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휴게소 초등학생 방임 사건 갑론을박에 ‘아동인권’이 없다 /Mink

‘아동의 기본권 보장’은 제쳐두고 펼쳐지는 엉뚱한 논의
교사의 역할과 아동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재논의를 바란다

11:33

현장체험학습을 가던 중 배변이 급한 아이를 휴게소에 두고 왔다는 이유로 해당 교사가 벌금 800만 원을 선고받았다. 갑론을박이 언론에서 한창이다. 한술 더 떠서 장염에 걸렸을지도 모르는 아이를 무리하게 현장체험학습에 보낸 학부모까지 같이 처벌해달라는 청원까지 제기되고 있다.

사실관계를 정확히 확인하지 않고서 판단할 수 없는 문제로 보인다. 우선 아이가 장염에 걸렸다는 사실은 판결문에 적시되어 있지 않으므로 생략한다. 판결문을 중심으로 파악한 사실관계는 다음과 같다.

대구에서 천안으로 6학년 전체가 현장학습을 갔다. 현장학습 차량 중 한 대에 탑승한 6학년 어느 반의 아이들 전체(사건의 당사자 포함)와 담임교사, 보조교사(교과 담당으로 추정)가 탑승했다.

A. 어느 정도 가던 중 당사자인 아이(여학생)는 급하게 변의를 표현했다. 담임교사는 휴게소가 멀고 버스를 갓길에 세울 수도 없으니 참으라고 했다.

B. 그러나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담임교사는 그럼 아무도 안 보이게 뒤에서 용변을 보라고 제안했고, 아이는 그렇게 했다. 용변 후 뒤처리를 아이에게 직접 처리하도록 지시했다.

C. 아이들이 똥냄새가 난다고 놀려대는 상황이 발생하고 휴게소에 도착해서 아이가 화장실에 들어간 후 울며 수치감으로 더 이상 현장학습 지속이 어렵다고 교사에게 이야기했다. 교사는 네가 여기서 함께하지 않으면 아이들이 더 이상하게 볼 것이라 가야 한다며 탑승할 것을 강요했다. 그래서 아이는 다시 탑승했다. 교사는 충분히 아이들에게 오늘 사건을 죽을 때까지 비밀로 하자고 약속했다.

D. 아이는 그사이 부모와 통화가 되어 부모가 아이의 요청대로 하게 해주길 부탁하자 아이는 현장학습에 함께하지 않을 것을 요구했다. 부모는 해당 휴게소에 내려 줄 것을 담임교사에게 부탁했다. 담임교사는 머뭇거리는 아이에게 수차례 다른 아이들이 피해를 본다는 이유로 내릴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하도록 다그치고, 내리겠다는 아이를 움직이는 버스를 세우고 그대로 내리게 했다. 그리고 아무런 추가 조치 없이 부모가 온다고 했으니 커피전문점에 가서 앉아있으라고 지시하고는 바로 이동했다. 아이는 혼자 커피전문점까지 걸어가서 그곳에서 약 1시간여 동안 혼자 부모를 기다렸고 부모가 도착했다.

여기까지가 당일 사건의 간단한 사실 개요이다. 하나씩 들여다보기로 한다.

A. 휴게소를 지났으니 참으라고 한 것은 갓길에 세울 수 없었고, 그쪽 지리를 잘 몰랐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고속버스 운전기사에게 상황을 물어본다면 내비게이션 등의 도움으로 임시 갓길이나 졸음쉼터 등을 충분히 이용했을 수 있다고 보인다.

B. 어찌 되었든 졸음쉼터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고 치더라도(사실은 확인되지 않음) 버스 안에서 아이에게 용변을 보게 하고 직접 치우라고 할 수밖에 없었음은 도로교통법을 준수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해당 아이는 6학년 여자아이다. 법을 준수하는 것도 당연히 필요한 행위이긴 하지만, 교사이기 때문에 해당 아이의 발달 과정과 심리적 상황을 좀 더 고려해볼 수 있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C. 도착한 휴게소에서 아이는 재탑승을 거부했다. 너무나 부끄럽고 수치스러워서 더 이동하기가 힘들었을 테다. 교사는 너로 인해 다른 아이들이 피해를 볼 수 있으니 가야 한다고 했다. 여기서 이국종 교수의 기생충 이야기가 생각났다. 5천만 국민들은 그때 갑자기 북한 귀순병사의 뱃속에서 나온 기생충이 마냥 신기했고, 왜 생기는지, 어떤 피해를 주는 놈들인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북한 귀순병사의 건강 상태나 월경 의도만큼이나 혹은 더 중요하게 그 기생충들이 뉴스에서 언급됐다. 저 귀순병사 1인의 인격권과 5천만 국민의 알권리 중 무엇을 더 보호해야 하는가. 항상 그런 충돌 상황에서 우리는 고민한다. 그 아이의 심리적 충격, 부끄러움, 등등과 같이해야 한다. 네가 빠지면 저 아이들이 누릴 현장체험의 권리는?

D. 교사는 휴게소에 해당 아이를 내려주는 과정에서 가장 큰 실수를 한 듯하다. 어떤 이들은 6학년이면 알아서 하겠지, 애를 손잡고 데려다줘야 하냐고 한다. 아동권리협약, 아동보호법, 기타 아동 관련 법령에 의하면 이 학생은 명백히 법적 보호 대상이 된다. 그리고 담임교사는 아이를 보호할 의무가 분명히 존재하는 직업군이다. 그런데도 혼자 커피전문점으로 가게하고 (물론 그 뒤에 계속 통화를 했다고 하고 있지만) 부모에게 직접 인계하지도 않았다. 다른 교사가 동승하고 있었으나 그 교사도 아이와 같이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의 아이를 심리적으로 안정시켜야 함에도 재촉하여 너의 과실로 인하여 다른 친구들이 피해를 본다는 발언을 통해 아이를 가해자로 만든 상황이 되어 버렸다. 또, 아이를 장염 혹은 설사라고 판단한 것은 당시 교사와 학생의 판단이었지 의학적 소견은 아니었다. 만에 하나 아이가 다른 긴급한 병으로 쇼크 등의 상황이 발생했다면 목숨마저 위험한 상황이 발생했다면 되돌리기 어려운 판단이었을 테다. 어떠한 가능성도 열어 놓아야 한다. 6학년이라도 명백한 아동이다.

이 사건의 문제는 아이가 장염에 걸렸을지도 모르는데 부모는 왜 보냈냐는 것이다. 하지만 판결문 어디에도 부모가 장염임을 인지했음은 없으므로 이에 대한 판단은 미뤄둬야 할 것이다. 혹, 장염임을 인지하고 탑승했다 하더라도 그 뒤에 발생한 일련의 문제는 간과할 수 없다.

교사 입장도 고려해볼 수 있다. 도로교통법도 지켜야 했고, 다른 아이들도 통제해야 했고, 단체로 움직이는 상황에서 해당 반만 그 아이 변의를 이유로 늦게 도착하고 프로그램에 지체되는 것이 불편했을 것이다. 잠시 학교 현장에 있었던 사람으로서 교사로서 아이 한 명을 위해서 그런 상황을 다 감수하기에는 불편할 수 있음을 이해는 한다. 그러므로 이것을 교사 1인의 책임으로 몰아가는 것도 불편하다. 시스템의 문제이고, 학교 문화의 고질적인 부분도 언급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대한민국이 정말 좋아하는 ‘우리는 ~해야 한다’라는 집단 중심적인 사고체계도 문제 삼으려면 삼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여론은 나쁜 교사, 나쁜 학부모에게만 집중하고 있다.

또 하나, 교사는 교권을 가지고 있다. 이번 사건이 교권을 침해하는 진상 학생과 학부모의 만행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도 가끔 현장 강의를 가면, 아직도 학생인권과 교권은 대립 관계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분들을 만난다.

학생인권은 학생이라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 누구나 누리는 기본적인 권리를 학생이라는 이유로 침해받지 않아야 한다는 논리에서 출발한 헌법 10조에 명시된 당연히 보장받아야 하는 권리이다. 교권은 헌법 10조에서 국가가 이러한 기본권을 보장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국가 사무를 위임받은 교사에게 주는 직업에 따라 발생하는 권리이자 권한이다.

다시 말하면, 교사는 물론 교사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권리 침해를 받지 않아야 한다. 누구에게라도(교장, 학교 시스템 등) 말이다. 뿐만 아니라 교사이기 때문에 국가를 대신해서 기본권의 주체가 되는 학생 인권을 보장해야 하는 의무를 교권이라는 권한으로 부여받았다.

그러면 교권을 가지고 아이들의 기본적인 인권을 보장해야 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교사 입장에서는 남은 여러 명의 아이들과 해당 아이의 권리 충돌 상황에서 갈등했을 것이다. 하지만 집단과 다수가 우선순위에 있어야 한다는 것은 무조건적인 정의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조금 더 교사가 한 명의 아이가 가지고 있는 상황에 집중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마지막으로 교사에게 가해진 처벌 수준이다. 대부분 법률전문가나 전교조도 교사 과실이 전혀 없지 않았다고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처벌 수준이 과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벌금 800만 원이면, 10년간 교사직도 물론이거니와 아동 관련 직군에는 종사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법원의 양형에는 상응한 근거가 있기 때문이라고 개인적으로는 믿고 싶다. 하지만 공무원이나 교사는 직을 잃는 순간 다른 직군에 비해 입는 타격이 작지 않다고 보인다. 또, 법원이 제대로 된 근거로 양형을 했다고 믿기에는 어마어마한 뇌물을 주고받은 기업인에 대한 양형 판결 등이 뉴스로 나올 때마다 의구심이 든다는 사족을 달아본다. 아직 재판은 1심이다. 더 진행해볼 사안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아동인권에 대한 논의가 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대한민국 청소년 행복지수는 OECD 국가 중 여전히 꼴찌를 기록하고 있다. 교권이 학생에 의해 전부 침해당하고 있다는 해괴한 논리도 매년 등장하고 있다. 이 사건에서도 ‘아동의 기본권 보장’이라는 주제를 두고 ‘선생만의 잘못이다’, ‘진상 학부모다’, ‘교권이다’, ‘현장체험을 폐지해야 한다’ 등 엉뚱한 논의가 생산되고 있다. 21세기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으면 안 되고, 군사부일체가 지배하는 시대가 아니다. 시대에 맞는 교사로서의 역할과 아동을 바라보는 시각이 재논의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