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철의 멋진 신세계?] 폭염, 기후변화, 그리고 전환사회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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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6 12:20 | 최종 업데이트 2018-08-16 12:20

“기상 관측 이래”, “111년만”이라는 수식어는 올여름 귀에 인이 박힐 정도로 많이 들은 말이다. 누구를 막론하고 태어나서 가장 고통스러운 더위를 동시에 경험하고 있는 셈이다. 역대급이라 할 만한 이번 폭염은 지금까지 최악으로 기록된 1994년을 이미 넘어섰다. 입추가 지났지만, 사그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때가 되면 신묘하게 들어맞는 ‘절기’의 마법이 앞으로도 과연 지속될 수 있을까, 가늠키 어렵다.

이 같은 기록적인 폭염이 2012년 이후 2016년, 2017년 그리고 올해까지 몇 년째 계속되고 있다. 더 이상, ‘이상고온 현상’이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이 우리나라, 혹은 가까운 동아시아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유럽이나 북미도, 전 지구가 폭염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스페인, 포르투갈에서는 한낮 기온이 47도까지 치솟았고, 폭염과는 거리가 먼 듯한 스웨덴, 노르웨이에서도 30도가 넘는 더위가 계속되고 있다. 그린란드의 만년설과 북극의 얼음이 녹아내리고 있다. 그리스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폭염 속 최악의 산불이 지금 이 순간에도 꺼질 줄 모르고 번지고 있다.

기후변화, 전 세계적 재난

문제는 이 같은 기록적인 폭염이 앞으로도 수년간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CNRS)와 영국사우샘프턴대, 네덜란드 왕립기상연구소 등 국제공동연구진은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에서, 2018~2022년 사이에 지구 평균 기온이 비정상적으로 높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들은 인간 활동으로 인한 온실가스의 영향으로 지구온난화가 지속되고 여기에 지구의 자체적인 힘이 결합하여 기온이 더 올라간다고 주장했다. 이는 온실가스 증가로 인해 발생하는, 기존의 기온 상승 예상치를 훨씬 상회하는 결과라고 한다.

저명한 대기과학자 마이클 만 펜실베니아주립대 교수는 영국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기후변화가 없었다면 극단적인 폭염이나 산불 사태를 보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인간이 만들어낸 지구온난화의 결과로서 기후변화는 이제 더 이상 모호하지 않다고 말하며 이번 여름의 극단적인 기후들이 바로 그 사례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세계 각국이 기후변화에 제대로 대비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도 잊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처럼 ‘지구온난화’를 거짓 주장이나 음모론 쯤으로 몰아붙이는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더라도, 지금까지 일부 과학자들조차 특정 기상현상이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의 직접적인 결과로 단정할 수 없다는 신중한 입장을 보여 왔다. 하지만 최근에 나온 연구 결과들은 대부분 지구촌 이상기후 현상의 배후에는 지구온난화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실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에 대한 경고는 이미 오래전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관련 연구자들과 시민운동가들은 기후변화에 따른 파국을 막기 위한 전 세계적인 행동을 촉구해 왔다. 1972년 로마클럽보고서 이래 지구온난화는 인류가 해결해야 할 과제로 부상했지만, 리우회의(1992), 교토의정서(1997), 그리고 최근의 파리기후변화협약(2015)에 이르러서도 전 세계는 뾰족한 대안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지구온난화의 주범국인 미국은 트럼프의 독단으로 이 협약에서 탈퇴해버렸다.

기후변화의 주범? 결국 자본주의와 산업문명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이 제5차 평가 종합보고서를 통해 밝힌 21세기 기후변화의 가속화 전망에 따르면 지금과 같은 지구 평균 기온상승률이 이대로 계속될 경우, 21세기말 지구 평균기온은 3.7°C, 그리고 한반도의 평균기온은 최대 6°C까지 상승할 것이라고 한다. 실로 엄청난 수치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이 수치마저도 매우 보수적으로 측정한 결과라고 반발하고 있다.

지난 1만 년 동안 지구온도는 거의 변함이 없었고, 133년(1880~2012년)간 지구 평균 기온이 0.85°C 상승한 것을 감안한다면, 지구온난화의 결과는 파국, 혹은 재앙 그 자체라고밖에 달리 부를 말이 없다. 이대로라면 다음 세기에 인간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생명체가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는 벌써 먼 미래가 아니라 지금 당장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이미 2016년, 지구상 일부 국가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가 평균 400ppm을 넘어섰다. 이는 산업문명 이전인 1750년에 비하면 44%가 늘어난 수치다. 이산화탄소 농도가 450ppm을 넘어설 경우 지구온도는 산업문명 이전보다 2°C 정도 상승하게 된다.

지구 온도가 평균 1°C만 상승해도 해수면 상승을 포함해서 폭염, 홍수, 해일, 태풍, 혹한 등의 각종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이 끊임없이 일어난다는 것은 이미 증명된 사실이다. 파리기후변화협약에서 각국 대표들이 합의한 금세기말까지 지구 기온 상승 최대치를 2°C로 책정한 것은 앞서 언급한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450ppm과 관련돼 있다.

그렇다면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를 억제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지구상 물질 80%가 탄소결합이라는 사실은 이제 상식이다. 오죽했으면 인류 문명을 ‘탄소문명’이라 부르겠는가. 자본주의 산업시스템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쉬지 않고 탄소결합물, 즉 상품을 만들어낸다. 화석연료에 기반을 둔 탄소경제는 명백히 자본주의 산업문명의 근간이다. 그러하기에 지구온난화를 멈추기 위해서는 두말할 것 없이 탄소경제 자체를 뿌리 뽑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캐나다 출신 저널리스트 나오미 클라인은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자본주의 대 기후』(2016)에서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국 자본주의와 싸워야 한다고 단언한다. 물론 5년간 전 세계를 누비며 발로 쓴 방대한 분량의 이 책에서, 클라인이 모든 문제를 자본주의 문제로 귀속하는 환원주의적 태도를 보이는 것은 아니다. 클라인은 저널리스트다운 치밀함과 끈질김으로 문제에 접근하여 결국 자신의 결론에 도달한다. ‘결론 도약의 순간’이라고 부르며 생생하게 들려주는 클라인의 결론은 결국 “모든 영역에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끊임없이 우리는 기후혁명을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클라인이 주장하는 바는 어쩌면 탄소제로사회를 위한 영구혁명 혹은 연속혁명 같은 것이라 하겠다.

이 같은 클라인의 결론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실현 가능성에 커다란 의문을 가질지도 모른다. 그게 도대체 가능한 일이냐는, 혹은 과거에도 이와 유사한 기획은 늘 있어 왔다고.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운동, 혹은 여타의 다른 해방을 위한 거대한 기획들이 이러한 방식과 무관하지 않았다는 것을 사례로 들면서 말이다. 물론 일리 있는 반론이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분명하게 짚어야 할 점이 있다. 현재 상태보다 더 큰 자유와 해방을 위한 그동안의 혁명적 기획들과는 달리, 기후변화라는 재앙을 멈추기 위한 자본주의와 대결은 전제가 사뭇 다르다. 쉽게 말하면 기후변화를 막아내는 일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생명 혹은 종(種)의 사멸이라는 그야말로 한 걸음도 더 나아갈 데 없는 종말적 파국에 대처하기 위한 특단의 급진적 실천이 없다면 우리는 과연 다음 세대 혹은 훗날을 기약할 수 있을 것인가. 만일 기후변화가 가져올 재앙이 어김없는 사실이라면, 우리는 어떠한 수단을 써서라도 이를 지금 당장 막아야만 하는 것 아닌가. 여기에는 어떠한 점진적 준비와 기획도 무용한 것 아닌가.

급진적 멈춤 혹은 전환사회!

어쩌면 인류는 지금까지의 혁명적 기획자들이 늘 주장해 왔던 ‘임박한 파국’을 어찌어찌 운 좋게 넘겨왔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기후변화라는 재앙도 지금까지의 그들이 말한 ‘임박한 파국’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종류의, 기우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가 몰고 오는 파국의 징후가 이번 여름 인류가 겪고 있는 폭염처럼 이미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까지 부인하기는 어렵다. 거기에다 누진세 청원과 같이, 충분히 이해할 수는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과는 무관하거나 정반대 흐름으로 가고 있는, 폭염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방식이 위기를 더 깊게 하고 있다.

《녹색평론》 146호에 소개된 사회운동가 피트 돌랙의 말처럼 당면한 기후변화의 파국을 막기 위해서는 “에너지와 물자의 극적인 축소(자본주의 하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지속가능한 경제시스템을 만들어내는 것 말고는 대안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화석연료에서 재생가능에너지원으로 가능하면 빨리 전환해야 하지만, 이렇게 하는 것이 “지구온난화의 위기, 환경의 열화(劣化), 그리고 자원고갈을 막을 수 있는 마술의 지팡이가 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환상”이라고 일갈한다. 끝없는 성장을 위해 모든 인센티브가 작동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그대로 두고서 기후변화를 막아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피트 돌랙이 주장하는 것처럼 에너지와 물자의 극적인 축소가 가능한, 자본주의가 아닌 전혀 다른 경제시스템을 만들어내는 것 말고 과연 다른 대안이 있을까.

세계 곳곳에는, 아직은 작은 규모지만 ‘전환마을(Transition Town)’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각 마을마다 특성이 조금씩 다를 수밖에 없지만, 대체로 전환마을은 화석연료의 고갈과 기후변화에 대응하여 협력과 유대에 바탕을 둔 공동체를 지향한다. 거대 국가나 자본, 혹은 사회시스템에 의존하지 않는 자율적이고 공생적인 마을공동체인 셈이다. 물론 이 세상 시스템을 전부 ‘전환마을’로 전환하는 것이 어디 쉽겠는가. 하지만 ‘전환마을’ 혹은 대안적 에너지경제시스템을 향한 노력이, 화석연료를 그대로 두고 재생가능에너지를 혼합하는 식의 변화로 현실을 미봉하려는 자유주의자들의 개량보다는 더 현실적이지 않을까. 나오미 클라인이 말한, 기후변화라는 “위기가 기회가 될 수 있”으려면 지금의 자본주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전환사회를 꿈꾸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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