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평리 송전탑 반대 운동 속 성폭력’ 공론화…“대의에 묻힌 권리”

급박한 투쟁 속에 무시됐던 일상..."운동사회 오래된 문화" 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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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07 12:57 | 최종 업데이트 2018-02-14 16:21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한 사회운동. 거대한 권력과 맞선 싸움 속에서는 종종 대의라는 이름이 짓누른 권리들이 있다. 어떤 이들에게는 그 어떤 권력보다 훨씬 더 커다란 권력으로 다가왔다. 삼평리 송전탑 반대 운동도 예외는 아니었다. 2년여 만에 힘겹게 입을 뗐다.

5일 오후 7시,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 중회의실에서 삼평리송전탑건설반대운동에서일어난성폭력및위계폭력해결을위한모임(해결모임)과 뉴스민은 5일부터 연속집담회 <삼평리에서 강남역까지> 1차 ‘삼평리에서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열었다. 사전신청을 받아 비공개로 진행된 이번 집담회에는 20여 명의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모였다.

해결모임에 따르면, 가해자는 모두 3명이며 해결모임이 직접 면담한 피해자와 주변인은 모두 12명이다. 대표적인 피해 사례는 남성 활동가의 ‘포옹 인사’였고, 피해자는 대부분 20대 여성 활동가였다. 개별 피해 사례는 집담회 시간에만 공유됐고, 모두 비공개하기로 했다.

피해사례 발제를 맡은 민뎅 씨(피해자 면담인)는 "나이 어린 여성 활동가들에게 계속해서 일어났던 원치 않는 신체접촉이 있었다. 피해자가 어떤 식으로든 부정적 표현을 하면 그만하고, 다른 이에게 가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 반복됐다"고 말했다.

이어 "나이 어린 활동가들이 모인 자리에서 공공연히 이야기되고, 남성들 역시 인지하고 있는 만연한 문제였음에도 공식적인 문제 해결 노력이 한 번도 없었다"고 밝혔다.

피해 사례 발표가 끝나자 남은주 대구여성회 대표는 "이 정도 사안은 성폭력특별법이 만들어지기 이전에나 있던 사안이다. 가장 원시적인 성희롱, 더구나 오래 누적돼 피해가 심각한데도 문제 제기 되지 않은 것이 놀랍다"고 말했다.

한 참가자는 "사례 발표를 들으면서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었다. 처음에는 오랜만에 만나 반가워서 포옹하는 방식으로 인사했던 것 같고, 그 이후에는 성폭력일 수 있음을 개인적으로는 이야기했었다"며 "저 개인적으로 해결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떨까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참가자 역시 "저 같은 경우에도 보니까 누군지 알겠다. 저는 삼평리에서 그런 일이 있지는 않았지만, 그분은 항상 예쁜 누구야라며 인사했다"며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주변에서 아무도 그런 얘기하지 말라고 말리는 사람이 없었고, 저 역시 활동가들이 아닌 친구들에게 이 얘기를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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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평리 성폭력', 왜 드러나지 않았을까?
"운동의 대의 위해 일상적인 것 무시..."

해결모임은 피해자 면담, 가해자 면담, 집담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왜 삼평리 투쟁을 깎아내리려고 하느냐'는 등 협박 아닌 협박을 받았다고 한다.

민뎅 씨는 "삼평리 투쟁이 운동의 대의로만 이야기되고 일상이 무시되는 것들이 있었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며 "누군가는 호의적 표현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그동안 쌓인 공통적인 분노가 있었고, 그 속에서 누군가는 삼평리 투쟁에 대한 신뢰를 잃어 갔다"고 말했다.

진냥 씨(피해자 면담인)는 "가해자 면담에서 '내가 행동대장이어야 했다'는 표현이 공통적으로 나왔다. 삼평리 투쟁은 전쟁이나 군대였고, 본인이 일정 부분 통솔해야 했다. 결국 폭력성을 가지는 게 자기 역할이란 말"이라며 "그럴 수 있었던 건 그들의 권력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어떻게 보면 대구⋅경북 운동사회 연대가 집약된 곳이 삼평리였다. 가해자들이 대구로 돌아오면 똑같은 일이 반복된다. 한 집회에서 공간분리를 요청했더니 거절당한 적도 있다"며 "삼평리에서 일어난 일만 해결할 것이 아니라, 대구⋅경북 전체 운동사회가 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신박진영 대구여성인권센터 대표는 "피해자들은 그 운동에 연대하러 갔기 때문에 그 운동 안에서 인정받고 싶었을 거다. 당사자는 그 피해 때문에도 힘들었겠지만, 내가 이걸 문제시했을 때 이 운동에 가해자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에 더 힘들었을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운동사회에서 이런 식의 문화는 오래 누적돼왔고, 계속되고 있다. 한 명의 이상한 가해자 문제가 아니라 그에 대한 제재 없이 계속 가해가 발현될 수 있는 문화가 문제다"며 "묵인 또는 침묵이 아니라 적극적인 동조 하에 이런 행위들이 반복되는 거다. 이 자리가 앞으로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더 이상 그냥 넘기지 않겠다는 최초의 발화점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오는 19일에는 2차 집담회 ‘누군가에게 불편한 집회와 농성장’, 3차 집담회는 8월 3일(수) ‘우리 모두의 변화를 위하여’, 8월 24일(수)에는 ‘평등한 집회 및 농성을 위한 실천선언 선포식’이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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