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식실의 민낯] ④ ‘우두둑’ 소리가 나도록 넘어졌지만, 눈치만 는다

학생 수가 적으면, 그만큼 조리원 수도 적다
산재 이후, “여름에도 무릎보호대 안에 핫팩 끼운다”
인력 부족 문제···“식수 인원 구간 범위 좁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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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2000년대 초반 학교급식이 전면적으로 도입되면서 급식노동자들의 노동환경과 건강 문제도 조금씩 사회 문제로 대두됐다. 초기에는 눈으로 확인할 수 있고, 당장 급한 부상이 문제시됐지만, 2018년 한 급식노동자의 죽음 이후 관심은 몸 안으로도 향했다. 급식실에서 10여 년 근무한 후 폐암으로 숨진 그 노동자는 2021년 폐암 발병이 급식실 노동환경과 연관되어 있다는 공식 인정을 받았다. 급식노동자의 건강은 무엇으로부터 어떻게 위협받고 있는걸까. <뉴스민>은 연속 기획으로 위험한 급식실의 민낯을 살펴본다.

[급식실의 민낯] ① 근골격계 질환부터 폐암까지, 위험한 급식실
[급식실의 민낯] ② 굽고 튀기고 볶던 어느 과정에서 폐암 걸렸나
[급식실의 민낯] ③ 밥판 18kg, 국솥 90cm···어깨 근육이 다 삭았다
[급식실의 민낯] ④ ‘우두둑’ 소리가 나도록 넘어졌지만, 눈치가 는다

넘어진 순간의 우두둑 소리는 1년이 지났는데도 생생하다. 1차 배식이 끝나갈 즈음이었다. 학생들은 한 번에 오지 않고 세 차례에 나눠서 왔다. 2년차 급식조리원 김유미(가명, 49세) 씨는 물기로 흥건한 밥솥 앞에서 넘어졌다. 밥이 식으면 안 된다고 솥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한 탓이었다. 넘어지는 순간 다리가 옆으로 돌아갔다. 근처에 있던 동료들에게 들릴 만큼 큰 소리가 났다. 부축을 받아 휴게실에 들어갔는데, 오른쪽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넘어짐’은 학교 급식 조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산업재해 사례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교육부 및 17개 시·도교육청 조사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2년 상반기까지 전국 초·중·고 학교 급식실 종사자 산재는 3,565건, 이 중 학교급식 조리 과정에서 발생한 산재는 3,403건이다. ‘넘어짐’이 910건(25.5%)으로 가장 많으며, ‘화상’이 898건(25.2%), ‘근골격계 질환’이 511건(14.3%) 순으로 이어진다.

노동조합에 따르면 ‘넘어짐’ 산재가 많은 이유 중 하나는 ‘증명이 쉬워서’다. 근골격계 질환, 폐암과 같이 업무와 질병사이 인과 관계를 증명해야 하는 산재는 절차가 까다롭고 인정받기 어려워 신청 자체를 꺼리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유미 씨는 “우리끼리 ‘그냥 실비 보험 받고 말지’ 그래요. 학교 눈치도 보이고 동료 눈치도 보이니까”라고 말했다.

▲인터뷰는 21일 저녁 김유미 씨와 급식노동자들의 넘어짐 산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유미 씨는 지난해 2월 연골이 파열돼 산재 인정을 받고 4개월 휴직 후 같은 해 6월 복귀했다. 일터에서, 근무 시간에 넘어졌음에도 산재 신청부터 승인, 휴직, 복귀 과정이 쉽진 않았다. 유미 씨는 행정실에 전화해 필요한 절차를 진행해달라 요청했을 때 담당자의 목소리에서 ‘짜증’을 느꼈다. 동료들도 유미 씨가 복귀 후 자주 통증을 호소하자 “자기, 또 아프지”라며 눈치를 줬다.

학생 수가 적으면, 그만큼 조리원 수도 적다

“우리끼리 급식실은 여자들 노가다판이라 해요” 유미 씨가 웃으면서 말했다. 2014년, 1년 계약직으로 급식실 일을 시작했다. 집안 사정으로 급하게 일을 구해야 했는데, 마흔 넘은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았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나’ 싶어서 1년 내내 울면서 일했어요. 옆에서 ‘왜 우냐?’ 물어보면 ‘양파가 너무 맵네요’ 그랬죠. 1년 지나니까 일을 좀 알겠더라고요. 그래도 일 마치고 집에 가면 2~3시간 쓰러지듯 누워 있어야 해요. 다른 일을 여러 개 해봤지만, 이런 경우가 없었거든요. 다들 똑같이 말해요.”

1년 계약이 끝나고선 어린이집 교사로 일했다. 사회복지사, 보육교사 자격증을 준비하면서도 중간중간 조리원 대체직으로 일했다. 그때마다 ‘어떤 일이든 이보단 낫겠다’고 생각했다. 어린이집에 취업해서는 0~1세 아이들을 담당했다. 젊은 선생님은 어린아이를 보는 게 서툴다는 이유였다. 앉아서 일하면서 허리와 무릎이 많이 안 좋아졌다. 무엇보다도 고용이 불안했다. 11개월 단위로만 계약을 하니, 재계약 시즌이 되면 교사끼리 눈치를 봤다. 2년 만에 그만뒀다.

‘다시 급식실로 가야겠다’ 생각하고 돌아온 게 2021년 9월이다. 당시 A 초등학교의 급식 인원은 180여 명, 조리원은 유미 씨 포함 2명이었다. ‘인원이 적으니 수월하겠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일한지 하루만에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학생 수가 적어도 메뉴 가짓수는 다른 학교와 같으니, 조리원 두 명이 오전 내내 뛰어야 간신히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출근을 해서 식재료가 들어오면, 1명은 전처리를 담당하고 나머지 1명은 밥 조리를 시작했다. 현미밥이나 수수밥을 하는 날이면 재료부터 삶았다. 1명이 야채 기계를 내리면 다른 1명이 다듬고 썰고 굽고 부쳤다. 특히 김치를 담그는 날이면 전날부터 ‘내일은 죽었다’고 생각했다. 배추김치, 깻잎김치, 석박지 모두 직접 담갔다.

▲“1년 만에 (팔목 안쪽) 혈관이 다 튀어나왔어요. 저희 어머니가 투석을 하는데, 이렇게 혈관이 튀어나오시더라고요”

“급하게 움직이면 꼭 미끄러지게 돼 있어요. 특히 트랜치(하수구나 배수로의 직사각형 모양 뚜껑 또는 덮개) 주변에서 잘 미끄러져요. 미끄러지고 부딪히면 다리에 멍 드는 건 기본이지. 나중에는 ‘또 멍 들어 있네. 언제 부딪혔지’ 하고 만다니까.”

유미 씨가 팔을 내밀면서 말했다. “여기 팔목 봐요. 손마디랑 팔이 계속 붓고 굵어져요. 1년 만에 (팔목 안쪽) 혈관이 다 튀어나왔어요. 저희 어머니가 투석을 하는데, 이렇게 혈관이 튀어나오시더라고요. 하도 힘주는 일이 많으니까 급식실에서 일하면 딱 그 모양새로 튀어나와요.”

산재 이후, “여름에도 무릎보호대 안에 핫팩 끼운다”

복귀 후 첫 한 달은 서 있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웠다. 용을 쓰다 보니 땀이 더 많이 났다. 그러면서도 무릎보호대 안에 핫팩을 끼웠다. 아픈 오른쪽 다리 대신 왼쪽 다리에 힘을 많이 주면서 왼쪽 발목에도 고질병이 생겼다. 파스를 붙이고 보호대를 찼다. “핫팩은 여름이 싸서 이맘때부터 잔뜩 사서 쟁여 놓아요” 유미 씨는 비밀 얘기를 하듯 작게 말했다.

다친 이후에는 출근이 더 힘들었다. 한참 연달아 김치를 담그던 시기에는 다리가 너무 아파서 병가를 쓰겠다고 말하니, 영양사가 “죽을 정도로 돼야 병가를 쓰지, 우리는 그렇게 해선 안 써준다”고 했다. 화가 났지만 방도가 없어서 연차라도 썼다.

최근에는 급식 인원이 400여 명으로 늘어서 조리원도 1명 늘었다. 조리원이 1명 늘었지만 그는 “여전히 벅차다”고 말했다. “정도의 차이지, 넘어지는 일은 사람이 둘이든, 셋이든 많아요. 같이 일하는 언니들이랑 휴게실 앉아서 파스를 뿌리고 붙이면서 일해요. 어제 하루는 5~6학년이 급식을 안 해서 100명 정도 급식 인원이 줄었거든요. 우리끼리 ‘매일 오늘 같았으면 좋겠다. 할만하다’ 그랬어요. 쉬는 시간도 잠깐 갖고요.”

매일 퇴근 후의 루틴도 있다. 집에 오자마자 전기장판을 틀고 찜질기를 무릎에 올려둔 다음 가만히 눕는다. 무릎이 좀 가라앉으면 찜질기를 관절염으로 욱신거리는 손 위로 옮긴다. 목 마사지기와 손 마사지기도 구비해 놓고 자주 사용한다.

“어린이집에서 일해 보니, 일이 안정적이지 않더라고요. 저는 제가 혼자 벌어서 고등학교 3학년 아이를 키우거든요. 급식실은 일이 힘들어도 정년보장이 돼서 돌아왔는데, 여전히 맨날 출근을 해야 하나’하고 갈등해요. 퇴근 후 누워서 핫팩을 다리에 올려두면 딸이 와서 보곤 ‘엄마, 그만둬. 왜 그러고 있어’ 그래요. 그럼 저는 ‘니는 꼭 전문직이 돼야 된다’ 그래요”

인력 부족 문제···“식수 인원 구간 범위 좁혀야”

유미 씨는 급식실 노동 강도가 높은 이유가 ‘인력 부족’ 때문이라고 봤다. 유미 씨가 일하는 초등학교는 급식 인원 400여 명 밥을 조리원 3명이 책임지고 있다. 급식 인원 140여 명 당 조리원 1명이 배치된 셈이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가 지난해 6월 발표한 ‘학교 급식실 노동자 작업조건 실태 및 육체적 작업 부하 평가’에 따르면 학교 급식노동자 1명이 담당하는 식수 인원은 공공기관보다 2~3배 많다.

연구에 따르면 전국 학교 급식실 종사자는 1명당 평균 114.5명의 식사와 배식을 담당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등 11개 공공기관 평균인 60명의 두 배가 넘는 수준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재 학교 급식실 종사자들의 인원에서 1.23배가 필요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연구 결과 발표 당시 교육공무직본부는 “학교당 급식실 운영 인원 자체가 적은 편인 데다 연차 사용 또는 경조사, 병가 등의 결원이 발생했을 때는 1인당 식수인원 및 업무량이 급격히 증가하는 문제까지 발생하기 때문에 실제 증원인력은 1.23배보다 더 많이 필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유미 씨는 급식실의 노동 강도가 높은 이유가 ‘인력 부족’ 때문이라고 봤다. 유미 씨가 일하는 초등학교는 급식 인원 400여 명의 밥을 조리원 3명이 책임지고 있다.

학교 급식의 식수 인원 구간 범위가 너무 넓어, 같은 구간 내에서 업무 부담 차이가 발생한다는 지적도 있다. 올해 대구교육청 급식실 배치기준에 따르면 초‧중‧고‧특수학교 모두 한 구간 범위 내에서 최대 160명까지 차이가 난다. 101명 규모든, 260명 규모든 실제 조리인원은 2명이라는 뜻이다.

노동조합도 이 식수 인원 구간 범위를 좁혀야 한다고 꾸준히 요구해왔다. 대구교육청은 조리실 규모에 따라, 3식 직영조리교 여부에 따라, 공동조리에 따른 비조리교 운반급식 여부에 따라 1명을 증원할 수 있다는 ‘추가 정원 배칙 기준’을 마련해놨지만, 그 또한 ‘중복 적용이 불가능하다’는 단서 조항이 붙었다.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