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관료주의라는 쳇바퀴 /이택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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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3 12:10 | 최종 업데이트 2018-08-13 14:03

한창 논란이 됐던 기무사 계엄령 검토 문건과 양승태 사법부 문건 사태를 지켜보면서, 생뚱맞게도 나는 테리 길리엄 감독의 영화 <브라질>을 떠올렸다. 이 영화는 관료주의라는 주제를 가장 훌륭하게 다룬 영화로 손꼽힌다. 카프카의 소설을 연상시키는 구성을 통해 괴기스러운 전체주의 체제의 비합리성을 날카롭게 풍자하고 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이렇다. 길을 잃고 헤매다가 108호라고 적힌 어떤 방에 우연히 들어간 주인공이 그곳에서 상사가 부하들에게 둘러싸여 이것저것 분주하게 지시하면서 돌아다니는 것을 목격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관료주의의 문제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상징적 이미지이다. 상사는 열심히 부하들에게 무엇인가를 지시하지만, 사실상 무엇인가 새롭게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상사는 지시하고 부하들은 실행할 뿐이다. 관료주의의 목적은 일을 제대로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어떤 철학자는 갈파했는데, 이 영화는 정확하게 관료주의의 본질을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다. 관료주의는 관료주의를 재생산하기 위해 분주히 일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런 관료주의의 작동에서 핵심적인 것은 조직의 자기 정당성이다.

지난 정권에서 벌어진 기무사와 사법부의 ‘국정 농단’ 증거들이야말로 <브라질>이 보여주고 있는 관료주의의 문제를 생생하게 증명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이런 관점에서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을 때 이들이 보여주었던 우왕좌왕은 컨트롤타워가 없는 ‘무능’의 문제였다기보다, 조직의 각자도생만을 도모하는 전형적인 관료주의의 속성을 드러냈던 결과였다고 볼 수 있겠다. 이 관료주의의 핵심에 도사린 것은 자기 조직의 생존을 위한 온갖 명분의 창안이다.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의 정보기관들이 흔히 저질렀던 불법행위들은 모두 이런 자기 보전 논리의 산물이었다.

대의 정치가 사라지고 각자도생의 길만을 도모하는 관료의 세계가 만들어내는 것이 관료주의의 디스토피아이다. 고도로 합리적으로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조직이 사실상 극도로 비합리적인 목적으로 운용되는 아이러니를 기무사와 사법부의 과거 행적에서 읽어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들은 국민이나 국가라는 개념보다도 오직 자기가 속한 조직의 이익만을 위해 복무했다. 마치 과거 중앙정보부나 안기부 같은 정보기관이 자신들의 안위를 보장받기 위해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조작 사건을 만들어냈던 것처럼, 조직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이들은 치밀하고 분주하게 문건들을 작성했다. 누구보다도 바쁘게 움직이면서 이들이 하고자 했던 것은 다름 아닌 관료주의 자체를 즐기는 일이었다.

관료주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그 자리에 계속 있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야 관료들은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무사는 끊임없이 자신들의 필요성을 역설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자신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믿었을 것이다. 사법부는 어떤가. 자신들이야말로 법질서를 지킬 수 있는 당사자들이고, 이런 의미에서 자신의 조직에 유리한 일들을 해야 한다. 그러나 조직을 위한다는 일들은 개인들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결과로 귀결되었다.

민주주의가 절차적 차원에 머물러 버릴 때, 관료주의는 민주적 얼굴을 하고 등장한다. 그러나 관료주의는 민주주의를 지체시키고 해체시킨다. 마치 매뉴얼을 정확히 따르는 것이 민주주의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매뉴얼은 어떻게 일을 처리할지에 대한 안내이지 무엇을 위해 그 일을 해야 할지에 대한 신조가 아니다. 기무사와 사법부의 문건을 만든 이들은 그저 ‘위에서 지시하는 사항’이기 때문에 부지런히 작업을 했을 것이다. 또한 ‘조직을 위한다’는 명분은 각자도생에 대한 자기 정당성을 부여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을 단순하게 ‘과거 정권의 국정농단’으로 치부하고 넘어가기에 관료주의의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소추안 의결 전인 2017년 3월 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 ⓒ오마이뉴스 남소연 기자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하고, 문재인 정부의 개혁 드라이브가 힘을 잃고 있다는 진단이 하나둘씩 등장하고 있다. 촛불 정부를 자임하면서 집권했음에도 민주주의 정신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달콤한 관료주의의 안위에 젖어든 것은 아닌지 반문할 수밖에 없다. 정권은 5년이지만, 관료는 영원하다는 말이 농담은 아닐 것이다. 촛불의 정신을 다시 되새기면서, 동일한 문제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쳇바퀴에서 벗어나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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