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먹칠] 자살보도, 악순환 근절의 시발점 / 배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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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06 14:11 | 최종 업데이트 2018-08-06 14:12

언론보도 중 최소한의 정보값을 가져야 하는 보도는 무엇일까? 자살보도다. 죽음의 방식은 한 개인의 사적 영역에 속하며 언론은 이를 존중해야 한다. 물론 한국기자협회 ‘자살보도 윤리강령’에 따르면 언론은 사회적으로 중요한 인물의 자살 등 공공의 정당한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경우, 자살 장소 및 자살 방법을 보도할 수 있다고 돼 있다. 하지만 흥미를 유발하거나 속보 및 특종 경쟁의 수단으로 자살사건을 다뤄서는 안 된다는 점 역시 강조하고 있다. 자살보도는 유명인이라 할지라도 가장 건조하게 다뤄져야 할 보도이다.

유명인의 자살에 대한 상세한 보도가 모방 자살을 부추겨 자살률을 높인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2008년 배우 최진실 씨 사망 사건이 무차별적으로 보도돼 모방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고, 자살자 수가 70.5%나 늘어난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이와 더불어 상세한 자살보도는 ‘알 권리’라는 미명 아래 선정적인 호기심 충족으로 이어져 망자의 존엄을 훼손시킨다. 노회찬 의원 자살보도에서 일부 언론은 시신을 덮은 텐트의 색을 중계하고 사망 당시 노 의원의 옷차림을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심지어 TV조선은 6분 30초 동안 시신 이송장면을 생중계하면서 신호가 걸린 틈을 타 구급차 창문을 클로즈업해 보여주기도 했다. 이런 보도에 어떤 공익적 가치가 담겨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23일 TV조선은 고인의 시신 이동을 생중계하기도 했다. [사진=TV조선 보도 갈무리]

언론이라고 자살보도의 올바른 지향점을 모를 리 없다. 자살보도에 대한 권고기준은 진즉부터 마련돼 있었다. 한국기자협회는 지난 2004년 한국자살예방협회와 ‘자살보도 윤리강령’을 제정한 뒤 2013년 보건복지부, 중앙자살예방센터와 함께 이를 개정해 ‘자살보도 권고기준 2.0’을 발표했다. 권고기준에는 ‘자살에 대한 보도를 최소화한다’, ‘자살과 관련된 상세내용을 최소화한다’ 등 9가지 원칙이 담겼다. 가장 큰 문제는 언론이 이 원칙들을 지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크게 3가지로 요약해볼 수 있다.

먼저 언론의 클릭 장사 및 시청률 지상주의다. 이는 공익보다 사익을 우선하는 태도다. 선정적인 호기심을 충족시켜 높은 조회 수와 시청률을 기록하고 이득을 챙기겠다는 것이다. 자살은 그 자체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끄는 사건이다. 여기에 유명인사라는 극적 요소까지 더해진다면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언론은 보도에 있어 국민이 꼭 알아야 하는 공익적 정보인지 판단을 미루고 선정성이나 속보 위주로 보도한다. 그래야만 더 많은 관심을 집중시키고 이익으로 연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기자와 언론조직의 윤리의식 부재다. 한국기자협회 기사에 따르면 기자들 중 ‘자살보도 권고기준’ 자체를 읽어본 적 없는 기자들이 허다하며 다른 매체가 쓰면 나도 어쩔 수 없이 써야 한다는 관성적인 태도가 만연하다고 한다. 기사작성 주체인 기자들의 의식 수준이 떨어진다면 그들이 내놓는 결과물의 수준 역시 뻔하다. 다행히 기자가 선정적인 자살보도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해도 문제는 남아 있다. 그 기자가 속해있는 언론조직은 그렇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MBN은 지난 7월 24일 노회찬 의원의 타살이 의심된다는 보도를 했다. 한국기자협회 MBN지회는 보도과정에서 담당 부서 선임기자와 취재기자가 기사 작성 과정에서 ‘노회찬 타살설’이 기사가 될 수 없는 이유를 여러 차례 설명했지만, 데스크는 이를 무시하고 큐시트 편성을 강행했다고 한다.

셋째, ‘자살보도 권고기준’의 위상이 낮다. ‘자살보도 권고기준’은 말 그대로 권고에 불과해 법적 구속력이 없다. 그나마 방송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와 방송통신위원회의 제재가 가능하다. 하지만 대부분 주의나 경고에 그친다. 신문이나 온라인 매체는 당사자들의 소송 외에는 제재할 방법이 없다. 그 결과 자살보도 권고기준 준수율은 매년 떨어지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자살보도 권고기준 준수율은 2013년 26.6%에서 2014년 22%로 떨어진 뒤 2015년에는 6.9%로 대폭 하락했다. 결국, 현재 언론의 선정적인 자살보도는 언론의 이익추구와 윤리의식 부재 그리고 이를 제재할 수단의 부실함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문제다.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해야 한다. 앞선 두 가지 문제는 언론의 자성을 통해서만 해결 가능하다. 문제는 자성이 언제쯤 될지 기약할 수 없다는 점이다. 언론은 사회적 참사가 일어날 때마다 자성을 약속하지만 다시 참사가 일어나면 어김없이 흥미와 속보 위주의 보도를 쏟아냈지 않았던가. 현재 권고 수준에 불과한 ‘자살보도 권고기준’의 위상을 법적 제재가 가능한 수준까지 높이는 게 악순환을 끊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 방송사의 재허가(또는 재승인) 심사항목에 ‘자살보도 권고기준’ 준수 여부를 넣거나, 위반 시 징벌적 과징금을 부과하는 등의 제재를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자살보도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강력한데 언론의 책임은 미미한 이 상황을 더 이상 방관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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