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식실의 민낯] ② 굽고, 튀기고, 볶던 어느 과정에서 폐암 걸렸나

처음 결과 받아 들곤, ‘나한테 문제 있다고 생각했다’
'급식 메뉴에 튀김 없는 날이 드물었다. 돌이켜보면 매일 연기를 마셨다.'
아이들 이름 부르던 시간 생각 나···완쾌하면 돌아갈 것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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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2000년대 초반 학교급식이 전면적으로 도입되면서 급식노동자들의 노동환경과 건강 문제도 조금씩 사회 문제로 대두됐다. 초기에는 눈으로 확인할 수 있고, 당장 급한 부상이 문제시됐지만, 2018년 한 급식노동자의 죽음 이후 관심은 몸 안으로도 향했다. 급식실에서 10여 년 근무한 후 폐암으로 숨진 그 노동자는 2021년 폐암 발병이 급식실 노동환경과 연관되어 있다는 공식 인정을 받았다. 급식노동자의 건강은 무엇으로부터 어떻게 위협받고 있는걸까. <뉴스민>은 연속 기획으로 위험한 급식실의 민낯을 살펴본다.

[급식실의 민낯] ① 근골격계 질환부터 폐암까지, 위험한 급식실
[급식실의 민낯] ② 굽고 튀기고 볶던 어느 과정에서 폐암 걸렸나

여자 셋이 미리 예약해 둔 달성군 한 식당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대구 달서구의  A 중학교 급식실에서 조리실무원으로 같이 일했던 셋은 오랜만에 만났다. 맞은 편엔 이민규 노무사(노무법인 함께)와 정경희 민주노총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대구지부장이 앉았다.

지난 7일 화요일 저녁 5시, 이들이 모인 건 김경순 씨(55세)의 산재 신청을 위해서다. 경순 씨는 지난해 12월 폐암 수술을 받고 학교에 휴직계를 냈다. “1차 상담 때보다 얼굴이 좋다” 이 노무사가 먼저 말을 꺼냈고 경순 씨가 답했다. “항암치료를 잠깐 멈추고선 잘 먹고 운동도 열심히 했다. 내일 다시 항암치료 시작하면 컨디션이 안 좋아질 테니, 오늘 만나길 잘했지.”

처음 결과 받아 들곤, ‘나한테 문제 있다고 생각했다’

경순 씨는 2002년부터 2022년까지 20년간 학교 급식실에서 일했다. 4시 전후로 퇴근할 수 있으니, 아이를 키우기에 시간이 좋은 일이었다.

2021년 고용노동부는 55살 이상이거나 급식 업무를 10년 이상 한 현직 급식 종사자에 대해 저선량 폐 CT 촬영을 하라는 내용의 건강진단 기준을 마련했다. 경순 씨도 포함됐다. 지난해 8월 초 폐CT 검사를 받았더니 8월 말 이상소견이 나왔다. 9월 말에 재검사를 진행하고, 같은해 12월 ‘조직 검사 결과 폐암’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곧바로 계명대학교 동산병원에 입원해 수술했고, 1월부터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처음 폐암 진단 받았을 때는 덜컥 무서웠다. 하루 쉬고, 방학 한 두달을 쉬면 컨디션이 돌아오곤 해서 건강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운동, 봉사활동, 대학원 수업까지 나갈 정도로 활동적이었다. ‘왜 암에 걸렸지’ 원인을 스스로에게서 찾았다. 그러다가 뉴스를 보고서 ‘조리흄(고온의 조리 과정에서 나오는 발암물질) 때문이구나, 직업병일 수 있구나, 원인이 일터에 있을 수 있구나’ 처음 의문을 가졌다.

‘급식 메뉴에 튀김 없는 날이 드물었다. 돌이켜보면 매일 연기를 마셨다.’

조리흄 노출이 폐암 발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건 여러 연구 결과가 입증하고 있다. 국제암기구는 조리흄에 장기간 노출시 유전자 송산, 돌연변이 유발, 종양 형성, 폐암 발병률 증가 등을 일으킬 수 있다고 설명하고, 대구가톨릭대학교 산업보건학과 최보화의 석사 논문 ‘조리흄에 노출된 학교 급식실 여성 근로자의 세포면역력 지표 분석’에 따르면 단시간, 고강도 조리를 수행하는 학교 급식실 환경에서 조리흄에 노출되면 알레르기 질환이나 염증 반응을 유도할 수도 있다.

조리흄 노출의 위험성은 조리실 환경을 개별로 살필 때 좀 더 분명하게 알 수 있다. 학교 급식실은 오전 중 2시간 내외에 단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조리가 이뤄지고, 학교별 작업 환경은 천차만별이다. 최보화의 논문에 따르면 조리실 위치, 창문 유무, 창문의 위치 불량, 문을 개방할 때 외부환경이 운동장이거나 주자창인 경우, 배기 후드장치의 문제 등으로 환기가 원활하지 않은 경우에 따라 변수가 많다.

특히 튀기거나 볶고, 전을 부치는 등 기름을 많이 취급하는 조리를 할 때 환기가 원활하지 않으면 기류가 정체돼 조리실 내 환경은 더 나빠질 수 밖에 없다. 경순 씨는 오래전 일한 급식실의 환경을 구체적으로 기억하진 못하지만 튀김 요리가 자주 나갔고, 창문은 거의 열지 못했으며, 환기 장치가 온전했는지 여부도 명확하지 않다는 걸 동료들과 기억을 더듬어 확인해 나갔다.

▲2차 상담은 오래 함께 일한 동료들과 함께 했다. 경순 씨가 A 중학교에서 일했던 2002년부터 2016년까지는 8명의 조리원과 1명의 조리사가 1,680여 명 학생의 밥을 만들었다.

산재 신청을 위해 이 노무사를 처음 만난 1월, 경순 씨는 항암치료를 받은 직후라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조리실에서 주로 무엇을 했는지 자세히 기억 나지 않았다. 8시 전후로 출근하면 11시 30분 아이들이 급식실로 밀려들어 오기 전까지 소독하고 씻고 조리하고 담았다. 이중 어떤 과정이 폐암의 원인이 된 건지 가늠이 잘 가지 않았다.

2차 상담은 그래서 동료들과 함께 자리했다. A 중학교에서 함께 일한 두 동료가 20년 전 조리실을 복기하면 경순 씨는 “맞다, 그랬다”며 손뼉을 쳤다. “아니다, 그보단 자주 튀김 요리가 나갔다”며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경순 씨가 A 중학교에서 일했던 2002년부터 2016년까지는 8명의 조리원과 1명의 조리사가 1,680여 명 학생의 밥을 만들었다. 중간에 잠깐 조리원 1명이 충원되기도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정원은 8명이 됐다. 급식실 배치기준도 없을 때였다. 2023년 급식실 배치기준에 따르면 중·고·특·각종학교 급식인원이 1,561~1,700명 규모일 경우 조리원은 13명 배치돼야 한다.

급식 메뉴에 튀김이 없는 날은 드물었다. 주 3~4번은 기본이었다. 학교에 오븐기가 없어 솥에 기름을 부었다. 제때 조리가 끝나려면 9시 전에 기름을 솥에 올려야 했다. 4개 솥을 동시에 돌려도 급식이 시작되는 11시 40분까지 계속해서 튀겼다. 솥에는 닭을, 전판에는 전을 튀겼다. 탕수육, 돈가스, 야채튀김… 세 여자의 입에서 메뉴가 끝없이 나왔다. 미역줄기, 오뎅, 멸치 따위를 볶을 때도 기름을 사용했으니 돌이켜보면 매일 연기를 마셨다.

A 중학교 근무 당시 한 달에 한두 번씩 석쇠불고기가 메뉴에 꼭 들어갔다. 가스레인지 3개 위에 각각 석쇠를 올리고 뜨거운 물에 한 번 데친 고기를 뒤집으며 직화로 구웠다. 온 학교에 불향 입힌 고기 냄새가 진동한 대신, 만든 이의 얼굴은 벌겋게 익었다. “퇴근해서까지 얼굴이 화끈거렸지” 세 여자가 맞장구를 쳤다.

조리할 때 창문은 대체로 닫혀 있었다. 봄에는 꽃가루, 여름엔 에어컨, 겨울엔 추워서 창문을 열 수 없었다. 후드로 연기가 빨려 올라가려면 창문을 열어선 안 된다고도 했다. 아침에 잠깐 환기를 위해 열었다가 조리가 시작되면 닫고, 다시 조리가 끝나면 잠깐 여는 식이었다.

당시 환기구가 온전하게 돌아갔는지는 세 여자 모두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조리실무원들은 알 방법이 없었다. 윙 돌아가는 요란한 소리를 보고 작동이 되고 있겠거니 짐작할 뿐이었다. 환기구의 후드가 튀김 솥과 가스레인지 바로 위에 위치한 것도 아니었다. 가스레인지는 후드 끝머리에 살짝 걸쳐져 있었다.

후드 청소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정기적으로 점검을 오거나 청소를 하는 걸 본 적 없었다. 정경희 지부장은 “대구 교육청이 처음 학교급식 조리실 후드 점검을 실시한 게 작년, 2022년이다.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서 관련 내용을 의결하면서 노동부가 전 학교가 기준치에 맞는지 여부를 점검하도록 가이드라인을 내렸다”고 부연설명했다.

아이들 이름 부르던 시간 생각 나···완쾌하면 돌아갈 것

경순 씨는 2016년 A 중학교에서 B 초등학교로 옮겼다. 4년 뒤 2020년 3월에는 조리사 시험을 쳐서 C 고등학교에서 조리사로 일을 시작했다. 통상 학교에는 영양사 1명, 조리사 1명, 그리 조리원이 급식인원에 따라 배치된다.

중학교, 초등학교와 달리 고등학교는 아이들을 마주할 일이 더 많았다. C 고등학교는 1일 3식을 하는 학교라서 교대 근무 형태로 일했다. 시험을 쳐서 조리사로 들어갔지만, 신입 조리원이 많아 같이 일을 했다. 신입 조리원과 일하면 튀김은 묻혀서 바로 튀겨야 한다거나, 전은 바르게 구워야 한다거나 하나하나 가르쳐야 하는 일이 많았다.

▲“학교 일이 사실 재밌거든. 결과가 바로바로 나오잖아. 교직원 선생님도 교장선생님도 맛있다고 하고, 설문지 조사를 해도 90점이 나오니 얼마나 뿌듯해. 아이들이 급식실 선생님 친절하다고 하면 그렇게 예쁠 수 없지”

보람 있는 순간은 많았다. A 중학교는 오븐이 없었는데, B 초등학교에는 오븐이 있었다. 오븐이 있다고 솥에 기름을 붓고 튀기는 작업이 줄어든 건 아니었다. 오히려 조리 후 약품을 써서 오븐을 세척하는 데 힘이 배로 들었다. 그래도 음식의 모양이 살아서 아이들 식판으로 나가는 걸 보면, 예쁜 걸 그대로 먹일 수 있어서 좋았다.

저염을 고집하다 보니 영양사 선생님과 간을 세게 하니, 적게 하니 싸우기도 했다. 그래도 뒤돌아서면 영양사 선생님이 ‘참 건강식으로 하려 애쓴다’고 칭찬했다. 그만큼 요리에 자부심도 있었다. 어떻게든 급식 시작 시간에 맞춰서 일을 해냈다. A 중학교 근무 당시에는 보일러가 고장 났던 적도 있다. 솥이 안 돌아가니 가스레인지를 이용해 전판에 굽고 ‘쌩쇼를 하면서’ 제 때 시간을 맞췄다. ‘오늘 진짜 밥 못 나간다’ 하다가도 ‘어떻게든 애들 밥은 먹여야지’ 하면서 해냈다.

“학교 일이 사실 재밌거든. 결과가 바로바로 나오잖아. 교직원 선생님도 교장선생님도 맛있다고 하고, 설문지 조사를 해도 90점이 나오니 얼마나 뿌듯해. 아이들이 급식실 선생님 친절하다고 하면 그렇게 예쁠 수 없지”

힘들지만 즐겁게 일하니 몸이 상하는지도 몰랐다. 일상적으로 연기 앞에서 일하면서도 그냥 숨 쉬는 것밖에 없었다. 한 겹짜리 면 마스크를 일 년에 2개씩 줬다. 빨아서 바꿔가면서 사용했다. 코로나19로 마스크가 제공되던 시절에도 사계절 내내 땀이 나니, KF 마스크를 쓰지 못하고 일회용 마스크를 썼다.

C 고등학교에선 아이들이 “대학에 붙었다”며 자랑하러 급식실에 놀러 오기도 했다. 3년을 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름을 불렀다. 인사를 잘하는 아이는 반찬도 더 주고 싶었다. 밥을 잘해 먹여서 이리 잘 크는가 싶어 행복했다. 항암치료를 앞두고, 경순 씨는 다시 학교에 돌아가고 싶다는 얘기를 여러 번 했다. 사용할 수 있는 병가는 이제 두어달 남았다.

“남 탓을 잘 안 하는 편이라 솔직히 아픈 게 자존심도 상했지. 사람들한테 말을 안 하고 싶었는데 어쨌든 또 아픈 사람이 나오면 안 되잖아. 무엇보다 일하는 사람이 늘어야 해. 바쁘니까 뛰어다니고, 위험한데 마음은 급하고. 아픈 사람들이 내 탓을 안 하려면 조리실 안에서 어떤 일이 생기는지 알려야 되겠다 싶어”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