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권 독립’ 요구한 매일신문 기자들, ‘조직 우선’ 호소문 낸 노조

매일신문 41기 이하 기자들, 천주교대구대교구에 편집권 독립 요구
사측인듯한 노조 호소문..."서로 한 발 물러나자는 취지"

19:17

대구시립희망원 인권 유린 의혹에 대한 소극적 보도와 관련해 ‘매일신문’ 기자들이 천주교대구대교구로부터 편집권 독립을 요구하고 있다. 이 가운데 매일신문노조(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언론노동조합 매일신문지부)가 오히려 회사를 대변하고 나서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13일 ‘매일신문’ 편집국 41기 이하 기자들(2000년 이후 입사)은 대구시립희망원과 관련한 소극적 보도와 일방적 해명 기사 게재를 비판하는 대자보를 사내에 붙였다. 매일신문사는 대구시립희망원과 같은 ‘재단법인 천주교대구대교구 유지재단’ 소유다.

이들은 대자보에서 “지난 1년간 침묵으로 일관했던 시립희망원 문제에 대한 첫 보도가 일방적인 해명 기사였다”며 “매일신문은 순식간에 시민사회의 비난을 뒤집어썼다. 진흙탕 싸움에 스스로를 내던진 꼴”이라고 지적했다.

대구시립희망원 관련 <매일신문> 첫 보도는 “시립희망원엔 1,500여명이 자원봉사 생활인 입·퇴소나 외출도 자유로워”라는 제목으로 지난 8일 <매일신문> 1면에 실린 기사다. 그동안 제기된 의혹에 대한 대구시립희망원 해명을 기사로 실었고, 작성자는 ‘사회부’다.

▲10월 8일자 매일신문 1면에 실린 대구시립희망원 관련 기사.

앞서 대구시립희망원 인권유린, 노동착취 등 의혹에 국가인권위원회 조사, 국정감사가 이루어지는 중에도 매일신문은 관련 기사를 한 건도 보도하지 않았다. 이에 기자들은 “교구 입장 대변이 언론 윤리와 매일신문 구성원의 자존감을 지키는 일보다 앞설 수는 없다”며 “편집권 독립은 온데간데없고, 언론 윤리와 존재 이유, 사회적 책무도 지키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해당 사태에 대한 편집국장 공식 사과 ▲편집국장과 구성원 사이 공식 소통기구 마련(신문 편집 방향 논의) ▲편집권 독립 해치는 일방적인 취재 지시와 기사 누락 재발 방지 대책 ▲시립희망원을 비롯한 교구 문제와 관련해 언론 윤리에 입각해 처리할 것 등을 요구했다.

대자보가 붙고 나서야 천주교대구대교구와 대구시립희망원 공식 사과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후 ‘매일신문’ 편집국장과 기자들 사이에 두 차례 간담회가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 편집국 기자는 “내부에서 편집국장, 부장급 선배들도 이번 문제 제기 자체에 대해서는 타당하다고 보는 것 같다”며 “아직 확답을 받은 건 없지만, 계속 소통이 오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 14일 매일신문노조 위원장 명의로 발표된 호소문이 논란이 되고 있다. 언론 공정성보다 회사 존재가 먼저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매일신문노조는 호소문에서 “이번 대자보는 대의적 명분도 있고, 젊은 패기와 기자정신을 갖고 있다면 당연히 문제 제기할 만하다고 여겨지는 대목도 있다”면서도 “대주주이자 매일신문 모체라고 할 수 있는 교구의 관계설정도 완벽한 해법이나 묘책을 찾기는 어렵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어 “언론의 공정성과 우리 조직의 사는 길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면 후자를 서슴없이 택하겠다”며 “혹시나 좌파적 시각을 가진 정치권이나 시민단체에서 이번 사태를 악용하려고 든다면 우리 조직은 더 씻을 수 없는 치명타를 입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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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언론노조 매일신문지부 호소문 일부

권성훈 매일신문지부장은 <뉴스민>과 통화에서 “교구에서도 희망원 사태에 대해 사과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한 마당에 내부에서도 서로 한발 물러나자는 취지로 썼다”며 “서로 생각이 다른 지점에 대해서 표시할 수 있는데, 서로 일방적인 주장만 하면 곤란하다”고 호소문 취지에 대해 설명했다.

천주교대구대교구와 편집권 독립에 대해서는 “교구가 직접적으로 하지는 않아도 대주주이기 때문에 (기자들) 스스로 눈치 보는 경향이 있었다”며 “대자보가 붙은 이후에 편집국과 기자들이 간담회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조의 호소문을 두고 매일신문 한 기자는 “(노조는) 아마 파국으로 치달았을 때를 우려한 것 같다. 갈등이 커지지 않기를 바랐던 것 같다”며 “그것과 별개로 편집국장과 기자들 사이에 의견 조율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시립희망원은 생활인 인권 유린, 노동 착취, 보조금 횡령 등 의혹으로 국가인권위원회, 국정감사 등에서 조사를 받았다. 이어 대구시 감사관실도 한 달간 종합 감사에 나섰고, 천주교대구대교구와 대구시립희망원은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