전향적 조치가 기대됐지만, 기대와는 다른 정부의 입장이 다시 확인된 것이다.

당시 법무부는 “국가배상금 가지급 이후 판례 변경이라는 이례적 사정으로 이른바 ‘줬다 뺏는’ 과정이 생겼고, 이를 방치하면 해당 국민이 억울해지는 사정이 생겼다”며 “상식과 정의의 관점에서 국민의 억울함을 해소하려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동훈 장관도 “국민의 상식적 눈높이에서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했다”며 “오로지 개별 국민의 억울함만 생각했고, 진영논리나 정치 논리는 배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일부 언론에선 한 장관이 이자 환수를 포기할 경우 배임죄로 기소될 수 있다는 내부 우려를 두고 “그게 배임이면 제가 처벌받겠다”며 설득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피해자들을 대리하는 김무락 변호사(법무법인 맑은뜻)는 “연행, 구금, 수사, 재판 기록은 있지만 구체적인 위법행위는 인정할 증거가 제출되지 않았다는 피고(정부) 측 답변서를 보고 당사자들도 좀 많이 어이없어했다”며 “위법행위를 어떻게 입증할지 막막한 측면도 있었고, 당사자 본인 신문까지 준비했다”고 전했다.

김 변호사는 “다행히 8월 대법원 판결로 구체적인 위법 행위를 개별적으로 입증할 필요가 없어졌지만, 그 과정에서 피해자들에 대한 2차 가해로 충분히 볼 수 있는 피고 측 태도는 아쉬운 부분”이라며 “이번 재판을 통해 국가 폭력으로부터 피해를 당한 이들에 대한 피해 회복이 이뤄지고 대구에서도 5.18민주화운동이 활발히 전개됐다는 사실도 알려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상원 기자
solee412@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