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먹칠] ‘대구’라는 출발선 / 이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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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05 14:22 | 최종 업데이트 2018-11-05 14:22

새벽 4시 30분, 일어나 나갈 채비를 하고 기차역으로 향한다. 6시 출발 기차 안, 두어 시간을 눈 뜨지도 눈 감지도 못한 채 있다 보면 어느새 서울이다. 그렇게 8시 30분, 나는 마침내 서울의 한 시험장에 도착한다. 시험을 치르고 다시 대구로 돌아가면 어느덧 하루가 훌쩍 지나 있다. 단 한 번의 시험에 나의 하루는 물론, 10시간을 아르바이트해도 손에 쥘 수 없는 비용을 쓴다. 사실 이만하면 다행이다. 기차 시간, 또는 시험장 입실 시간이 빠듯해서 어쩔 수 없이 시험 전날 서울로 가야만 하는 때도 있다. 소모되는 시간과 비용은 배가 된다. 타 지역 취업준비생들과 본의 아닌 ‘숙소 경쟁’을 할 때도 있다.

대구에서 나고 자란 취업준비생인 나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일까? 서울 중심의 취업 시장에 내던져진 수많은 존재는 모두 각기 다른 출발선에 서 있다. 목표 지점까지 쉽게 도달할 수 있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목표로 가는 첫 관문에 다다르는 것마저 벅찬 이들이 있다. 대개 지방이라는 출발선에 선 이들이 그렇다. 채용 정보는 물론, 지원 과정과 입사 후까지 모든 것이 지나치게 서울에 집중된 상황이다. 신규 채용공고의 70% 이상도 수도권에 있다. 이는 곧 그만큼 지방에는 기회가 없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지방의 취준생들은 자신의 의지가 어찌 됐든 ‘상경’을 택할 수밖에 없고, 수도권의 취준생보다 더 많은 시간과 비용, 자원을 투자해야만 한다. 실제로 한 취업포털의 조사에 따르면 지방의 취준생은 시험 1회당 20만4000원을 사용한다고 한다. 이는 수도권의 취준생보다 8만3000원가량 높은 금액이다.

하지만 나를 포함해 그 누구도 이 채용 환경에 쉽사리 화를 내거나 반기를 들지 않는다. 먹고 사는 문제와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평균적으로 보면 과거 세대보다 경제적으로 더 나은 상황에 놓여 있는듯하지만, 사실 이전보다 ‘경제적 안전’은 더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청년실업률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고, 취업자 수 증가 폭은 ‘고용 참사’로 평가될 만큼 쪼그라들고 있다. 일자리가 있다 해도 고용의 안정성이나 임금 등 근로조건이 열악한, 질 나쁜 경우가 다반사다. 그 와중에 모든 전문가와 매체가 앞다퉈 전망은 더 어두울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질 좋은 일자리를 획득해서 안정적인 삶을 누리는 것. 나아가 미래에 닥칠지도 모를 경제적 궁핍과 결핍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는 것. 이것이 지금 우리가 현재의 행복을 갈음하면서까지 얻고자 하는 ‘꿈’이 됐다.

먹고 사는 문제 외에도 이유는 더 있다. 그래도 저 바늘구멍 같은 채용 시스템이 그나마 가장 평등하고 공정하다는 생각이다. 모두 일괄적으로 서울에서 시험을 치르게 하고, 그 시험 점수로 줄을 세워서, 차등적으로 보상을 지급하는 시스템은 모종의 믿음을 갖게 한다. 출발선은 좀 뒤처져 있지만 어쨌거나 나만 잘하면, 수도권의 취준생뿐만 아니라 ‘금수저 전형’과 ‘빽’의 존재까지 제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즉, 모든 게 ‘내가 더 노력하면 될 일’이 된다. 이 믿음 아래 수면 위로 떠 올라야 할 질문들은 심해로 가라앉는다. ‘왜 모두가 굳이 서울에 모여야 하는가’ ‘왜 단 한 번의 시험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가’ ‘왜 운도 때론 노력의 한 영역으로 여겨지는가’ 같은 것들 말이다. 공정하게 경쟁할 자격마저 평등하게 주지 않는, 작금의 채용 시스템이 가진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민낯은 그렇게 감춰진다.

서울의 시험장에서 나는 신분증이나 구비 서류를 미처 챙기지 못한 이들을 종종 본다. 각기 다른 사정을 호소하는 그들을 향해 회사 측은 꽤 한결같은 태도를 고수한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게 있다. “원칙에 따라 한두 시간 내로 가져오시면 인정해 드립니다. 가족에게 부탁해서 퀵 서비스로 보내 달라고 하세요.” 그들은 너무나 당연하게 서울에 터전이 있고, 가족이 있는 취준생만을 상정했다. KTX역이 없는 지방에서 올라온 그 취준생은 그렇게 허무하게 기회를 잃었다. 그때 그는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는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워야 한다”라는 말을 기억한다. 그렇다고 당장 지방 취준생의 기회와 과정, 결과까지 몽땅 책임져주길 바라는 게 아니다. 고용 상황을 마법처럼 해결하길, 채용 환경을 전부 다 뒤엎어 주길 바라는 것도 아니다. 정말 지방이란 출발선에 선 이들에게까지 기회가 평등한지, 정부와 회사가 살펴봐야만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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