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054] 소멸하는 도시와 정상가족, 자영업자의 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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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돈까스’와 ‘신선한 치킨’, ‘훈이네 슈퍼마켙’. 드라마 <무빙>에 등장하는 자영업자 이미현, 장주원, 이재만은 안정된 직장에서 밀려나거나 저잣거리를 떠돌다 결국 자영업 시장으로 밀려난 이들이다. IMF 이후, 한국 사회에서 생계형 자영업 시장은 시작할 자격을 묻지 않되 끊임없이 혹독한 책임을 묻는 복마전이나 다름없는 곳이 됐다.

지방 한산한 도시에서 자영업 시장은 사뭇 다른 풍경으로 다가온다. 경북 한 소도시, 역전과 시장을 잇는 중앙통 표구사에 들어와 산 지 30년, 그 세월만큼 늙어가는 거리의 모습은 목가적이고 쓸쓸하다. 옆집 체육사 사장님은 떠나시고 그 자리에 아들이 있다. 영업이익도 이전만 못 하다. 수족관집 아들은 출가해 명절에나 모습을 보인다. 철없는 표구사집 아들은 말할 것도 없다. 오랜 명맥을 이어오는 동안, 타인과의 경쟁은 자신과의 오래달리기 경쟁으로 전환되었다.

도시가 점차 번성해 가던 시기 생사를 걸고 타인과 경쟁하던 자영업 시장은 도시 축소와 공동화, 온라인 판매가 활성화되면서 경쟁보다는 시장 자체의 소멸을 걱정할 상황이 됐다. 앞집 사진관은 명절 특수조차 못 누린지 오래다. 온 가족이 모이는 참에 찍던 가족사진 수요도 휴대전화 사진기가 발달하며 자취를 감췄다. 표구사에도 명절 특수는 옛말이다. 제사용 병풍 수요가 없다시피 하다. 가족 자체가 해체되고 있으며, 문화적으로도 점차 제사를 지내지 않게 되고 있다.

지방이 축소하고 가족이 해체되는 시대, 가족 경영이 기본값인 자영업도 서서히 소멸을 향해 가고 있다. 고유한 빛깔과 양식으로 거리에 연륜을 더하던 형형색색한 매장들. 3대 째 이어오던 한의원, 40년 전통 보석집도 폐업한 연휴 한산한 거리에 기업형 프렌차이즈 매장 로고송이 메아리친다. 그나마 살아남은 이들은 결핍된 사회보장제도 대신 주식, 부동산, 로또를 믿는다. 초능력자가 들어온 들 뾰족한 수가 없는 곳이 바로 자영업 시장이다.

간만의 긴 연휴지만 추석 당일에도 중앙통 상가의 불빛은 밝았다. 아버지(김두식)의 귀환으로 정상 가족이 되어 행복한 결말을 맞이한다는 이야기는 드라마에나 있다. 그런 것보다는 언젠가 지금 바로 곁에 있는 이웃들과 마당에 모여 막걸리라도 한잔 나눌 연합의 장이 있었으면 하고 상상해본다. 소멸을 향해 가는 지역일지언정, 지금 주어진 관계 속에서 위안과 힘을 얻는 명절 연휴가 되시길 기원한다.

▲중앙통 상가 거리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