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남을 위한 욘수 철학] (8) 둥근 지구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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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1 19:18 | 최종 업데이트 2018-07-11 19:19

[편집자 주: 현재 지방대 철학과를 다니고 있는 예비 실업자, 취업란에 마땅히 쓸 것 하나 없는 한국의 평범한 이십대들 중 하나로, 이런 자기 팔자를 어떻게든 뜯어 고치려고 노력 중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 ‘욘수’가 격주 수요일마다 대화로 풀어가는 철학 이야기를 연재한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기 전부터, 중세 유럽인들은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알았다. 근대 과학자들은 ‘중세 유럽인들이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는 잘못된 통념을 만들어냈다.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그 잘못된 통념을 그대로 믿고, 여전히 ‘중세 유럽인들은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몰랐다’ 고 생각한다.

8. 두려운 사람들

: 잠깐만, 로빈슨이 ‘둥근 지구를 두려워한 사람들’과 같은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고? 그게 대체 무슨 말이야?

: 말 그대로야, 두려움. 즉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이 있어서,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로빈슨이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거지.

: 조금 더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해주겠어?

: 작중 로빈슨은 무인도에 홀로 살아가는 존재야. 그는 섬이 어떤 곳이고, 무엇이 그곳에 살고 있는지도 모르지. 섬에서 굶주린 맹수를 볼 수도 있고, 자신을 사냥하려는 식인종을 만날 수도 있어. 어쩌면 자신이 보기 전까진, 그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무시무시한 괴물과 대면할 수도 있지. 어떤 사건이든, 언제든 로빈슨에게 일어날 수 있고, 그런 그를 누구도 도와주지 못해. 그래서 로빈슨은 지식을 원하지.

: 지식?

: 그래, 지식.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로빈슨은 섬에 무엇이 있고, 그 무엇에 의해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그 일을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지 알길 원해.

: 그걸 알면, 어떤 일이 일어나든 자신에게 좋은 방향으로 통제할 수 있기 때문에?

: 그렇지, 섬에 맹수가 산다는 사실을 알면 자신이 그 맹수에 잡아먹힐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알게 되는 거고, 덫을 놓아 맹수를 잡음으로써 그런 불운한 가능성에서 벗어나는 거지.

: 그럼 지식이라는 건, 내게 어떤 사건이 일어나든 그 일을 대처하기 위해 필요한 거네?

: 그렇지, 하지만 로빈슨이 만약 섬에 맹수가 산다는 사실을 알 수 없다면? 로빈슨이 섬에 맹수가 산다는 사실을 알게 되더라도, 덫을 놓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면? 그런데도 외부의 구조 없이, 섬에서 표류하며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면 섬에서 살아가기 위한 지식이 없는 그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스스로를 기만하게 되지. 마음속 깊은 곳에는 ‘무엇이 있고,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숨긴 체 자신이 섬의 모든 존재와 가능성, 그 대처법을 안다고 생각하게 돼. 그래서 사람들은 사실과는 다르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현실의 모습을 왜곡하기도 하지. ‘플랫 에러’가 바로 그 증거야.

9. 플랫 에러(flat error)

: 플랫 에러? 플랫 에러라면 중세 유럽인들이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현대인들의 상식 오류를 말하는 거잖아. 그게 네가 말하는 현실 왜곡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지?

: 상관있지! 이봐 ‘나’ 왜 우리는 중세 유럽인들이 지구를 평평하다고 믿었을 거라 생각했을까? 그리고 왜 하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함으로써 지구가 평평하다는 중세 유럽인들의 잘못된 관념이 깨졌을 거라고 믿었던 걸까?

: 글쎄, 중세에 관한 자료가 부족해서 이런 오류가 생긴 거 아닐까?

: 네 말대로라면, 우리는 ‘현대인들은 중세 유럽인들이 지구의 모양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지 못한다.’라고 알아야 하지. ‘중세 유럽인들은 지구를 평평하다고 생각했다.’라고 알아선 안 되잖아? 네 말대로 자료가 불충분하다면 ‘중세 유럽인들이 지구의 모양을 어떻게 생각했나?’ 라는 질문에 ‘그들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했다!’ 라는 확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 자료가 불충분해서 그런 상식 오류가 생겨난 게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 그런 오류를 만든 거지?

: 무엇이겠어. 두려움이 만든 거지. 자기 생각, 주장이 틀릴 수 있다는 두려움.

: 두려움이 확실한 역사 자료를 왜곡할 수 있다고? 글쎄, 만약 중세의 기록 문서 중에서 백이면 백, ‘지구는 둥글다.’라고 쓰여 있으면 과연 역사가들이 ‘중세 유럽인들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했다.’라는 주장을 할 수 있을까?

: 좋은 지적이야. ‘나’ 네 말대로 그럴 수 없지. 하지만 중세 문서 중 99개는 ‘지구는 둥글다.’라고 쓰여 있지만, 1개가 ‘지구는 평평하다.’라고 쓰여 있다면? 그리고 그 예외적인 하나를 가지고 그런 주장을 한다면?

: 코스마스를 말하는 거야? 비유적 표현인 성경의 구절을 곧이곧대로 믿고, 아마 죽을 때까지 지구가 평평하다고 주장했던 인물?

: 그렇지, 코스마스, 그 별난 사람(오거스틴을 비롯한 대다수의 중세 사제들은 단순히 성서(종교)만으로 이 세계를 설명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래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한 고대 학문들을 오래 전부터 배웠으며, 이 사실에서 중세 유럽인들이 지구의 둘레를 측정한 에라토스테네스(BC 276~195)에 대해서도 알고, 지구가 둥글다는 그의 주장을 인정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 코스마스의 주장은 한 사제의 별난 주장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이 이 모든 오류의 발단이지.

: 과거 한 사람의 별난 주장만으로,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 가능할까? 내 말은, 거의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는 격이잖아.

: 앞서 말했듯이 사람들은 자신의 필요에 의해 현실을 왜곡하는 성향이 있어. 이런 근거가 빈약한 주장(플랫 에러)이 먹혔다는 건, 중세 유럽인들이 지구를 평평하다고 믿었길 바라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거지.

: 그게 대체 누군데?

: 일단 과학자들. 소위 명백한 진리, 객관적인 사실을 신봉하는 이들은 18세기, 종교와 과학 간의 권력투쟁이 극심한 이 시기에 종교를 폄하할 목적으로, 즉 의도적으로 플랫 에러를 만들어냈어. 이후 19세기, 20세기를 걸쳐 이 오류는 사회의 상식으로 자리 잡았지.

: 단순히 과학자들만으로는 그게 가능할 것 같진 않은데?

: 네 말대로, 플랫 에러는 과학자들에 의해서만 만들어지지 않았어. 19세기, 어빙이라는 베스트셀러 작가는 출판시장에서 잘 팔리는 책을 만들기 위해 콜럼버스에 관련된 실제 역사 자료가 아닌, 플랫 에러라는 극적이고 찾기 쉬운 자료를 이용해 책을 썼고, 우리가 잘 아는 콜럼버스의 이미지-지구가 평평하다고 주장하던 대다수의 중세 종교인들에게 용감히 맞서 싸우며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함으로써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증명해내는-를 만들어냈어.

: 잠깐만 그거 사실이 아니었어? 역사 교과서에도 버젓이 나오는 건데?

: 당연히 사실이 아니지. 역사는 단순히 사실만 기록하지 않고, 역사를 기록하는 이의 목적에 의해 의도적으로 왜곡 되어서 쓰여 지기도 해. 최강대국인 미국도, 어쩌면 최강대국이기 때문에 예외가 되진 않지.

20세기는 콜럼버스의 항해와 미국 건국의 어두운 측면이 부각되던 시기였어. 그래서 플랫 에러는 신중한 검토 없이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여졌지. 미국인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조상을 끔찍한 학살자로 인식하게 되었던 만큼, 사실 여부와는 관계없이 그런 인식을 바꿀 새로운 역사적 해석, 즉 새로운 상식이 필요해졌거든. 학계와 정부의 주도하에 플랫 에러는 역사 서적, 교과서 등에 기록되었고, 대중들이 중세 종교 사회를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미신적이고 비과학적인 사회로 믿게 했어.

콜럼버스를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신세계 발견을 통해 처음으로 증명한’ 진보적인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서 실제 중세의 모습을 왜곡한 거지. 신대륙이 발견된 뒤, 그곳으로 이주한 수많은 백인들과 그들이 한 행동들이 진보적인 행위로 보이기 위해서는(‘날조된 역사’의 저자는 이것을 이상야릇한 미국의 민족주의라고 표현한다.),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가 먼저 진취적인 인물이 되어야만 했던 거야.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플랫 에러와 콜럼버스의 업적은 ‘불은 물에 의해 꺼진다.’처럼 누구나 알아야 하며 누구도 의심해서는 안 되는 상식이 되었어.

: 네 말대로면, 플랫 에러는 종교, 과학, 인문, 정치사회, 역사 등 수 많은 학문들이, 수 세기에 걸쳐서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오류 인거네? 어떻게 그게 가능했던 거지? 내 말은, 그렇게 다양한 분야에서, 수많은 전문가들 중 누구도 ‘플랫 에러’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단 게 이해가 되지 않는데?

: 애초에 ‘플랫 에러’라는 잘못된 상식을 만들어낸 사람들이 바로 다양한 분야의 수많은 전문가들이었어. 6세기의 성직자 코스마스, 18세기의 과학자 르트론, 19세기 소설가 어빙, 19~20세기 과학자 드레이퍼, 화이트, 비즐리, 20세기 미국 정부 등 중세인들은 지구가 둥글다고 믿지 않았다는 사실은, 중세와 관련된 역사 자료들을 어느 정도 조사해보기만 하면 알 수 있는 것이었어. 하지만 그들은 의도적으로 그러지 않았지. 소설가는 소설의 재미(어빙의 경우, 자신의 소설을 팩션(현실과 허구를 섞은 소설) 소설이 아닌, 실제 역사 소설로 소개한 점에서 문제가 있다.)를 위해서, 과학자들은 종교를 의도적으로 폄하하기 위해서, 정부 관계자들은 과거 미국에 대한 이미지를 좋게 만들기 위해서, 즉 각자의 이익, 목적에 부합하도록 자료를 취사선택하고 왜곡했어.

: 설령 그 사람들이 그런 왜곡을 했더라도, 어떻게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던 거지?

: 의심하지 않았던 거지. 처음 ‘플랫 에러’가 18세기 르트론에 의해 만들어졌을 때는, 6세기 코스마스가 ‘지구는 평평하다.’를 주장했을 때처럼 별난 한 사람의 주장으로만 받아 들여졌어. 하지만 시대를 거쳐 가며 ‘플랫 에러’에는 어빙, 드레이퍼, 미국 정부 등 수많은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얽히기 시작했고, 그 사람들은 자신의 목적,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정보를 의심하지 않기로 선택했어. 사실을 추구하기보다는 자신의 ‘개인적인 주장’을 옳음으로 추구한 거지.

: 그게 네가 얘기한 플랫 에러를 가능하게 만든 두려움이라는 거군?

: 그래, 섬의 로빈슨처럼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현실의 모습을 왜곡하는 거니까. 그런 의미에서 그 사람들은, 플랫 에러를 통해 자신들이 만들어낸 중세 유럽인들과 마찬가지로 ‘평평한 지구’를 믿는 사람들이야. 자신의 주장, 생각이 틀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운 사실을 용감하게 인정하기보단, 편하게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겁쟁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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욘수(Jorn soo)
현재 지방대 철학과를 다니고 있는 예비 실업자. 취업란에 마땅히 쓸 것 하나 없는 한국의 평범한 이십대들 중 하나로, 이런 자기 팔자를 어떻게든 뜯어 고치려고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