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두려운 전기요금고지서가 은폐하는 것들 /김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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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06 15:17 | 최종 업데이트 2018-08-06 15:17

기록적 폭염에 수원의 고향 집을 생각했다. 전형적인, 저소득층이 모여 사는 좁은 아파트다. 그 집에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약 20년간 살았다. 20년 동안 도배를 하지 않아 벽이 온통 누런색이다. 살면서 한 번도 더위를 이유로 전기요금 걱정을 해본 일이 없다. 애초에 에어컨이 없기 때문이다.

전기요금 누진제 폐지 주장을 보고 있노라면 모든 사람들이 집집마다 대형 에어컨을 갖추고 사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많은 가정에 여전히 에어컨이 없다. 저소득층일수록 그렇다. 언론이 종종 인용하는 몇십만 원에 이르는 ‘전기요금 폭탄’ 사례는 다분히 편향적이라는 느낌이다. 넓고 에어컨이 2개씩 있는 가정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사는 조건에 따라 전기요금은 천차만별이니 이것도 확정적으로 말할 것은 아니다. 여럿이 모여 사는 젊은이들이 버려져 있는 오래된 스탠드형 에어콘을 주워 와서 여름 내내 틀었다가 전기요금이 한 달에만 50만 원 이상 나온 사례가 내 주위에 있다. 미련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현대인다운 불행인지, 단열이 잘 안 되는 이 집에서 이들은 겨울에도 전열기구를 각자 사용해 100만 원에 육박하는 전기요금을 냈다고 한다.

물론 집에 에어컨이 없는 사람도 전기요금 걱정은 한다. 고향 집에 에어컨을 설치하는 효행을 해볼까 모색한 일도 있었지만 거절당했다. 에어컨을 설치하면 전기요금을 감당하지 못하게 될 거라고 지레짐작하기 때문이다. 전등 하나에도 전기요금 고지서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에어컨은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이다.

노인들의 경우 집에 에어컨을 설치하더라도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빈번하다. 특히 더위에 약할 수밖에 없는 노인들에게는 에어컨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제 그나마도 완화된, 전기요금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언론 보도가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도 있다.

어차피 비용을 써야 한다면 전기요금을 인하하는 것보다 무더위 쉼터 등 공공시설 운영과 같은 대안을 모색해보는 게 좀 더 실효적이지 않나 싶다. 또 취약계층에 속한 사람들이 상시적으로 폭염 대책 안내를 받을 수 있는 복지제도를 확대해야 한다. 폭염을 이유로 한 전기요금 인하는 최후의 수단으로 고려해야 하고, 올해처럼 폭염이 이례적인 경우라면 한시적으로 누진 구간 등을 조정하는 게 합리적이다.

또 무조건 가구당 전기요금을 부과하는 방식보다는 여러 경우에 맞게 맞춤형으로 부과하거나 가구별 상황에 따른 보조금 등을 추가로 지급하는 것도 고려해볼 문제이다. 예를 들어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가 있는 집은 냉난방 비용이 추가로 들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아동수당 등에서 이 부분을 배려하면 어떨까 한다.

이런 얘기들보다는 그냥 무조건 모든 사람이 전기를 마음껏 쓰게 하면 되지 않느냐는 게 요즘 분위기인 것 같다. 그러나 이는 전기요금을 둘러싼 논란이 에너지 문제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는 걸 외면한 결과이다. 에너지 문제는 곧 체제의 문제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의 세상이다.

산업용 전기는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공급하면서 가정용 전기요금에만 누진을 적용하는 게 불합리하다는 문제 제기는 때마다 나온다. 이런 주장에는 감춰진 맥락이 하나 더 있다. 형평성의 문제라면 산업용 전기에도 적용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불가능하므로 가정용 전기요금의 누진제를 없애라는 말일 게다.

그런데 이 문제에선 역으로 발상을 해볼 필요도 있다. 산업용 전기의 가격을 올리는 등의 방법으로 형평을 맞추면 되는 것이 아닌가? 실제 산업용 전기요금은 인상되고 있다. 보수언론은 전기요금 인상으로 기업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기사를 때마다 내고 있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고 나서는 이런 현상의 원인이 특별히 따로 정해졌다. 탈원전 정책 때문에 산업용 전기요금이 인상돼 기업들이 해외로 도망가려는 생각만 하게 됐다는 식이다.

이런 여론을 통해 생각해 볼 만한 것은 우리가 비용 부담의 형평성을 위해 성장을 위한 효율성을 일정 부분 포기할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성장의 속도가 당분간 더뎌지더라도 에너지 부담을 평등하게 짊어지는 게 우선이라는 사회적 합의를 이룰 각오가 있는가? 사실 이것이 에너지 문제의 핵심이다. 따지고 보면 폭염의 희생자들은 성장제일주의의 피해자이기도 하다. 성장제일주의는 인간의 삶보다 생산량을 앞에 놓는다.

건설현장에서의 열사병 사례가 속출하자 정부는 뒤늦게 공공발주 공사의 낮 시간 작업 중지를 지시했다. 그러나 날이 더우면 오히려 일을 더 시키는 민간 건설현장에 개입할 수단은 현재로선 없어 보인다. 정부는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을 개정해 폭염에도 작업중지를 지시하지 않은 사업주의 처벌 근거를 만들고 있다고 한다. 물론 이게 얼마나 위력을 발휘할지는 장담 못 한다.

그런데 성장제일주의가 어쨌든지 가정용 전기요금에 대한 불만은 계속될 것이다. 왜냐하면 ‘진정한 문제’가 산업용과 가정용 전기의 형평성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인터넷에서 불만을 쏟아내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문제’란 오로지 자신이 받는 전기요금 고지서뿐이다. 불만의 주된 소재가 산업용 전기요금과의 형평성이나 한전의 과도한 이득, 전기요금의 원가공개 등 소비자적 인식을 통해 제기된다는 점을 보면 그렇다.

불만에 이유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근본적 문제의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다들 알기 때문에 당장 눈앞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즉자적 대책을 요구하는 것이다. 우리는 전기요금뿐 아니라 거의 모든 문제에서 똑같은 일을 겪고 있다. 현실의 문제가 너무나 분명한데 뜬구름 잡는 얘기나 하는 건 이대로 살자며 핑계나 대는 기득권의 논리로 비치기 일쑤이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문제의 근본적 차원을 향한 시선을 거두지 말아야 한다. 부침이 있더라도 결국 문제는 최종적으로 해결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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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하
직업 운동권을 하다가 매체전문지 '미디어스'에서 기자와 편집장을 지냈고 2017년 4월부터는 집에서 놀고 있다. CBS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서 뉴스 소개하는 걸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한겨레가 만드는 팟캐스트 '디스팩트'에 별 이유 없이 출연하고 있다. 2016년 말 '냉소 사회'를 출간했다. 그 전에 다른 책들도 썼지만 중요하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