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은행 채용비리 1심 판결 분석] ① ‘성공한’ 부정 채용은 처벌할 수 없다?

대구은행 부정채용자 23명 확인···20명 채용 관련자는 처벌
업무방해죄 증거 부족한 3명 채용 건은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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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1일 대구지방법원(11형사부, 손현찬 부장판사)은 비자금 조성, 채용비리 등의 혐의로 박인규 전 대구은행장에게 징역 1년 6월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증거인멸행위가 없었다면 더 많은 부정채용자가 있었을거라고 추정했다. 이번 재판으로 드러난 부정채용자는 23명이다.

재판부는 부정채용자 23명 중 20명에 대한 채용은 불법하게 이뤄졌다고 판단해 관련자들을 처벌했지만, 나머지 3명에 대한 채용은 불법성을 입증할 증거가 없다고 선고했다. 판결문은 이들 3명이 정해진 절차를 거치지 않고 채용됐고, 그 과정에 박 전 은행장이 개입했다는 사실도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박 전 은행장과 관련자들에겐 무죄를 선고했다.

대구은행 부정채용자 23명 확인···20명 채용 관련자는 처벌
업무방해죄 증거 부족한 3명 채용 건은 무죄

여기에서 채용비리 사건을 사법처리하는 데 발생하는 사법 시스템의 맹점이 드러난다. 언론은 채용비리 사건을 다룰 때 별다른 설명 없이 채용비리로 누가 어떤 처벌을 받았다고 보도한다. 박인규 전 은행장을 비롯한 채용비리 연루자들이 마치 ‘채용 과정에서 부정한 행위를 하면 안 된다’ 따위의 법 조항을 위반한 혐의로 처벌된 양 말이다. 실제로 박 전 은행장에게 적용된 혐의는 형법상 업무방해 혐의다.

형법 314조는 ‘313조의 방법(허위 사실 유포 또는 위계) 또는 위력으로 사람의 업무를 방해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정한다. 박 전 은행장은 법률상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 혐의’와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부는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 혐의만 유죄로 판단했고,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는 무죄라고 판단했다.

이때 위계는 흔히 알고 있는 ‘사람의 지위나 계층’을 의미하지 않는다. 법률상 위계(僞計)는 속임수 등으로 상대방에게 오인, 착각, 부지(해당 사실을 알지 못하게 하는 것)를 일으켜 상대방의 그런 심리적 상태를 이용해 불법한 목적을 달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서 상대방을 속여서 불법한 목적을 달성한다는 말이다.

23명 중 20명이 이런 사례다. 이들은 모두 1차 서류, 2차 PT 면접, 3차 필기, 4차 실무자 면접, 5차 임원 면접 절차에서 한 번 내지 두 번 이상 탈락했지만, 점수 조작으로 부활했다. 박 전 은행장을 비롯한 인사 관련 임원, 인사부서장 및 실무자들은 점수 조작이라는 속임수를 통해 외부 면접관이나 위탁평가업체를 속여서 불법한 목적을 달성했다.

박인규 고교, 대학 동창 자녀 등 3명
채용 절차 없이 영업지원직에 채용

재판부가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은 3명의 채용은 위계가 아니라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됐다. 속이지 않고 압력을 행사해 부정채용하도록 했다는 의미다. 판결문에 따르면 박 전 은행장 2015년 신입행원 공채 당시 고교, 대학 동창의 자녀 등 3명을 채용하라고 지시했지만 불발했고, 재차 구제 방법을 찾아보라고 인사부서장에게 지시했다.

인사부서장은 박 전 은행장의 지시에 따라 구제 방법을 강구해서 이들 3명을 영업지원직(계약직)으로 채용했다. 영업지원직 채용 역시 선발 절차가 있지만, 이들 3명은 절차 없이 채용품의서와 발령 공고문만으로 채용됐다.

재판부는 박 전 은행장이 이들 3명 채용에 관여했다는 점은 사실로 인정했지만, 그 과정에서 위력이 있었는지 여부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이 경우는 검찰이 박 전 은행장의 위력 행사를 입증 해내거나 해당 채용으로 인한 다른 불법 사안이 확인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다. 채용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과는 별개로 말이다.

민간기업에 대한 채용 문제를 규율하기 위한 법률(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 있긴 하지만, 채용 과정에서 벌어지는 위법하거나 탈법적인 행위(점수 조작 등)만을 두고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은 없다. 극단적으로 해석하면 채용에 관여하는 모든 관계자가 부정 채용에 동참하면, 처벌할 수 없다는 의미가 된다. 최근 여러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채용 취소 규정을 담는 개정안(심상정, 하태경) 정도가 가장 강력한 제재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