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여자들의 무리한 도전 /이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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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0 09:52 | 최종 업데이트 2018-08-20 09:53

작년에 최초로 여자가 번역한 <오딧세이아>가 출간되었다. 지금까지 <오딧세이아>의 영어판은 남성의 번역으로 이루어졌다. 번역을 여자가 하든 남자가 하든 무슨 상관이냐고? 상관이 있다. 나는 조카에게 동화책 읽어주면서도 가끔 짜증이 난다. 아빠는 엄마에게 반말을 하지만 엄마가 아빠에게 존댓말을 하도록 번역했기 때문에 이를 다 바꿔서 읽어준다. 부부관계를 상하관계로 인식하는 남성들의 의식은 동화책 번역에도 고스란히 침투한다.

<오딧세이아>는 서양 모험기의 고전이고 일종의 여행기라 할 수 있다. 기다리거나 납치되는 여성들의 이야기는 익숙해도 모험하고 돌아다니며 집으로 무사 귀환하는 여성들의 서사는 드물다. ‘모험’이라는 단어에서 혹시 남성성을 느끼진 않는가. 돌아다니는 경험은 남성이 가진 특권이었다. 지금이야 여성들의 여행기가 그리 낯설지 않지만, 이전에 여행은 주로 남성의 영역이었다.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을 동시대 여성이 쓰기는 어려웠다. 남편을 동반한 일부 귀족 여성이나 그 여성을 수행하는 하녀를 제외하고 여성은 다른 나라로 떠나기 훨씬 힘들었다. 지금도 ‘해외여행 좋아하는 여자’는 대표적인 된장녀의 이미지다.

조선 여성으로 최초로 세계일주를 한 나혜석은 1927년부터 1929년까지 1년 9개월 동안 돌아다녔다. 부산에서 출발해 시베리아 횡단기차를 타고 유럽에 도착해 여러 나라를 돌아본 뒤 대서양을 건너 미국 뉴욕에 도착, 미 대륙 횡단 후 샌프란시스코에서 하와이를 거쳐 일본 요코하마에 들러 다시 부산으로 돌아온다.

이보다 앞서 19세기에 홀로 세계일주를 한 여성이 있다. 바로 언론인 넬리 블라이(Nellie Bly). 쥘 베른의 <80일간의 세계일주>에서 영감을 얻은 그는 80일보다 더 짧은 기간에 세계일주를 하겠노라, 무리한 선언을 한다. 그가 언론사에 세계여행 계획을 전하며 협조를 요청했을 때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거절당했다. 여자라서 안 된다고 했다. 그러나 넬리 블라이는 1889년 11월 뉴욕을 떠난지 73일 만에 다시 뉴욕으로 돌아왔다. 넬리 블라이가 처음 언론사 기자가 된 사연도 재밌다. ‘여성의 자리는 가정’이라는 신문 칼럼을 보고 이에 대한 반박글을 보냈다가 채용이 되었다.

나혜석과 넬리 블라이, 두 사람의 세계여행기를 함께 읽으며 비교해보면 몹시 흥미롭다. 두 사람은 반대 방향으로 돌면서 서로가 같은 장소를 거치기도 했다. 두 여성이 여행을 통해 바라본 세계는 다르다. 조선 여자와 미국 여자는 같은 곳을 다르게 바라본다. 중국을 거쳐 일본에 온 넬리 블라이가 묘사한 일본과 서구를 거쳐 다시 일본에 돌아온 나혜석의 눈에 비친 일본은 전혀 다른 나라처럼 묘사된다. 넬리 블라이가 일본 여성의 모습에서 사랑스럽고 친절함을 발견하고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한편, 나혜석은 유럽에서 여성들의 가정 내 위치와 남자와의 관계, 참정권 운동 등에 주목한다. 넬리 블레이의 여행기에서는 미국 여성의 입장에서 타문화를 바라보는 차별적 시선도 빼놓을 수 없다. 19세기 백인 여성의 한계다.

그럼에도 돌아다니는 여성의 시선을 통해 남성들은 말하지도 보지도 않는 세계를 볼 수 있다. 남성들의 여행기에서 현지 여성들은 일종의 정복 대상이며 자신의 자유의 매개로 등장하곤 한다. 영국 작가 제임스 보즈웰의 경우는 성구매 경험을 세세히 기록하기도 했다. 반면 넬리 블라이는 여행 중 ‘여자라서’ 수많은 금지와 마주한다.

“저녁에 식당차가 연결됐지만, 다른 여자들이 하는 말로는 여자들은 공공 식당차에서 남자들과 함께 먹지 않고 각자 객실에서 식사한다고 했다.”

“여자들 중 갑판에서 잘 만큼 용기 있는 사람이 없어서, 남자들이 갑판 전체를 차지했다.”

“남자들은 보통 파자마 차림으로 어슬렁거리고 있었지만,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정말 당황스럽게도 선장이 아침 8시까지는 갑판이 남자들의 공간이니, 그때까지 여자들은 갑판에 올라가지 말라고 공지했다.”

“배우는 모두 남자였다. 함께 간 일행이 내게 이 나라 여자들은 무대에 오른다는 것을 아예 생각도 못한다고 말했다.”

“내 동료들은 신을 벗으면 사원에 들어갈 수 있다고 했지만, 나는 여자라서 그런 특혜를 받을 수 없었다.”

“미국에서도 호텔이나 그 밖의 이상하고 옹색한 건물에 들어갈 때 여자라는 이유로 나는 옆문만 이용해야 한다.”

“여자들은 거리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받지 않고 안전하게 다닐 수 있도록 전체적으로 밀폐된 의자 가마를 좋아한다.”

이렇게 그가 만난 세상에는 여자가 갈 수 없는 장소와 여성혐오자들과의 만남이 이어진다. 한번은 갑판 위에서 혼자 있던 그에게 한 남자가 다가와 거친 수작을 건다. 넬리 블라이는 괜히 그를 더 흥분하게 만들었다가 바다에 던져질까 봐 그의 말을 받아준다. 저 멀리서 일등항해사가 보이지만 함부로 도움을 요청하지도 못한다. “나는 감히 일등항해사를 부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남자가 눈치챌까 봐 웃지도 못했다.” 척하면 척.

나는 넬리 블라이의 이 감정이 아주 잘 이해가 되었다. 무서운 사람과 함께 있어도 내가 지금 두려움을 느낀다는 사실을 상대에게 표현할 수 없는 상황. 상대를 더 화나게 만들면 안 된다는 공포심 때문에 평온하게 행동한다. 이는 폭력에 동의했다는 뜻이 아니라 더 큰 폭력을 막기 위한 방어다. 이게 어떤 상태인지 혹시 모른다면,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잘 생각해보길.

넬리 블라이는 세계여행을 기획하기 전에 정신병원에 잠입하여 르포 기사를 전한 적이 있다. 정신병원에 가기 전 그는 의사와 주변인들을 어떻게 잘 속일 수 있을까 고민한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고민은 정신병원에 들어갈 때까지만 필요하다. 일단 정신병원에 들어가면 자신이 정말 ‘미친’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멀쩡해 보이면 보일수록 의사들은 더욱 그의 정신병을 확신한다. 이게 무슨 뜻일까. 인간은 결국 사실을 믿는 게 아니라 자기가 믿는 걸 믿을 뿐이다.

넬리 블라이는 이 정신병원에서 미치지 않은 미친 여자들을 발견한다. 미쳐서 정신병원에 들어간다기보다 정신병원에 들여보내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강력한 편견으로 둘러싸인 세상이다. 여성에게는 이 사회가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인권투쟁의 역사는 대체로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의 무리한 요구로 이루어져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여성들이 더 무리해야겠다. 무리한 요구가 세상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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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영
프랑스에서 예술사회학을 공부했다. 현재는 미국에 거주하며 예술과 정치에 대한 글쓰기를 이어가고 있다. 지은 책으로 '여자 사람, 여자'(전자책), '환대받을 권리, 환대할 용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