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 ‘미투’ 이후…피해 당사자, “2차 가해 진행 중”

31일 경북대 미투 토론회, 2차 가해 지적 이어져
"가장 확실한 증거 있는 미투...무책임한 대학"
여교수회, '젠더 연구소' 설립 추진
독립적인 인권센터 역할 제안도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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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01 14:43 | 최종 업데이트 2018-11-01 14:43

“가해자가 (보직 교수) 앞에서 울었다고, 반성했다는 이야기를 계속 들어야 했다”
“10년 전 합의를 강요하던 자리에 부인까지 와서 무릎을 꿇고 빌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사실이 없다. 저에게 계속 그 기억을 끄집어내라고 강요하셨다”
“지금까지 공간 분리도 전혀 안 됐다. 지나가다 마주친 적도 있다. 저는 아직 공포에 떨고 있다”

경북대 ‘미투’ 사건 피해 당사자가 힘겹게 꺼낸 말이다. 그는 지난 4월 미투 폭로 이후 2차 가해가 이어졌다고 말했다.

31일 오후 6시 경북대 교수회 회의실에서 ‘젠더 관점으로 본 경북대학교 미투’ 토론회가 열렸다. 이번 토론회는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경북대 교수회 젠더위원회, 한국비정규교수노조 경북대분회, 경북대 페미니즘 동아리 ‘KFC’, 전국대학원생노조 대구경북지회(준)가 공동 주최했다.

지난 4월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은 2007년 경북대 전임강사 A 씨가 대학원생 B 씨를 수차례 성추행했고, 동료 교수들이 합의를 종용하는 식으로 사건을 은폐했다고 폭로했다. 성추행 사건에 대해 민형사상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합의서와 A 씨를 ‘자율징계’하겠다는 확약서도 공개됐다.

6월 교육부는 실태조사를 통해 A 씨의 성추행 사실과 징계 권한이 없는 단과대학장 등이 자율징계 확약서를 마련하고 피해자에게 서명한 사실을 밝혔다. 하지만 징계 시효가 지나 A 교수를 포함한 보직교수 5명은 ‘경고’ 조치에 그쳤다. 교육부는 경북대에 2차 가해 방지 대책을 마련과 인권센터 규정 보완을 통보했다.

이날 토론회에 사건 피해 당사자 B 씨가 직접 참석했다. B 씨는 미투 폭로 후 대학본부 관계자를 만난 이야기를 전했다. B 씨에 따르면 대학본부 관계자들은 “가해 교수가 반성했다”, “10년 전 가해자와 부인이 무릎 꿇고 빌지 않았느냐”는 말을 했다고 한다.

B 씨는 “제일 황당하고 참담했던 건 교육부 조사도 끝났는데 제 이야기는 아직 주장이고 확정되지 않은 거라고 이야기하는 거였다”며 “없는 사실을 계속 기억해 내라고 몇 차례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고 말했다.

2차 가해 방지 대책 역시 부실했다. 대학은 A 교수 연구실을 기존 단과대학에서 다른 캠퍼스로 옮겼지만, A 교수가 기존 연구실과 옮긴 연구실을 모두 사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B 씨는 “미투를 하면서 요구한 것은 피해자 보호와 재발 방지를 위한 전수 조사 두 가지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공간 분리가 안 되고 있다”며 “지나가다가 마주친 적도 있다. 아침마다 기존 연구실에 온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지금도 온다는 이야기에 저는 계속 공포에 떨고 있다”고 말했다.

이 문제는 지난달 25일 열린 국회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지적됐다.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국회의원은 “가해 교수가 학교에서 연구실 2호점을 내줬다고 떠벌렸다고 한다. 성비위 문제 때문에 연구실을 옮겼는데 새 연구실과 함께 사용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며 “전 연구실에 가해자가 마음대로 활개 치고 다니면서 피해자의 활동 공간을 축소하지 않도록 후속 대책을 마련하길 당부한다”고 꼬집었다.

성비위 사건을 소홀히 관리한다는 지적에 김상동 경북대 총장은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며”며 “연구실은 삼덕동에서 복현동으로 다 옮긴 상태다”고 답했다.

신미영 대구여성회 고용평등상담실장은 “경북대 미투 사건은 전형적인 권력형 성폭력이면서 가장 확실한 증거가 있는 미투였다”며 “하지만 교육부가 가해자 경고 조치에 그쳤고, 경북대는 피해자 보호 대신 가해자를 비호하는 무책임한 행태를 보였다”고 지적했다.

경북대 내 성차별 만연 지적
여교수회, “젠더연구소 만들어 학내 성평등 키우겠다
독립적인 인권센터 역할 제안도 나와

▲왼쪽부터 천선영 경북대 사회학과 교수, 강혜숙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대표, 신미영 대구여성회 고용평등상담실장, 채연숙 경북대 교수회 젠더위원장, 권은주 한국비정규교수노조 경북대분회 정책학술국장, 정현정 대구여성노동자회장

경북대 내 성차별 인식이 만연하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에 대한 논의도 나왔다.

권은주 한국비정규교수노조 경북대분회 정책학술국장은 “어느 시기보다 평등을 지향하는 사회라고 하는데 성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제자리 걸음인 것 같다. 피해자에 대한 보호가 너무나 미흡하다”며 “대학 내 성비위 사건은 사법적 결과와 별개로 총장에 징계 권한이 있다. 교원에게 징계 사유가 인정되면 징계할 수 있는데, 적극적으로 성비위 사건 처리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학생인 KFC 한 회원은 “우리 동아리는 정규 동아리도 아니고 친목 모임 수준이다. 하지만 아무도 이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할 수 있는 단체도 없었다”며 “대자보 하나를 붙이는데도 ‘페미들이 하는 건 다 틀렸어’라거나 ‘페미들 대자보를 왜 붙여주냐’는 말을 들었다. 이번 미투 사건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경북대 내 만연한 성차별의 문제다”고 지적했다.

천선영 경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수업 시간 중 교수의 성차별 발언에 대해 언급했다. “짧은 치마를 입으면 성적을 잘 주겠다”, “여학생들은 자전거 탈 때 조심하라”, “여학생들은 잘 못 하니까 한 조에 남학생도 같이 넣어라” 등이다.

천 교수는 “진위를 떠나서 다수의 학생이 이런 보고를 한다는 것이 죄송하지만 우리 대학 실상이다”며 “대학 내 젠더 문제를 이야기할 카운터 파트가 없다. 젠더 관련 복수전공 프로그램을 만들거나 젠더 연구소도 추진 중이다. 작은 소모임 활성화하면 좋겠다.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채연숙 경북대 교수회 젠더위원장도 “학내에서 미투가 일어난 거에 대해 굉장히 책임을 느낀다. 너무 마음이 아프고 동참하고 싶고, 연대하고 싶다”며 “여교수회 젠더위원회에서 젠더 연구소를 설립하고 있다. 여교수회는 한다면 다 해낸다. 서로 책임지고, 가해자가 사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내겠다”고 말했다.

경북대 인권센터 역할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육주원 경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인권 개념에 대한 몰이해와 오용이 있다. 가해자 인권은 어떻게 할 거냐는 식이다”며 “인권센터는 대학 내 위계에서 자신의 권리를 충분히 누릴 수 없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인권센터는 수사기관이 전혀 아니고, 학내 학습권, 교육권, 노동권 등을 보장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육 교수는 “학교 커뮤니티에 구체적으로 인권센터에 대한 불신이 제기되고 했다. 총장, 부총장이 당연직을 맡는 것이 아닌 학생들의 참여가 보장되는 독립적인 기구로서 인권센터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는 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3시간가량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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