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남을 위한 욘수 철학] (2) 떡은 절대로 그냥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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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1 16:01 | 최종 업데이트 2018-03-21 16:05

[편집자 주: 현재 지방대 철학과를 다니고 있는 예비 실업자, 취업란에 마땅히 쓸 것 하나 없는 한국의 평범한 이십대들 중 하나로, 이런 자기 팔자를 어떻게든 뜯어 고치려고 노력 중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 ‘욘수’가 격주 수요일마다 대화로 풀어가는 철학 이야기를 연재한다.]

1.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거

: 그래서? 이제 뭐 할 건데, 미래에 내가 망하지 않을 방법을 찾을 거라며, 그럼 그 방법을 어떻게 찾을지 나한테 말해줘야지.

: 초, 중, 고, 대 도합 13년 동안 그 고민만 하다 내가 내린 결론은 이거야. 같이 철학을 공부하자.

: 너 이 새퀴 장난 지금 나랑 하냐? 같이 철학을 공부하자니. 꼴랑 철학 공부하는 것만으로 세상이 나아지면 진즉에 나아졌겠지.

: 너 네가 곧 망할 세상에서 잘살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다며? 그럼 먼저 세상이 어쩌다 이 꼬라지가 됐는지부터 알아봐야지. 그걸 알 수 있는 방법이 철학을 공부하는 거다. 세상이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를 분석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어떻게 이런 세상에서 잘 살 수 있는지도 알 수 있게 되는 거야.

: 그러니까, 왜 하필 철학을 하냐 이거지. 정치, 경제 뭐 이런 걸 공부해도 되잖아.

: 네가 말한 그게 다 철학인 건 아냐? 철학은 특정한 한 분야의 지식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세상을 잘 살 수 있을지를 고민하다가 자연스럽게 나온 학문이야. 그러니 우린 철학을 공부해야지. 한 분야의 지식을 공부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잘 사는 게 목적이면 말이야.

: 너 대학에서 철학 공부했잖아. 그럼 너도 철학 공부하는 게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지 잘 알 텐데.

: 그건 철학이 잘만 공부하면 최고의 학문이지만, 잘 못하면 최고로 쓸데없는 같은 학문이라서 그런 거야. 철학을 제대로 공부하려면,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처럼 옛날에 철학자들이 한 말을 그대로 따라 해서는 안 돼. 철학 공부는 철학자들이 한 주장이 과연 타당한지, 그들이 펼친 철학을 어떻게 지금 내 삶에 적용할 수 있을지를 늘 고민하면서 해야지.

: 그래서 넌 그렇게 철학을 할 수 있다는 거냐?

: 13년 동안 학교 공부를 싫어했던 만큼, 그 13년 동안 학교 밖의 공부했던 나다. 13년 동안 학교와 반대로 공부했던 사람이 말하는 거니까 한번 들어는 봐라.

: 그럼 한번 들어보지. 오늘은 무슨 철학을 같이 공부할 거냐?

: 신비주의와 현실주의에 대해 공부할 거야.

2. 신비주의, 그것은 한탕주의

대표적인 자연 철학자 탈레스는 자연의 법칙을 발견하기 위해 밤하늘의 별을 관찰하다 우물에 빠져 하녀에게 구출된 적이 있다. 이때 하녀는 탈레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하녀: 나리, 나리는 세상의 원리 하나만 파악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말하면서, 정작 자신 앞의 우물도 어쩌지 못하시네요.

현대의 유사 사례
누군가: 집이 없다.....

사이비: 저희 교를 방문하세요. 제사를 지내면서 세상의 신묘한 원리를 따르면 집 문제는 물론이고, 당신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예요.

누군가: 돈이 없어서 방을 뺐는데, 지금 나보고 돈 내서 제사 지내라고? 그럴 거면 알바 해서 전세금을 모으지.

사이비: 전세는 500쯤 되지만 제사는 한 번에 50 정도밖에 안 해요.

누군가: 한 번 제사 지내고, 일이 안 풀리면 내 정성이 부족해서라고 말하고 또 제사 지내라고 할 거지? 니들 속셈 내가 모를 줄 알아?

탈레스: 아니아니, 그렇게 해서라도 세상의 원리를 파악하고 따른다면, 모든 문제들이 사라질 테니 자네에게 이득이네.

누군가: 넌 또 무슨 도르미야!

: 놀랍게도 이 도르미는 기원전 6세기의 자연 철학자야. 이 자연 철학은 세상을 이루는 한 가지 원리만 파악하면 세상 모든 문제가 저절로 해결된다고 주장하지.

: 그건 또 무슨 멍멍이 소리야?

: 그렇지? 원래 현실에서 문제가 일어날 때는, 다양한 사회적인 원인에 의해서 일어나는 건데 말이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분석하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지 이런 한탕주의에 빠져서 쓰나.

: 한탕주의라니?

: 한탕주의, 그러니까 이것만 하면 내 삶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라는 바보 같은 생각 말이야. 복권 중독자들은 이번 한 번만 당첨되면, 사이비들은 이 교리만 믿으면, 자신의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믿고 복권을 사거나, 신을 믿지. 자연 철학자들도 마찬가지야. 세상을 구성하는 하나의 원리가 뭔지만 고민하고 파악하면 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대체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너는 예시에서 ‘나’가 지금 집이 없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해?

: 예시의 ‘나’가 집이 없는 이유는 돈이 없어 서지. 그리고 돈이 없는 이유는 돈 있는 부모에게 태어나지 못해서거나 자기가 돈을 벌지 않아서일 테고. 부자 부모한테 다시 태어날 수는 없으니까, 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기가 돈을 벌어야지.

: 내 말이 바로 그 말이야! ‘나’가 방을 빼는 이유는 지금 돈이 없어 서지, 세상을 구성하는 원리 따위를 파악하지 못해서가 아니잖아? 내가 지금 어떤 문제를 겪고 있으면, 그 문제가 무엇에 의해 일어났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야지. 대체 왜 이런 신비주의에 빠지냐는 말이야!

: 신비주의?

: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의 어떤 원리에 의해 모든 것이 정해지고 움직인다는 논리. 이런 논리를 스스로 어떤 문제가 일어나는 이유와 그 해결법에 대해 고민하길 귀찮아하는 사람들이 이용하지. 스스로 고민하기 귀찮아서, 또는 자신이 가진 문제들을 스스로 해결하기 힘들다는 이유만으로 신비한 무언가가 자신을 구원하길 맘 편하게 믿어버리는 거야.

3. 그딴 거 없다.

누군가: 하느님, 부처님, 천지신명이시여 님들 믿을 테니까. 제발 저 좀 잘되게 해주세요. 제에발.
하느님, 부처님, 천지신명님: 그딴 거 없다.

: 기원전 6세기의 철학자들만 이랬던 게 아니라, 현대에도 이런 사람들은 차고 넘쳐나지. 경기가 어려울 때 점집이 호황이거나, 수능 때만 되면 학부모들로 팔공산 갓바위가 터져나가는 것도 이거랑 비슷한 논리일 거야.

: ㅋㅋㅋ

: 웃지 마라, 너도 분명 비슷한 경험이 있을걸? 예를 들면, 시험 전날 공부 하나도 안 해 놓고 문제 찍은 뒤 시험 점수가 잘 나오길 빈다던가...

: ...너도 그런 적 있냐?

: 그랬더니 수학 점수가 2점 나오더라. 태어나서 2점을 받아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 어휴 이 한심한 놈 ㅋㅋㅋㅋ

: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스스로 노력도 안 하면서 신비한 어떤 존재, 또는 원리가 내게 행복한 삶을 주길 바라는 건, 공부도 안 하고 시험문제 다 찍은 주제에 만점 받길 바라는 만큼 터무니없다는 거야. 자신의 충분한 고민과 노력도 없이 누군가에게 비는 등, 그냥 뭔가 하나 해서 행복해지길 바라는 건, 말 그대로 하늘에서 떡이 떨어지길 기다리며 입만 벌리고 있는 격이지.

이번엔 현대 소설에서 그 사례를 들어볼까?

오빠, 이제 정신 차리고 열심히 사는 거야. 우리, 이제 옛날처럼 모여서 같이 공부도 하고 그러자, 응? 갑자기 정신이번쩍 들었다, 뭐? 정신을 차리라고?

“빛나야.”
“응?”
“나는 말이야, 아무래도 너랑 가는 길이 다른 것 같아.”
“달라? 뭐가 달라?”
“나는 말이야, 아직 철이 덜 들었나봐. 나는 좀, 그러니까 뭐라고 말해야 되나. 그냥 좀 무의미한 일을 하고 싶어.”
“무의미한 일?”
“사람들은 대부분 의미 있는 일을 하잖아. 돈을 벌고 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가족을 위해 헌신하고.”
“근데? 그게 당연한 거 아니야?”
“뭐랄까, 인생에는 그런 것보다 더 높은 차원의 뭔가가 있다는 거지. 신문의 경제면에 나는 세계, 그러니까 주식형 펀드니, 환율이니, 청약부금이니, 분양제도 개편이니 하는 세계 너머에 또 다른 뭔가가 있을 거라는 거지. 인간이 그런 일간지 경제면 같은 세계에만 매몰돼서 산다는 건, 그렇게 살다가 죽는다는 건, 너무 허망한 것 같아.”
(잠시 뒤...)
“빛나야, 미안한데.”
나는 그녀의 팔을 잡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내가, 두고두고 미웠다.
“왜?”
“.......있잖아, 계산 좀.......”
(내가 생각하는 이때 빛나의 속마음: 허이구, 지럴한다. 좀 전까지 인생이 어쩌고 한 놈 어디 갔냐?)
-퀴즈쇼, 김영하 장편소설 발췌-

: 여기 나오는 주인공이 딱 그런 사람이야. 하늘에서 떡 떨어지길 기다리는 사람.

넌 소설 내용을 모를 테니까, 이게 어떤 상황인지 설명해줄게.

주인공 민수는 이모가 죽으면서 남긴 빛 때문에 집이 차압되고 여자 친구와의 관계도 소원하게 돼. 자기가 살던 집에서 쫓겨나고 원룸에 살면서 마땅히 먹고살 만한 직업도 제대로 찾지 못하지. 이런 와중에서도 주인공은 일자리를 찾거나, 대학 공부를 더 하는 방식으로 자신이 처한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퀴즈 같은 것에만 몰두하면서 그것이 자신이 처한 상황을 해결해줄 것처럼 열중하지. 마치 퀴즈가 자신의 시궁창 같은 현실을 해결해줄 하나뿐인 대처법인 것 마냥.

그래, 이런 주인공 심리가 나도 이해는 돼. 사람들 심리가 시험공부도 하기 싫어서 시험 전날까지 놀고, 그냥 천지신명님한테 비는데, 제대로 해결할 수도 없는 이런 엿 같은 현실에 갑자기 부닥치면 그 대처법은 오죽할까?

그런데 이 새퀴는 아무리 힘들어도 그렇지. 당장 번듯한 직장 찾기 힘드니까 집 안에 틀어박혀서 퀴즈쇼만 풀어대고, 또 먹고 살려고 알바 하면서 4만 원을 남한테 그냥 주고 알바를 때려치우질 않나 하는 짓이 아주 가관이야.

: 작가는 스스로 선택하고, 노력해도 좋은 삶을 얻어낼 수 없는 삼포세대들을 대변하기 위해 이런 소설을 쓴 것 아닐까?

: 만약 작가의 의도가 그렇다면, 더욱더 소설 속 주인공의 신비주의, 한탕주의스러운 현실 대처법은 우리가 받아들일 수 없지. 애초에 왜 주인공이 이런 삼포세대가 됐냐? 퀴즈를 못 풀어서야? 아니잖아!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한 가정환경, 대학원까지 졸업해도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할 수 없는 사회, 이런 현실의 문제들 때문이잖아!

현실적인 이유들 때문에 문제가 생겼는데 신비적인 수단들로 그 문제를 해결한다? 이게 말이 되냐? 현실에서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가 현실의 어떤 것 때문에 일어났는지를 파악하고, 현실의 어떤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를 구상한 뒤 실천해야지! 문제의 원인에서, 문제의 해결책을 찾아야지!

근데 나는 소설 속 주인공 민수만 욕하고 싶지는 않아. 왜냐하면, 크든 작든 우리도 이런 민수와 비슷한 부분을 갖고 있거든. 너, 왜 대학에 들어갔냐?

: 어?...그게 일단 대학을 들어가야 학위를 얻고 직업을 가지니까?

: 그래서 정말로 그러디?

: 아니.....

: 애초에 니가 지금 취직을 하지 못하는 이유가 뭐야? 너한테 학위가 없어서야? 8, 90년대만 해도 고졸도 아닌 초졸들이 지금 네가 박사 학위 받고도 떨어진 회사에 취직했는데? 그럼 왜겠어. 문제는 네 학위의 유무가 아닌 과거와 달라진 경제구조 때문이잖아.

그런데 넌 왜 아직도 네가 겪는 문제의 진짜 이유를 파악하지 못한 걸까? 그리고 그 문제의 해결책을 고안하지 못한 걸까? 그건 너나 나나 직접 자신이 겪는 현실의 문제들을 분석하고 그 해결책을 고민해본 경험이 없어서겠지.

초, 중, 고, 대 그리고 어쩌면 대학원까지도 다니면 뭐해, 니가 살면서 직접 경험하는 문제들조차 어떻게 보고, 해결해야 할 줄 모르는데.

큰 것부터, 작은 것까지 네가 살면서 경험하는 문제는 모두 이런 현실에 기반을 두고 있어. 만약 네가 돈 없는 부모님께 태어나서 어려움을 겪는다면, 그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신비한 힘 따위를 탓해야 하는 게 아니야. 부모에게 돈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학업, 취준을 비롯한 20대 모든 사회 활동이 남들보다 배로 어려운 한국 사회를 탓하고, 그 안에서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거지.

너는 지금 네가 겪고 있는 문제들이 단순히 남들이 너에게 권유하는 신비적인 수단, 또는 한탕주의 같은 방법에 의해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돼. 네 삶에 대한 너의 현실적인 고민들 없이 종교, 입시, 취직 뭐 이런 것들 하나만 그냥 하면 네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 수 있다는 말을 절대 믿어서는 안 된다고.

신비한 무언가가 너를 시궁창에서 꺼내주길 기다리는데 질렸다면, 현실에서 문제의 이유를 찾고 그 해결책을 고안하는 현실주의를 실천해서 너 스스로 그 시궁창을 빠져나와봐. 맘 편하게 신비주의를 믿는 것만큼 쉽지 않고, 더럽게 힘들겠지만 힘든 만큼, 최소한 네가 고민하고 노력하는 만큼 현실의 시궁창 밖으로 조금씩 나올 수는 있을 테니까.

: 굳이 네 글을 읽지 않아도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너무 당연한 생각인데?

: 당연한 생각이지만 누구도 당연하게 해낼 순 없는 행동이지. 누가 시켜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 찾아서 해야만 할 수 있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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