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053] ‘손끝’, 시대의 우울과 연대의 가능성까지 한 ‘Q’에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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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결투쟁’이 사라진 세태에도 자생적으로 발현되는 모색과 전망

청년세대의 불안정노동과 취업절벽 사태, 이로 인한 ‘의자 뺏기’의 세태는 동 세대 젊은 영화인들의 작업에서 하나의 경향적 소재로 자리를 잡은 지 오래다. 이전 세대의 작업에서 일말의 장밋빛 전망을 엿볼 수 있었다면, 요즘 세대의 작업들에선 단결과 연대를 통한 승리의 경험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그들이 직접 체험해보지 못한 것을 강요할 순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반 창작집단 ‘장산곶매’의 <파업전야>가 앞 세대의 단호한 투쟁 의지와 승리의 낙관을 압축한 예시라면, 2014년 부지영 감독의 <카트>는 연대의 가능성만 남긴 채 열린 결말로 마무리된다. 2023년 개봉한 정주리 감독의 <다음 소희>는 단결투쟁을 상상하기도 힘들어진 세대의 음울한 초상을 사실적으로 담아낸다. 의지의 박약이 아니라 ‘시대의 반영’이다.

대안적 전망 추구를 대신해 나타나는 경향은 몇 갈래로 나뉜다. 우울한 현실의 극사실적 재현, 사실주의를 넘어서는 극단적 표현, 견디다 못해 현실로부터 도피 등의 흐름이 그것이다. 이 흐름들은 서로 뒤섞이거나 변주되면서 (적어도 한국독립영화 창작경향 내에선) 범람하는 중이다. 그런 와중에 급속도로 식상해져 보이기도 한다. 혹자는 굳이 현실에서 관찰되는 걸 영화로까지 봐야 하나며 진저리를 치기도 한다. 그렇지 않아도 견디기 힘든 문제를 이중삼중으로 체험하고 싶지 않은 심정도 이해 안 가는 바가 아니다. 딱히 해당 영화들이 문제 해결의 단초를 내포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하지만 그저 현실을 투영하거나 심지어 ‘소비’하는 데 그치는 작업들이 지루해질 쯤 되면 언제나 리얼리티를 장착하고 자기반영적 경험을 기반으로 흥미로운 작업들이 속속 등장하곤 한다. 비록 이전 세대가 추구했던 대안적 세계관에 도달하진 못할지언정 일단 현실의 구체적 담지에서 출발해야 하는 법이다. 지역에서 대학의 정규 아카데미 대신 신진영화인들의 산실로 자리를 잡은 대구영화학교 (2기) 출신 정수연 감독의 단편 <손끝>은 이제 어디서나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소재와 배경을 갖고도 영화 밖 현실을 단지 사진처럼 그려내는 한계를 도약할 가능성을 엿보게 해준다. 그저 묘사에 그치지 않고 작가적 비전을 담아 변화를 위한 필요충분조건을 제기하는 만만찮은 솜씨를 선보인다.

◆ ‘역지사지’의 가능성과 난맥상을 동시에 선보이는 명민함의 영화

주인공 ‘수민’은 아르바이트로 일하던 빵집에서 일방적인 해고를 당했다. 그 이후로 다른 직원들과 함께 사업주를 부당해고로 신고한 상태다. 하지만 문제는 3달 넘게 해결되지 않고 질질 끌기만 하는 상태다. (노동청에 진정해본 경험이 있다면 실감할 테다) 업주는 소송 진행을 핑계로 체불된 임금도 지급하지 않고 버티는 중이다. 어디서나 목격할 법한 흔하디흔한 풍경이다. 막막한 지경에 처한 수민은 동료 알바생의 연락을 통해 빵집 매니저가 혼자 사장과 합의 후 복직한 사실을 알게 된다. 수민은 매니저에게 따지러 밤중에 가게를 찾아가게 된다.

스토리만 놓고 보면 2000년대 들어 단편독립영화 소재로 차고 넘치게 양산되는 전형적인 청년 잔혹역사 이야기다. 하지만 감독은 여기에다 파격적이진 않지만, 섬세한 터치와 아이템을 추가시켜 인상적인 변주를 이끌어낸다. 수민은 기분전환 겸 참여한 친구들과 모임에서 예쁘게 공들여 작업된 친구의 네일을 매혹적으로 응시한다. 그런데 들어보니 생각보단 큰돈이 들지 않는단다. 기분도 꿀꿀한 참이다. 울적할 때 새 옷이나 신발을 사거나 머리를 새로 다듬는 건 굳이 ‘ㅆㅂ비용’이라는 신조어를 언급할 필요 없이 누구나 흔히 생각하게 되는 일이다. 수민은 자신의 거칠어진 손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는 매니저에게 항의하러 이전에 일하던 빵집으로 향한다. 길을 가던 중 우연히 동네 네일숍을 지나게 된다. 진열대에 가득한 네일숍 상품을 박스에 정리하던 수민 또래의 젊은 주인은 수민의 여태껏 단 한 번도 네일이라곤 해보지 않은 손을 주시한다. 가게 주인은 싼값에 네일 서비스를 해주려 한다. 하지만 수민은 자신도 그 정도 비용은 낼 수 있다며 정상가를 치르겠다고 한다. 네일숍 주인은 그 대신 손에 바르라며 오일을 덤으로 끼워준다.

마침내 매니저와 대면한 수민은 자기 사정을 강변하는 걸로 일관하는 상대방과 몸싸움이라도 벌일 기세다. 매니저는 챙겨야 할 가족이 있는 자기가 수민보다 더 힘들다며 딱히 변명할 생각도 없어 보인다. 자신은 이렇게라도 살아야 하니 욕할 테면 욕하고 얼른 가라는 식이다. 사과조차 받지 못한 수민은 어처구니가 없다. 그 순간, 쓰레기를 비우는 매니저의 거친 손이 그의 눈에 들어온다. 수민은 신고절차 취하의 나머지 정리는 매니저가 ‘결자해지’하라며 자리를 떠난다. 그렇게 밤길을 되돌아오는 수민의 시선에 불이 꺼진 채 가게를 내놓는다는 표식이 붙은 네일숍이 들어온다. 자신이 받은 오일을 꾹 쥐는 수민의 손끝이 영화의 시작과 끝을 수미상관으로 연결한다. 그렇게 십여 분 남짓한 영화의 시간이 마무리된다.

◆ 분열된 세계의 초상, 그리고 작은 연민의 가치를 설파하다

▲[사진=영화 손끝]

‘을’과 ‘을’의 물러설 길 없는 외나무다리 결투는 지난 십여 년간 한국독립영화의 단골 주제로 자리 잡았다. 굳이 사회적 발언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사회 곳곳에서 그런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분출하는 세태 때문일 것이다. <손끝>에서도 사태의 원흉인 사장은 목소리조차 등장하지 않은 채 범접 불가능한 흑막이자 거역할 수 없는 질서로 영화 속에서 ‘보이지 않는 손’처럼 군림한다. 중년의 여성 매니저는 양심과 신의 같은 고결함은 포기한 지 오래다. 한참 어린 수민에게 부끄러움은 내팽개친 채 생존에만 급급한 타락한 ‘을’의 초상이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겪게 되는, 인간에 대한 불신을 쌓게 만드는 전형 격이다. 하지만 타인의 사례라면 누구나 앞다퉈 손가락질하며 단죄할 테지만 정작 자신이 그런 경우에 처하면 합리화하기 급급하기에 더 쓰라린 목격담이 된다.

하지만 수민에겐 처음 보는 낯선 이에게 관심과 호의를 베푸는 네일숍 주인이 있다. 수민은 아마 가게를 정리하던 주인에게 마지막 손님이었을 게다. 골목 한구석의 목도 썩 좋아 뵈지 않던 작은 네일숍이다. 수민 역시 여러 번 지나가면서도 눈길 제대로 주지 않았을 테다. 주인은 자기 선에서 임대료를 내며 꾸려갈 만하다 생각해 가진 것 털어서 가게를 차렸을 테다. 하지만 (영화가 제작된 시기를 감안한다면) 우리가 주변에서 피부로 느끼는 자영업자 대란 속에서 우는 아이 뺨 때리듯 닥친 대 역병 불경기를 견디지 못해 폐업에 이르렀을 테다. 폐업처리를 위해 진열된 제품을 박스에 넣던 네일숍 주인의 처지 역시 수민과 별반 다를 리 없다. 오히려 손실 규모는 훨씬 클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이기에 네일숍 주인은 세상을 원망하고 남 탓해도 하등 이상할 게 없다. 하지만 수민의 거친 손과 생전 처음 네일을 해본다는 고백이 그의 마음을 움직였으리라. 수민은 그녀의 후의에 의해 인간에 대한 절망으로 치닫지 않을 수 있었다. 적어도 매니저처럼 남을 해치거나 짓밟지는 않는 ‘어른’이 될 희망이 네일숍 주인의 연민 덕분에 꺼지지는 않을 수 있게 된 셈이다. 소박한 공감과 응원이 갖는 힘을 이 영화를 만든 이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수민은 대학을 졸업하고 자리 잡지 못한 채다. 원룸 월세 내는 것도 빠듯할 테다. 어렵사리 결심해 친구들과 만났지만 이미 친구들 역시 과거의 수평적 관계와는 거리가 멀다. 비슷한 조건과 형편에 맞춰 그들은 분열되고 재구성될 테다. 참석하지 않은 친구들의 근황은 이제 굳이 관심사가 아니라는 게 대화에서 확인된다. 아마 수민 역시 다음 모임에는 나타나지 않을 확률이 높다. 네일아트를 미용실 가듯 자연스럽게 갈 여건이 되는 친구와 그렇지 못한 친구들은 경조사 참석여부부터 나눠질 게 뻔하다. 세상은 그렇게 거창하게 ‘계급’ 운운하지 않더라도 일상에서부터 분리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필사적으로 사다리를 올라가려 할 테고, 포기하고 체념한 이는 희망이 없는 하루하루 연명하기에 급급할 테다. <손끝>의 소우주는 소리 높여 그런 세태를 주장하지 않지만 자연스럽게 관객이 현실에 대해 돌아보게 만드는 중력을 가졌다.

▲[사진=영화 손끝]

◆ ‘손끝’으로 그려낸 지금 세상의 풍경, 그리고 ‘꺾이지 않는 마음’

감독은 사람을 평가할 땐 말이 아니라 손을 관찰하라는 흔한 격언을 모범적으로 영상화해낸다. 또한 사람을 추하게 혹은 비겁하게 만드는 가난이라는 환경을 판에 박힌 형태로 묘사하는 위기를 피하는 데에도 성공한다. 상대적 빈곤과 하루살이 경제상황을 이해할 생각이 없는 기성세대라면 손가락 네일을 굳이 돈 들여 바르는 행위를 이해하지 못하고 혀를 차며 매도할 법하지만 말이다. 영화 속에서 네일은 다양한 층위로 영화의 주제와 배경을 환기하는 장치로 맡은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해낸다. 또한 가난에 관한 묘사가 기계적 환경결정론 vs 의지론 양자택일로 기울지 않으면서도 개개인에게 미치는 다양한 영향력을 예시하는 데에도 일정 수준 이상 성취를 이룬다. 평범해 보이지만 은근히 숨은 미덕이 많은 작업이다.

영화는 극단적 사건이나 폭발적 감정표출 같은 극적 설정 없이 수수하게 완성되었지만, 차가운 현실에 직면해 맞서는 의지를 놓지 않는다. 그저 극단적 설정을 불행 포르노처럼 전시하고 도주하거나, 견디기 힘든 나머지 예전 좋았던 시절로 도피하는 판타지로 치닫는 결론 소환과 판이하게 다른 방법론이다. <손끝>은 우리 앞에 펼쳐진 부당한 세상을 정면으로 응시하길 포기하지 않는다. 적어도 이 작품은 자신이 발을 딛고 선 현실을 감당하려 애쓴 노력의 결실인 것이다. 여기가 ‘로도스’이기에 그 출발도 바로 여기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마침 손끝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계절이 돌아왔다. ‘가난’이 절대빈곤 대신 상대적 박탈감으로 표출되는 현재 세태에서 ‘손끝’, ‘발끝’이 시린지 여부는 21세기 한국사회 ‘가난’의 한 표상임에 틀림없다. 난방 마음껏 틀지 못하고 방한장구 빵빵하게 갖추지 못한 이들에겐 그저 버티고 견뎌야 할 엄동설한에 직면한 관객에게 <손끝>은 활활 타오르는 벽난로는 못될 테지만 누군가 꾹 쥐어준 핫 팩 손난로쯤은 될 수 있겠다. 좀 더 많은 이들에게 알려졌으면 하는 준수한 작업이다.

<작품정보>

손끝 Fingertip
2021|한국|드라마|14분 28초
각본/감독/편집 정수연
출연 김도영(수민 역), 박희은(진희 역), 홍예지(윤정 역)
제작 김재은 (제작팀 장주선, 김태오)
촬영/조명 김도안 (촬영팀 권민령)
사운드 김태형
분장 이수빈
조연출 남가원, 이효미
스크립터 김예희. 박찬우

2021 47회 서울독립영화제 뉴-쇼츠 초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