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항쟁을 기억하는 시민모임’ 발족 준비···사진전으로 시작

10월 항쟁 사진 전시회 '그해, 10월'···오는 31일까지
이달 77주년 기념 사업 전개, 시민모임·합창단 회원 모집

09:37
Voiced by Amazon Polly

김수경(1920년 생, 침산동)의 아들, 김영호(73) 씨는 자신이 태어나고 이듬해 아버지를 잃었다. 김 씨 아버지는 1946년 대구 10월 항쟁에 참여해 경찰에 구금됐다 풀려났지만, 1950년 7월 다시 경찰에 연행돼 가창면 가창골에서 집단 희생됐다. 올해 7월에야 자신의 아버지가 ‘국가의 예비 검속에 따라 희생됐다’는 진실규명을 받았다. 아버지 일로 속앓이를 하던 어머니는 그가 11살 때 화병으로 사망했다.

5일 저녁 대구 달서구 ‘도나의 집(진천로 3길 85-11)’에서 열린 ’10월 항쟁 사진 전시회 : 그해, 10월’ 개막식에 참석한 김영호 씨는 “사진들을 이렇게 보니까 먹먹하고 그렇다”며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김 씨는 “내가 나서는 건 안 좋아하는데···힘든 기억들이 떠올라서 나서기가 어려웠다”고 눈물을 닦았다.

▲ 5일 저녁 대구 달서구 진천동 ‘도나의 집’에서 열린 10월 항쟁 사진 전시회 ‘그해, 10월’ 개막식에서 ’10월 항쟁 유족회’ 김영호 씨는 먹먹한 심정을 전하며 눈물을 흘렸다.

개막식에 참석한 10월 항쟁 희생자 유가족 7명은 전시회를 준비한 ’10월 항쟁을 기억하는 시민모임(준)’에 감사를 표하며, 지난날의 아픔을 떠올렸다.

개막식은 사진전 취지 및 소개, ’10월 항쟁을 기억하는 시민모임’ 제안, 개막 이벤트, ‘평화를 노래하는 가수’ 우창수·김은희 씨의 공연 등으로 진행됐다.

이재갑 사진작가는 ’10월 항쟁 및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유족들에게 옛 사진과 자료를 받고, 이들의 모습을 직접 사진으로 담았다. 최근에서야 이뤄진 유해발굴에 대한 내용도 전시장 한 켠을 차지했다. (관련기사=‘73년 만에’ 대구 가창골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유해발굴(‘23.05.24))

이재갑 작가는 “사진 전시를 통해 과거와 현재, 미래를 담고자 했다. 과거 희생자들의 모습과 현재 유족분들의 모습, 유해 발굴 과정, 그 다음에 유족뿐만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 기억하고 이어갈 수 있었으면 했다”며 “작은 마음들이 하나씩 모여 우리를 움직이게 한다고 생각한다. 어린 아이들부터 온 식구들이 와서 함께 보고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사진작가 이재갑 씨는 ’10월 항쟁 및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유족들에게 옛 사진과 자료를 받고, 이들의 모습을 직접 사진을 담았다. 이 씨가 개막식에서 전시회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10월 항쟁을 기억하는 시민모임’은 전시회가 끝나는 31일 공식 발족할 예정이다. 시민모임 준비 중인 신영철 아가쏘잉협동조합 대표는 “유가족을 뵐 때마다 우리가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유가족의 아픈 기억을 넘어서서 더 많은 시민이 10월을 오래 기억했으면 한다”며 “전시회가 끝나는 날 여기에서 발족식을 갖고, 대표와 총무를 뽑고 계획도 세우고 열심히 해나갈 생각이다.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개막식 사회를 맡은 김경애 ‘도나의 집’ 대표는 “유가족들에게 ‘용기 있는 분들’이라는 특별한 이름을 붙여드리고 싶다. ‘연좌제’라는 말씀도 해주셨는데, ‘역사 안’에서 나오기가 참 힘드셨을 것”이라며 “유가족만의 일이 아니라 지금도 벌어지고, 앞으로도 우리가 맞이할 일이라는 것을 모두가 잊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김 대표는 실들을 함께 연결하는 ‘개막 이벤트’ 의미도 밝혔다. 김 대표는 “기억은 이어져야 한다. 사람과 생명, 시간을 연결해서 함께 미래를 만들어 나가자”고 설명했다.

그리운 이여 돌아오소서 맨발이라도 돌아오소서
우리 다시 꽃을 피워요 저 담장 아래 붉은 동백을 우리 다시 꽃을 피워요
저 들판 위에 하얀 구절초

‘평화를 노래하는 가수’ 우창수 씨는 자신이 작사·작곡을 한 ‘시월이 동백에게’를 구슬프게 불렀다. 우 씨는 “10월 항쟁은 많은 사람이 모르는 것 같다. 대구 분들도 많이 모르더라”며 “권력이 자신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대구뿐만 아니라 경북, 거창, 제주 등 한반도 곳곳에서 민간인 학살이 자행됐다. 함께 기억하기 위해서 이 노래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우창수 씨는 향후 시민모임에 대한 기대감도 드러냈다. 우 씨는 “여기 유가족분이 그동안 너무 애써오셨다. 어떻게 하면 그분(희생자)들의 명예회복을 돕고, 아이들에게 역사를 전해줄 수 있을까 고민했다”며 “전시회를 통해 많은 사람을 모으고, 시민모임을 만들고, 합창단도 만들려고 한다. 많은 힘을 보태 달라”고 했다.

이달 ’10월 항쟁 77주년 기념사업’이 대구 곳곳에서 전개된다. ’10월 항쟁을 기억하는 시민모임’ 및 ‘시월합창단’을 희망한다면 사진전 현장 가입 또는 구글폼(클릭)을 통해 신청 가능하다.

대구 10월 항쟁은 1946년 미군정의 친일파 등용과 잘못된 식량 정책 등에 반발해 일어난 시민 항쟁이다. 10월 1일 대구역 광장에서 열린 시민대회에서 경찰 발포로 다음 날 대구 시내 곳곳에서 봉기가 이어졌고, 그 후 두 달 동안 전국으로 확산됐다. 2009년 진실화해위원회가 공권력에 의한 희생이었다는 진상규명 결정이 이뤄졌고, 10월 항쟁 유족회가 결성됐다.

장은미 기자
jem@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