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은행 채용비리 1심 판결 분석] ③ 하춘수 전 은행장은?

판결문에서 총 25회 언급
경산 공무원 아들 채용에 관여 정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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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2 22:52 | 최종 업데이트 2018-10-03 09:19

2014년 3월 하반기, 대구은행 본점 9층 은행장실. 김대유 부행장이 은행장실을 찾았다. 하춘수 은행장이 은행장실에서 집무를 보고 있었고, 박인규 당시 후임 은행장 내정자는 은행장실 대각선 맞은편에 있는 한 사무실에서 인수인계를 받았다. “오 과장 아들이 응시했다고 합니다” 김대유 부행장이 하춘수 은행장에게 보고했다. “인사부에 알려주고 박 행장한테도 참고하라고 하세요” 하 은행장이 말했다.

“작년 경산 시금고 선정 때 세무과장 했던 사람 아들이 7급에 응시했는데, 하 은행장님 때 자격 요건 갖추면 채용 검토했던 사안입니다” 김대유 부행장은 경산시와 관련한 대구은행 거래현황을 박인규 은행장에게 보고한 후 덧붙여 설명했다. “알겠어요” 박 은행장이 짧게 답했다.

(1심 판결문 재구성)

지난달 21일 대구은행 채용비리, 비자금 조성 등에 대한 대구지방법원 1심 판결문에는 하춘수 전 대구은행장이 25회 언급된다. 박인규 전 은행장이 비자금으로 녹동회(대구경북 주요 기업 대표 모임) 연회비, 찬조금을 지출한 사안과 하 전 은행장에게 200만 원 상당의 ‘행운의 열쇠 10돈’을 선물한 사안이 불법한지 여부를 따지는 부분에서 7회 언급되고 나머지는 모두 부정채용 사안이다.

판결문에서 총 25회 언급
경산 공무원 아들 채용에 관여 정황

특히 2014년 상반기 채용에서 당시 경산시 세무과장의 아들을 부정채용한 사안에서 집중적으로 거론된다. 대구은행은 2013년 경산 시금고 선정 과정에서 경쟁사보다 우월한 위치에 서기 위해 세무과장 아들을 부정채용했다. (관련기사=대구은행, 경산 시금고 선정 특혜 보려 ‘알아서 공무원 자녀 채용?’ 18.8.14)

박 전 은행장은 이 사안과 관련해 업무방해 혐의뿐 아니라 뇌물공여 혐의까지 적용돼 기소됐고, 유죄 판결을 받았다. 박 전 은행장 측은 해당 사안은 하춘수 전 은행장 시절 결정된 것이어서 본인과 관련이 없다고 항변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춘수 전 은행장은 책임이 없는 걸까? 하춘수 전 은행장은 당시(2014년 3월) 연임에 성공한 은행장으로 임기 1년을 남겨둔 상태에서 스스로 사퇴 의사를 밝히고 퇴임을 앞둔 시점이었다.

판결문에는 그 해답이 엿보인다. 판결문을 보면 업무방해죄 성립은 업무방해의 결과를 초래할 위험이 발생하는 것으로 족하고, 업무수행 자체가 아니라 업무의 적정성 내지 공정성이 방해된 경우에도 성립된다고 밝힌다. 2013년 11월 28일 대법원 판시를 인용한 것인데, 1999년 대법원 판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20년가량 법원은 해당 업무를 직접 수행하는 것 뿐 아니라 적정성이나 공정성을 방해하거나 업무방해 결과를 초래할 위험을 발생시키는 것만으로도 업무방해죄 성립 요건으로 충분하다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판결문을 보면 해당 부정채용에서 하춘수 전 은행장의 역할이 적지 않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경산 시금고 유치 업무를 맡았던 김경룡 당시 대구은행 경북미래본부장과 경산영업부장, 경산시청 출장소장 등은 경산시 세무과장으로부터 아들 취업 청탁 요구를 받고 김대유 부행장에게 보고했다. 김대유 부행장이 하 전 은행장에게 보고했고, 김 부행장은 하 전 은행장으로부터 “자격증을 갖추면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답을 받아냈다.

하 전 은행장의 답은 실무자들에게 세무과장 아들 채용을 은행장이 약속했다는 걸로 받아들여졌고, 세무과장에게도 전달됐다. 후임인 박인규 전 은행장에게도 보고하라고 한 것도 하 전 은행장이다. 관련한 김대유, 김경룡 두 사람의 진술은 검찰 조사 과정이나 재판 과정에서 번복된 적 있지만, 재판부는 최초 진술이 더 신빙성 높다고 판단했다.

판결문에서 확인되는 하 전 은행장의 행위가 업무방해 결과를 초래할 위험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대구은행 채용비리, 비자금 문제가 세간에 알려졌을 때, 시민사회단체는 하 전 은행장도 수사해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검·경은 하 전 은행장까지 수사·기소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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