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부재’ 속 소란한 21주기 대구지하철참사 추모식

올해도 상인회 반대집회로 추모식 갈등
홍준표 대구시장 불참···지역 정치인도 다수 불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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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주기를 맞은 대구지하철참사 추모식은 ‘정치의 부재’가 어떤 슬픔을 낳는지 그대로 드러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불참했다. 지난해에는 시민안전실장이라도 참석했지만, 올해는 책임있는 관계자 누구도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거대양당인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도 당 차원의 참석은 없었고, 그 빈자리를 인근 상인들의 추모식 반대 목소리가 채웠다.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21주기 추모식’은 18일 오전 9시 53분 화재 사고 시각에 맞춰 대구 동구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에서 시작됐다. 개회 및 묵념으로 시작했고, 이동우 2.18안전문화재단 이사장 직무대행과 김찬휘 녹색정의당 공동대표와 오준호 새진보연합 공동선개대책위원이 추도사가 이어졌다. 이후 백시향 한국문학예술원장의 추모시 낭송과 2.18합창단 추모 공연, 윤석기 대구지하철참사희생자대책위원회 위원장 인사말 순으로 진행됐다. 추모식은 참석자들이 ‘추모탑’에 헌화하며 마무리됐다.

▲ 18일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21주기 추모식’에서 발언하는 윤석기 대구지하철참사희생자대책위원회 위원장 옆으로 상인회 관계자들이 든 ‘추모식 반대’ 현수막이 보인다.

홍준표 대구시장을 비롯한 대구시 관계자,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불참했다. 지역정치권에선 녹색정의당과 새진보연합, 진보당이 참여했고, 개인 자격으로 이앵규 국민의힘 대구시당 전 사무처장과 노남옥(더불어민주당, 도평·불로봉무·공산·방촌·해안동) 동구의원 등이 참석했다.

추모식에선 대구지하철 참사 추모식을 둘러싼 갈등을 두고 대구시와 정치권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공통적으로 나왔다. 특히 대구시가 유가족과 상인들에게 한 약속대로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를 추모공원으로, 안전조형물이 아닌 추모탑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조됐다.

오준호 새진보연합 공동선거대책위원은 “먼저 이 사고로 희생된 192명의 영혼을 추모하고, 부상자와 유가족 여러분께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며 “화해의 장이 되어야 하는 오늘 추모식에 저런 소란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정치의 실패를 보여준다. 홍준표 시장은 이 자리에 와서 지금 이 공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고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짚었다.

이어 “문제는 대구시, 그리고 장기집권 여당인 국민의힘의 태도다. 추모공원 이름을 찾고 온전한 애도를 위한 위령탑을 설치하기로 대구시는 약속했지만 20년 째 약속을 지키지 않고, 그 약속을 지키라며 시청을 찾아간 유가족을 홍 시장은 강제퇴거로 대답했다”면서 “순수한 유가족과 불순한 유가족으로 갈라치기 하는 시간에 본인이 자랑하는 추진력으로 2.18추모공원을 제대로 지정하고 추진하라”고 촉구했다.

김찬휘 녹색정의당 공동대표도 “21년 전 대구지하철 참사에 방화범과 기관사 책임이라고 말한 사람들이 있었고, 10년 전 세월호 참사에선 선장의 책임, 해상 교통사고라고 했다. 이태원 참사에선 놀러가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했다”며 “참사의 1차적 책임은 책임지지 않는 국가다. 추모공원이 시민안전테마파크로, 추모탑이 안전조형물로 불리는 현실에서 기억은 왜곡되고 짓밟힌다. 정치가 바로 서지 않으면 이 문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고 말했다.

▲ 18일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21주기 추모식’에 홍준표 대구시장을 비롯한 대구시 관계자들과 거대양당인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들은 불참했다. 김찬휘 녹색정의당 공동대표와 오준호 새진보연합 공동선개대책위원이 참석해 추모사를 전했다.

윤석기 대구지하철참사 희생자대책위원장은 두 사람의 추도사에 공감과 감사를 표하면서, “지난 13일부터 16일까지 대구시청 산격청사에서 저와 유족들이 홍준표 시장 면담을 요청하며 시위를 했다”며 “그 과정에서 대구시 공직자들은 홍 시장이 전임 시장이 약속한 것을 지키지 않는다, 정치인이 한 공약을 왜 지키냐고 하더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추모사업은 정치공약이 아니라 2003년도 발생한 대구지하철 참사의 법적 책임자이자 가해자인 대구시 행정기관이 법적 피해자인 유족들에게 피해 보상의 하나로 합의한 것이다. 누가 시장이 되든, 반드시 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팔공산 동화지구 상가번영회’, 추모식 내내 
빠른 템포 가요 틀고, 마이크 잡고 고성 내며 반발

팔공산 동화지구 상가번영회 10여 명은 ‘추모식 결사반대’, ‘대구시는 협약서 이행하라’ 등의 현수막과 손팻말을 들고 빠른 템포의 가요를 크게 틀거나 마이크를 잡고 발언을 하는 등 추모식에 대한 반대 의사를 밝혔다. 이들 집회는 추모식 시작 전부터 시작돼 2시간 여 추모식 내내 이어졌다.

팔공산 동화지구 상가번영회 관계자는 “테마파크가 들어올때 추모시설이 아니라고 했다. 대구시가 우리와 한 협약을 이행해 달라”며 “우리도 참사와 무고한 희생은 마음 아프고 안타깝다. 그러나 이 자리는 사고 현장이 아니다. 다른 곳에 가서 추모행사를 하길 바란다”고 목소리 높였다.

상가번영회 측은 지난 2022년 2월 당시 대구시와 2.18재단 측이 했던 협약을 지키라는 입장이다. 당시 협약서에는 동화지구 경제 및 관광 활성화를 위해 관광 트램 설치, 파계사에서 동화사를 거쳐 갓바위까지 단풍 백리길 조성, 도시재생사업 추진하는 대신 유가족들의 추모식 허용과 안전상징조형물을 추모탑으로 명칭 변경, 시민안전테마파크를 2.18기념공원으로 명칭을 병기하는 내용 등이 담긴 것으로 확인된다.

▲ 18일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21주기 추모식’이 진행되는 동안 팔공산 동화지구 상가번영회는 추모식을 반대하며 빠른 템포의 가요를 틀고, 마이크를 잡고 반대 발언을 하는 등 반발했다.

장은미 기자
jem@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