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례대표 확대? 인물 선택 가능한 ‘개방형 명부’에 달렸다

‘500인 회의’ 결정,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3편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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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1편(공론조사 결론은 “준연동형 비례제+위성정당 방지”)에서 살펴본 대로, 선거제도 공론조사 ‘500 회의에서 다수 의견은비례대표 의석 비중 확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유지 또는 강화’, ‘권역별 아닌 전국단위 비례대표 선출이었다. 숙의 전보다 숙의 후에 비례대표제에 대한 우호적 의견은 늘었다. 지지율과 의석수 사이의 비례성을 올려 정치다양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 500 회의의 결론이었다.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것이 있다. 비례대표 투표 방식을 두고, 정당뿐 아니라 후보까지 선택하는 방식(개방형) 대한 지지가 72% 정당에만 투표하는 현재의 방식(폐쇄형, 26%)보다 훨씬 높게 나타났다는 점이다. 500 회의가 비례대표제 강화에 손을 들어준 데에는유권자가 정당뿐 아니라 인물도 선택하라 조건이 달려 있는 셈이다.

공론조사 참가자의 적지 않은 수가 비례대표제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지만, 공론화에 참가하거나 이를 유심히 지켜본 시민은 소수다. 여전히 많은 시민들이 비례대표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간직하고 있다고 추정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다만 시민들의 불만이 무엇이었는지 구체적으로 짚어야 한다. 다수 시민이 우려 내지 반대한 것은 지지율과 의석수 사이의 비례성 아니다. 최근 모든 여론조사에서 다당제 지지 여론은 양당제 지지 여론을 압도했다.

결국 시민들은 내가 인물을 선택할 없다 데 반감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거꾸로 말해 ‘인물을 선택할 수 있다면 비례대표제 확대를 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당이 사전에 부여한 순번에 따르는폐쇄형
당내 후보자 당락을 개별 득표율로 가르는개방형
정당 순번과 개별 득표를 모두 고려하는준개방형

민주주의 선진국 대다수는 중대선거구(전국단일선거구 포함)에서 의원을 선출한다. 그중 대다수는 개별 후보의 득표만 따지는 것이 아니라 정당 득표율( 정당이 후보자들 득표의 총합) 정당별 의석을 결정한다. 이런 나라들은 또다시 가지로 분류할 있다. 정당이 후보자 수보다 정당이 얻은 의석수가 적을 , 그러니까 당내 후보자들의 당락을 가려야 , 어떤 방식으로 결정하는가.

첫째가 정당이 원래 정한 순번에 따라 당락을 결정하는폐쇄형 명부이다. 이스라엘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스라엘 투표소에는 기표구가 없고, 각 당의 명칭이 표시된 투표용지들만 있다. 유권자는 지지하는 정당이 적힌 투표용지를 뽑아 투표함에 넣는다. 당연히 개표 결과 정당의 지지율만 드러나게 되는데, 정당별 의석수가 정해지면 정당이 미리 정해놓은 순번에 따라 당락이 결정된다.

▲전국단일선거구 비례대표제인 이스라엘 선거제도는 ‘투표용지 한 장에 정당 하나’. 유권자는 지지하는 정당의 이름이 적힌 투표지를 골라 투표함에 넣고, 정당은 미리 짜놓은 순번에 따라 당내 후보자의 당락을 가른다.

노르웨이의 경우 선거구에서 4~19명을 선출해서 지역구 총의석 150석을 구성하고, 지지율 대비 지역구 의석수가 적은 정당을 위해 조정의석 19석을 추가로 배분하고 있는데, 유권자는 지지 정당만 선택할 뿐 후보를 지명할 수 없으며, 당락은 정당이 사전에 부여한 순번에 따라 갈리는폐쇄형 명부 채택하고 있다.

한국은 정당명부 투표용지가 있고, 유권자가 기표구로 지지 정당을 표시하며, 전국단일선거구비례대표제인 이스라엘과 달리 비례대표 의석이 한정되어 있고, 중대선거구제인 노르웨이와 달리 지역구 의원은 소선거구제로 선출하지만, 비례대표 투표에서 인물을 선택할 없다는 점에서폐쇄형 명부’ 사례로 분류된다. 한국 다수 시민들의 불만은 폐쇄형 명부 대해 나온다고 있다.

비례대표 명부의 번째 유형은개방형’이다. 지지 정당뿐 아니라 지지 후보까지 지목할 있도록 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핀란드이다. 핀란드는 소선거구 곳을 제외하면 선거구에서 7~36석을 선출하는 대선거구제를 채택하고 있다. 개별 득표에 앞서 정당별 득표를 먼저 따지는 비례대표제이면서, 정당 내 후보자의 당락을 가르는 전적인 기준을 후보자별 득표에 두고 있는개방형 명부제이다. 핀란드 유권자는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자에게 부여된 번호를 투표지에 육필로 기입한다. 물론 한국처럼 기표구를 사용하는 것도 개방형 명부제에서 가능하다. 

▲개방형 명부제에서는 지지 정당뿐 아니라 지지 후보에 대한 투표도 가능하다. 기표 방식으로는 여러가지가 가능한데, 핀란드는 지지 후보자의 번호를 육필로 표시하는 방법을 쓴다.

비례대표 명부의 번째 유형으로는 사전 부여 순번과 개별 후보자의 득표를 모두 감안하는준개방형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네덜란드와 스웨덴이다. 네덜란드의 경우 당의 총득표수에서 당이 얻은 의석수를 나눠 기준수를 정하고, 값의 1/4 이상을 얻은 후보는 1차적으로 모두 당선대상이 된다. 그러나 그 에도 남는 의석이 있다면 정당이 미리 정해둔 순번대로 당선시킨다. 스웨덴은 개별 득표율이 7% 이상인 후보를 모두 당선시키고, 남는 의석이 생기면 당에서 정해둔 순번에 따라 배분한다.

현실 정치에서는 개방형보다 준개방형을 유도하는 요인이 있다. 첫째, 그저 개별 득표 순위로 당락을 정할 경우 여성 등의 비율이 현저히 낮아질 개연성이 있다. 특히 할당제를 접목하려고 한다면 완전한 개방형을 고집할 없다.

둘째, 네덜란드, 스웨덴 등지의 다수 유권자는 실제 투표에서정당 지지 비해후보 지지에는 그리 신경쓰지 않았고 정당 지지만 표시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게다가 특정 후보에 기표한 표도 인지도가 높은 정당 지도자나 당이 부여한 사전 순번에서 앞순위에 배치된 후보들에게 쏠리는 현상도 일어난다. 고로 특정 후보에 기표한 유권자가 적기 때문에 후보별 득표만 따질 없는 사정이 있다.

한국의 경우후보를 선택할 없는 대한 불만 만연해 있었으므로, 개방형 명부가 주어질 경우 후보를 기표하는 유권자가 네덜란드나 스웨덴보다 훨씬 많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여성 할당 등의 원칙을 적용하려면 단순 득표순으로 당락을 정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사전 순번을 부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가령 여성 할당을 적용한다면, 비례대표 당선자 이상을 여성에게 할당하고, 여성 후보는 당내 전체 득표 순위가 아니라 당내 여성 후보 득표 순위에 따라 당락이 결정되도록 하게 하면 된다.

개방형 명부 도입할 경우 대폭 커지는 투표용지,
‘터치스크린’이 곤란하다면 ‘OMR 카드’는 어떨까 

500 회의 공론조사 결과지역구는 소선거구제 다수 의견이었다. 이를 따르자면 개방형 명부는 지역구에는 필요없고 기존부터 이어져오던 전국구 정당명부 비례대표에만 적용하면 된다.

여기서 제기되는 것은 기술적이고 실무적인 준비다. 비례대표 의석을 현행대로 유지하더라도 47석을 선출하게 된다. 상태에서 정당뿐 아니라 각 정당이 비례대표후보들이 모두 투표용지에 들어가게 된다면? 150석을 모두 전국단일선거구개방형 비례대표제로 뽑는 네덜란드만큼은 아니겠지만 투표용지가 크고 복잡해질 것이다.

▲네덜란드의 투표용지. 네덜란드는 하원의원선거에서 유권자가 지지 정당뿐 아니라 지지 후보도 선출할 수 있도록 개방형 명부제를 채택하고 있다. 게다가 하원의원 150명 전원을 전국 4개 선거구에서 선출하고 후보자가 전국 4개 선거구에 모두 등록하는 것이 가능하므로(실질적으로 전국단일선거구) 투표용지 크기가 엄청나게 커진다.

투표용지가 커지는 자체는 민주주의 정치를 저해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차피 칸 하나에만 기표할 유권자에게 커다 투표용지를 제공하는 것은 환경 자원 관리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대폭 커진 투표용지가 기존에 사용하던 전자분류기에 적합할지도 고려해야 한다.

터치스크린 방식을 통해 지지 정당을 고른 다음 당의 후보들을 살펴보고 기표하는 방법도 가능하다(해킹 우려 때문에 전자 기기로 투표와 개표까지 다 소화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기표까지만 해서 종이로 출력하는 것이 그나마 현실적이다). 하지만 기기를 제작하고 설치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민주주의에 필요한 비용이라면 무작정 아낄 일은 아니겠지만, 도입 과정에서 시민들의 반감과 항의가 커질 우려가 있다. “이렇게까지 해서 개방형 명부를 도입할 바에 아예 비례대표제를 없애자 포퓰리즘이 도질 수도 있다.

필자가 이런 고민을 하는 가운데 선거제도에 깊은 관심을 두고 연구해왔던 조제희 공인노무사 변호사가 적당한 제안을 해왔다. ‘OMR 카드 기표. 정당별, 후보자별로 번호를 매긴 명단을 투표소 기표소 벽에 붙여놓고, 유권자로 하여금 지지 정당과 후보의 번호를 OMR 카드에 표시하도록 하는 것이다.

‘명단 부착 및 번호 부여’는 핀란드처럼 육필로 투표하는 방법과도 연계될 수 있다. 다만 육필 투표를 투표지 분류기가 얼마나 읽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투표 및 개표상의 이점과 난점을 고려하면, ‘OMR 카드’와 컴퓨터 사인펜을 이용하는 방법이 최적인 듯하다.

김수민 객원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