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전태일 48주기 노동영화 특별전” 준비 여정(1) /김상목

<청년 마르크스>의 분노에서 170여 년 후...
<내가 사는 세상>, <사수>, <안녕, 미누>의 세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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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2 15:51 | 최종 업데이트 2018-11-12 15:51

켄 로치의 인내와 확신

▲켄 로치 감독

노동 관련 영화를 소개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 중 하나가 켄 로치입니다. 2017년에 치러졌던, “켄 로치의 삶과 영화 Versus : The Life and Films of Ken Loach” (2016)을 보면 한국 나이로 83세의 노장이 겪은 고난의 삶과 영화편력(1967년 공식 데뷔했으니 반세기가 넘는!)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이 노익장이 수많은 시련을 무릅쓰고 ‘노동계급을 위한 영화’를 만드는 이유도 들어볼 수 있지요. (본 작품은 EBS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EIDF”) 상영작을 다시 볼 수 있는 “D-B0X”에서 유료관람이 가능하다. 링크)

▲켄 로치 감독의 “1945년의 시대정신”

그의 근작들은 다시 영국의 노동계급 역사를 회고하고 교훈을 구하려 합니다. 2차 세계대전 후 잿더미 속에서 전쟁 수행에 목숨 바쳤던 노동계급이 그 대가로 비록 불완전하지만 한때나마 얻어냈던 복지국가 구현과 현실에서 얻었던 ‘잠정적 유토피아’가 무너지는 과정을 담은 “1945년의 시대정신 The Spirit of ’45”(2012)이 켄 로치의 영화인생과 조응하듯 영국의 현대사를 보여준다면, 점잖은 노감독이 ‘장례식도 민영화해야!’(대처 전 총리를 어떻게 기려야 하느냐는 물음에 “그의 장례식을 민영화하자. 경쟁 입찰에 맡겨 가장 싼 업체를 받아들입시다. 그는 그런 걸 원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 기사)라고 일갈했던 대처 시절의 민영화 후유증을 다룬 철도노동자들의 몰락담 “네비게이터 The Navigators”(2001)와 한국사회에서도 이제 화두로 자리 잡은 이주노동자들로 인한 일자리 갈등, 노동계급과 노동계급이 서로를 적대하고 착취해야 먹고 살 수 있는 지경으로 내몰려버린 일그러진 “자유로운 세계 It’s a Free World…” (2007)의 피도 눈물도 없는 현실의 아이러니를 담아냅니다.

▲켄 로치 감독의 “네비게이터”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세상의 모순에 대해 일시적이거나 예외에 불과할지언정 꾸준하게 저항하고 맞서는 이들에 대한 온정어린 묘사를 지극히 ‘사실적으로’, 억지 해피엔딩과는 담을 쌓은 채 담아내는 작업도 카메라 뒤편에서 흐뭇하게 웃어가며 담아내고 있습니다.

▲켄 로치 감독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

노동계급에서 사회적 잉여로 몰락해 존엄성을 잃어버린 ‘차브’(“차브”에 대한 이해를 돕는 서적으로 “차브 – 영국식 잉여 유발사건”(오언 존스|북인더갭|2014)가 국내출간되어 있다.)들의 자존감 회복 여정을 따라가는 “엔젤스 셰어:천사를 위한 위스키 The Angels’ Share”(2012)는 물론, 성실한 노동계급을 좌절에 빠뜨리는 복지체계와 시스템의 문제를 고발하는 “나, 다니엘 블레이크 I, Daniel Blake”(2016), 이주노동자 문제를 적극적으로 대응해 전미서비스노조(SEIU)의 조직화 과정을 담아낸 “빵과 장미 Bread and Roses”(2000)까지 켄 로치는 영국을 넘어 전 지구적 노동계급의 쟁점과 현안을 보여주는 과업으로 묵묵하지만, 거침없이 나아갑니다. (신작을 지금도 작업하는 중이고 내년에 선보일 예정입니다)

‘대영제국의 몰락’으로 귀결된 2차 세계대전 후 복지국가가 만들어지면서 안정된 삶을 한 세대 동안 영위하던 노동계급이 대처 시대 이후 무너져가는 것을 켄 로치는 묵묵히 담아내고 안타까움을 나타냅니다. 그렇다고 그가 자포자기하지는 않습니다. 과연 어떤 심지가 있기에 저 노장은 버티는 것은 물론, 그가 옳다고 믿는 세상, 노동계급이 존엄성을 유지하고 사회가 인간의 얼굴을 하는 세상을 만들자고 계속 활동하게 만드는 힘을 잃지 않는 것일까요?

■ 마이클 무어의 절망과 조급함

▲마이클 무어 감독

반면에 자신만만해 보였던 마이클 무어는 갈수록 흔들립니다. 물론 무어가 타협하거나 변절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의 위태로움은 그 역시 갈구하는 세상의 상이 잡혀 있고, 영화로 자신이 가진 힘과 능력을 철저히 활용하려 해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몇 차례의 도저히 질 수 없는, 혹은 져서는 안 될 싸움에서 계속 밀리는 현실에 대해 마이클 무어는 지치고 혼란스러워집니다.

마이클 무어의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그의 데뷔작도 기억날 겁니다. 그의 고향이자 제너럴모터스(GM) 공장이 있던 소도시 플린트의 몰락과정을 담은 “로저와 나 Roger & Me”(1989)입니다. 동네 신동 소리를 듣던 소년은 그가 자라난 고향이 GM 공장의 철수와 함께 붕괴하는 참담한 현실을 지나치지 못했고, 풍자가 넘치지만 우직하게 GM의 대표인 ‘로저’를 잡으러 다닙니다. 그리고 상식이 통하지 않는 미쳐가는 조국, 미국에 대한 일련의 풍자를 담은 역작을 계속 내놓게 되지요.

▲마이클 무어 감독의 “볼링 포 콜럼바인”

여전히 그의 작품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소재인 총기 규제에 대한 이야기, “볼링 포 콜럼바인 Bowling For Columbine”(2002)을 지나 명분 없는 이라크 전쟁과 구린내가 풀풀 나는 미국과 중동 산유국들과의 관계를 조명한 “화씨 911 Fahrenheit 9/11”(2004)을 거쳐, 미국 공공의료를 논할 때 피해갈 수 없는 “식코 Sicko”(2007)로 거침없이 질주합니다.

이 대표작들로 마이클 무어는 유명세와 부, 영향력을 모두 갖추게 되지요. 이제 자신감을 얻고 마침 2008년 월스트리트 발 세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일어난 월가 점령운동에 자극받은 무어는 차기작으로 “자본주의:러브스토리 Capitalism:A Love Story”(2009)를 통해 부패한 기득권과 군산복합체-투기금융세력에 점령된 미국을 구하자는 외침을 전합니다. 그런 그가 희구하는 세상은 1929년 대공황 이후 프랭클린 루즈벨트에서 해리 트루먼,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까지 이어지는 ‘뉴딜’ 이후의 진보적인 변화와 번영이 함께하던 미국입니다.

▲마이클 무어 감독의 “자본주의:러브 스토리”

미국 역시 뉴딜정책으로 급한 불을 겨우 끄고, 2차 세계대전 후 전역군인과 전쟁에 협조한 여성 및 유색인종에 대한 경제적/정치적 권리를 확대하는 과정이었으니까요. 이 부분은 켄 로치가 희구하는 클레멘트 애틀리(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노동당 내각을 이끌며 영국을 “요람에서 무덤까지” 복지국가로 만드는데 상징이 된 총리, 그 처칠을 물리치고 집권함. 영국 역대 총리 중 인기도 1, 2위를 놓치지 않는 정치인)와 어나이린 베번(애틀리 내각에서 장관을 역임하면서 NHS를 도입하는데 지대한 역할을 한 노동당 좌파 계열 정치인) 시절의 노동당 정부 시기와도 겹칩니다. 하지만 “식코”까지 거침없이 회자되던 마이클 무어의 유명세가 한풀 꺾이기 시작하는 계기이기도 하지요. 너무 많은 내용, 혹은 한 가지 쟁점을 잡아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통쾌함을 넘어서서 체제 전반에 대한 급진적 개혁을 요구하는 세계관의 확장에 대한 공감대가 예전만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후 “자본주의:러브스토리”의 문제의식을 보다 더 세분화해 10여 개국을 순회하며 ‘미국이 잃어버린 좋은 것들’을 소개하는 “다음 침공은 어디? Where to Invade Next”(2015)는 마치 다른 감독의 작품을 보는 양 진중하고 무거워집니다. 반비례로 마이클 무어의 촌철살인이 담긴 연출을 기대한 이들에겐 어렵고 난해하고 늘어지는 작품이 되어버렸지요. 마치 교육동영상을 보는 느낌이랄까요. 유튜브 채널로 조각조각 나눠서 소개하면 호응을 얻겠지만 두 시간 내내 강의 듣는 느낌이 되어버립니다. 그리고 이제 11월 말 개봉을 앞둔 신작은 그런 혼돈의 절정에 달했다는 평판이 자자합니다. “화씨 11/9:트럼프의 시대 Fahrenheit 11/9”(2018)가 바로 무어의 최신작입니다.(국내개봉은 11월 22일로 확정되었으나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어 미리 관람해 내용을 확인했음.)

마이클 무어는 절망에서 일어설 수 있을까? : “화씨 11/9”에 대한 단상

▲마이클 무어 감독의 “화씨 11/9”

“화씨 11/9”는 제목부터 그의 인기작인 “화씨 911”을 비틀어 만든 제목입니다. “화씨 911”이 저명한 고전 과학소설거장 래이 브래드버리의 <화씨 451>에서 책을 불태우는 디스토피아적 미래사회를 풍자하는 내용을 공포에 기반한 선동으로 내몰리는 부시 정권 시절에 비교해 패러디한 제목이라면(그러나 제목을 차용하는 과정에서 원작자의 동의를 구하지 않아 브래드버리는 무어에게 가시돋힌 반응을 보였다고 함. 원작 <화씨 451>은 프랑수아 트뤼포(1966년), 라민 바흐러니(2018년) 두 번에 걸쳐 영화화되었음), “화씨 11/9”는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 당선을 확정한 날짜를 가지고 그의 전작을 2차로 패러디한 것입니다. 전작이 부시 시절의 전쟁 광기를 지성과 상식이 불태워지는 고전에 빗대 표현했다면 셀프 패러디로 드널드 트럼프 집권을 그에 맞먹는 재앙으로 표현한 것이지요.

▲마이클 무어 감독의 “화씨 9/11”

마이클 무어의 작품 연보에서는 일관성을 느낄 수 있지만, 새로운 명명보다는 자기복제에 가까워 보이는 점이 아쉬운 대목입니다. 누군가는 이런 모습에서 마이클 무어의 매너리즘을 느낄 것이고, 다른 누군가는 무어의 작품세계 전반에 대한 계열화를 진행하겠지요. 하지만 전자가 떨어져 나가는 이들이라면, 후자는 확대보다는 그저 유지되는 이들일 확률이 높습니다.

이 작품에는 트럼프 치하에서도 여전한 총기 난사와 이에 맞서는 10대 청소년들의 이야기나 트럼프에게 패배한 힐러리 클린턴과 민주당 경선을 치렀던 버니 샌더스 계열의 진보적 정치인들이 등장하는 부분들이 희망을 유지한다면, 나머지 대부분은 비관과 회한으로 흘러갑니다. 특히 민주당에게는 성공과 번영의 시절이던 버락 오바마 집권 시기에 대한 환멸이 두드러지지요. 비판은 예전에도 전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자본주의 러브스토리”에서 보이던 기대감은 신기루처럼 휘발되고, 트럼프 집권을 초래한 원흉 취급에 가까울 정도로 날이 서 있습니다. 미국 정치에 해박하지 않다면 당황스러울 정도죠.

현재 민주당 주류 전체(민주당 주류세력을 거칠게 분류하자면 클린턴 부부가 오른쪽이자 최대세력이 된다. 앨 고어나 오바마는 조금 중간으로 간 정도이지만 정책적으로 큰 차이는 없으며, 정식 민주당원이 아닌 버니 샌더스나 최근 트럼프와 설전을 벌였던 엘리자베스 워런이 가장 왼쪽의 포지션이다. 1990년대 영국에서 ‘신노동당/제3의 길’ 노선으로 재집권한 토니 블레어 총리 시절 당내 논쟁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에 대한 실망과 좌절이 스크린 너머로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왜 몇 년 사이에 마이클 무어는 오바마와 소원해진 것일까요? 그리고 트럼프의 당선을 거의 유일하게 예측했던 무어는 왜 신작에서 트럼프와 히틀러의 연설 장면을 겹쳐 보이게까지 하면서 미국의 우경화를 파시즘 수준의 위협으로 받아들이는 것일까요? 무어가 예민한 징후를 포착해낸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충분히 막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던 위험들이 제대로 방어되지 못하고 점점 더 심각해지는 데에서 느끼는 회의감이 초조함으로 전달됩니다. 무어를 포함한 문화예술계의 노력이 허공을 맴돌 뿐 유효타를 날리지 못하는 데에서 느끼는 조급함이 그의 작품들에서 가장 큰 매력요소였던 것들을 잃어가게 만들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우리가 흔히 인식하는 마이클 무어의 작품은 주도권을 쥔 채로 시종일관 강자들을 조롱하고 비웃으며 풍자를 펑펑 날려댑니다. 누구나 느끼던 의문이나 해결을 바라는 현안을 스크린 앞에서라도 대리만족을 느끼게 해주고, 혹은 작은 실천으로 나아가게 하는 후련함이 점점 증발해갑니다.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어떻게든 ‘나는 틀리지 않았어’라는 근거를 들이대거나, 기성 정치권, 주류 언론에 대한 날선 비판으로 메워집니다. 무어의 성찰이 심화되고 있다고 볼 이들도 있겠지만, 켄 로치처럼 비판할 건 당연히 하지만 그렇게 된 역사적 과정이나 사회적 세력구도에 대한 인식을 선악 대비로 검단하려는 도피로 비치기도 합니다.

마이클 무어는 마음이 급합니다. 계속 광야에서 정치권과 시민들에게 예언자처럼 그가 가진 능력과 재주를 발휘해 진리를 설파했지만, 제대로 알아먹지 못하거나 사리사욕에 의해 말아먹는 것을 거듭 겪으면서 더 까탈스러워진다는 느낌입니다. 아직 정의와 진보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았고, 희망을 찾으면서 미국의 과거사는 물론 외국에서 배워야 할 점들도 거침없이 가져오지만, 여전히 미국 중심이기도 하구요. 물론 그의 고향 플린트에서 노동계급으로 성장한 근본 덕분에 한국의 주류정당에 입성하면서 과거의 노동운동 경력을 부정하거나 ‘그때는 맞았지만 지금은 틀리다’고 강변하는 성공한 정치인들에 대한 환멸을 갖기에는 아직 많이 이르다는 생각입니다.

켄 로치와 마이클 무어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가: 상상
켄 로치와 마이클 무어가 꿈꾸는 세상은 외형상 차이가 크지 않습니다. 노동계급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복지제도를 누리고, 차별이 사라지고 무익한 전쟁은 하지 않으며 사회갈등이 통합되고 공동체 의식이 건강하게 구현되는 사회겠지요.

과거로 회귀한다면 켄 로치는 1945년 이후 한 세대 동안의 요람에서 무덤까지 복지국가 시절의 영국을, 마이클 무어는 1929년 대공황 이후 뉴딜 정책으로 복지제도와 노동조합이 활성화되던 루즈벨트 시절의 미국을 연상할 것입니다. 그러나 비슷해 보이는 두 ‘잠정적 유토피아’는 과정에선 꽤 차이가 납니다. 유럽에서 복지국가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노동조합과 사회운동, 노동계급 정당으로 집권하거나 사회개혁을 끌어낸 반면, 미국에선 ‘위로부터의 개혁’에 가깝게 만들어졌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스스로 만들어내고 불완전하지만 일정 기간을 유지해왔던 저력, ‘초인’이 아니라 장삼이사들이 모여 시행착오와 고생을 겪으며 직접 쟁취한 성취감을 경험한 세대의 켄 로치와, 세대 차원의, 혹은 계급 차원의 집단적 조직화로 문제를 해결해본 경험이 상대적으로 약한 마이클 무어의 경험치 차이일 수 있습니다.

켄 로치의 위대함이기도 하지만, 켄 로치가 경험한 걸 마이클 무어는 경험할 수 없었던 시대적 한계이기도 하겠지요. 시대를 골라 태어날 선택권은 누구에게도 없으니까요.

결국 최근에 민주노총 출신의 현 집권당 원내대표나 학생운동 전성기 시절을 상징하는 청와대 비서실장이 노동조합과 조직화된 노동운동에 대한 공격에 앞장서는 것은, 노동운동이 가지는 위력에 대한 경계심의 표현인 동시에 ‘위로부터의 온정적인 개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인식을 품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토니 블레어 시절의 영국 노동당이나 버락 오바마 시절의 미국 민주당, 프랑수아 올랑드 시절의 프랑스 사회당, 게르하르트 슈뢰더 시절의 독일 사회민주당도 공통으로 보이는 면모입니다. 당내 선거제도 변화(주로 노동조합이나 급진적 사회운동집단 약화를 꾀하는)나 행정부 내 친 기업세력의 대거 등용, 국제적으로 명분 없는 전쟁에 대한 협조나 방조(노동당 출신 총리였던 토니 블레어는 미국이 주도한 이라크전에 적극 협조하는 등 국제정책에서 “부시의 푸들”이란 조롱까지 들었다. 故 노무현 대통령 역시 이라크전쟁 참전으로 지지세력 일각에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점과 비교거리)들이 그런 유사점이지요.

물론 한국의 노동운동은 여러 비판지점이 있고, 변화의 속도가 느릿느릿해 복장 터지게 만든다는 이들이 한둘이 아닙니다만, 그래도 진보적 사회변화에 있어서 가장 조직화되고 원동력 역할을 일정 부분 수행할 수 있는 기반(2016년 촉발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촉구 촛불시위에서 전 기간에 걸쳐 무대부터 방송차, 가두행진 대오 인솔까지 해낸 인프라의 절대적인 부분은 민주노총으로 표상되는 조직화된 노동운동에서 나왔음)을 갖춘 집단이기도 합니다.

좀 더 현실 정치와 정책 이야기를 하면서 1부를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최저임금 인상도 요구보다 미흡했지만 그 인상을 빌미로 탄력근로제 확대나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장을 통해 실질 임금인상 효과는 줄여서 기업부담을 덜 주겠다고 공언하는데, ‘소득주도성장’ 기조는 변함없다고 하면 립서비스를 넘어 실제로 의지를 가진 정책인지 아니면 ‘립서비스’인지 헷갈린다는 거죠. ‘믿고 기다려보자’고만 하기에는 부정적 징후가 농후해서 제대로 된 사회적 논쟁이 폭발하는 게 더 유용해 보인다는 생각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켄 로치의 내공보다 마이클 무어의 초조함이 불안불안하지만, 그의 근작들은 오히려 한국사회 논쟁에 끌어들여 토론해볼 가치가 있다고 보입니다. 반면교사의 역할, 혹은 우리가 겪는 논쟁과 갈등과 유사한 부분에 대한 비교가 꽤 생산적이고 다양한 논의로 흐를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래서 아직 마이클 무어는 제게는 이후 작업이 흥미로운 작가입니다.

<행사개요>
▣ 일시: 2018년 11월 17일(토)~18일(일) 15:00 l 18:00(1일 2회 상영)
▣ 장소: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중구 국채보상로 537 서울한양학원 1층)
▣ 공동주최: 대구사회복지영화제 조직위원회,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 전태일 48주기 대구시민노동문화제

※ 관람신청 및 문의 : 선착순 입장(55석) l 관람전후 자율후원
–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 전화(053-425-3553)
– 대구사회복지영화제 김상목 프로그래머 문자 및 메일
(휴대전화 l 010-8598-1324, 전자메일 l spanishbombs@hanmail.net)

※ 특별전 상영작 소개는 다음 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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