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수경 칼럼] 미국 연방정부 셧다운, 무엇이 진짜 위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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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4 15:11 | 최종 업데이트 2019-01-14 15:11

미국 역사상 가장 긴 연방정부 셧다운(Shutdown)이 진행되고 있다. 셧다운은 연방정부 기관을 임시 폐쇄하고 업무를 정지하는 것을 말한다. 이전까지 셧다운 최장 기록은 1996년 1월 클린턴 정부에서의 21일이었다. 그 기록이 1월 13일로 셧다운 23일째를 맞으며 깨졌다.

셧다운으로 80만 연방노동자들이 급여를 못 받고 있다. 항공교통 관제사, 교도관, 기상 통보관 등 필수 업무를 수행하는 일부 노동자들만 무급으로 일하고 있고, 나머지는 강제 무급휴가에 들어갔다. 평소보다 지출이 늘어나는 연말에 노동자의 임금이 끊긴 것이다. 트럼프가 노동자에게 준 기막힌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또한 연방정부 지원을 받는 저소득층이 가장 먼저 셧다운의 영향을 받고 있다. 셧다운이 이달을 넘기고 계속되면 당장 저소득층 가정이 받고 있는 식품보조 프로그램이 중단될 것으로 전망된다. 연방정부의 보조를 받는 가정폭력 피해자 쉼터 같은 프로그램 운영도 불투명해진다.

연방정부의 저소득 세입자 월세보조 프로그램이 만료됐지만, 셧다운 때문에 재계약하지 못한 경우가 1월 초까지 1,150건이라고 한다. 셧다운이 계속되면 이 수는 늘어날 전망이라 혜택을 받고 세입자 1백2십만 명이 살던 집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잘 알려져 있듯이,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세우겠다는 것이 트럼프의 대선 주요 공약 중 하나였다. 트럼프는 이를 위한 비용 57억 달러(약 6조3800억 원)의 예산안 포함 여부를 두고 민주당과 대립하며 셧다운을 강행하고 있다. 한발도 물러서지 않겠다며 지난 8일 국경장벽 건설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대국민 TV 연설을 했는데, 이날도 트럼프는 평소대로 대부분 사실에 기반하지 않은 주장을 펼쳤다.

미국-멕시코 국경으로 범죄자와 마약이 밀반입되고 있다는 주장은 정부 기관인 마약단속국의 보고서만 봐도 사실이 아니다. 미국으로 들어오는 불법 마약은 대부분 공항이나 항구 등 합법적인 입국 경로를 통해 들어온다. 국경 장벽 설치로 막을 수 없다는 말이다. 이민자들이 저지르는 범죄로 시민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이주민의 범죄율은 정주민보다 훨씬 낮다. 서류미비자도 대부분 밀입국보다는 합법 신분으로 미국에 들어왔다가 체류신분을 연장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미국에는 멕시코와 마주한 남부 국경 말고 캐나다와 마주한 북부 국경도 있다. 미국 본토와 알래스카 구간을 합쳐 8,891km에 이르는 세계에서 가장 긴 국경이다. 하지만 트럼프의 ‘국경 위기’ 공포 조장 그 어디에도 캐나다 국경에 대한 언급은 없다. 최근 몇 년 사이 멕시코 국경을 통한 밀입국이 줄어들고 있는 것에 반해 캐나다 국경을 통한 밀입국은 늘어나고 있음에도 말이다. 예를 들면, 캐나다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버몬트주에서 밀입국을 시도하다 체포된 사람 수가 2018년 상반기 6개월 동안만 전년 대비 142%가 늘었다.

트럼프의 국경 위기와 장벽 건설 논의가 멕시코 국경에 국한되어 있는 것은 작년 트럼프가 왜 노르웨이 같은 나라의 이민자를 더 많이 받지 않고 엘살바도르나 아이티 같은 거지소굴 (shithole)에서 온 이민자를 받아야 하냐고 했던 발언(관련 기사=[남수경 칼럼] 혁명으로 노예제 폐지한 ‘아이티’를 ‘거지소굴’로 부른 트럼프)과 마찬가지로 백인 중심의 미국을 재건하자는 백인우월주의, 인종주의일 뿐이다.

국경에서 벌어지고 있는 진짜 위기는 트럼프 행정부의 국제법 위반과 반인권적 범죄행위다. ‘무관용 원칙(zero tolerance)’이란 미명하에 국경에서 체포된 부모와 아이를 격리하는 것부터(관련 기사=[남수경 칼럼] 가혹하게 닫힌 국경 앞에서 고통받는 난민들), 가난과 폭력을 피해 온 중남미 난민 행렬인 캐러밴의 국경 접근을 막는다며 어린아이와 여성을 향해 무차별 최루탄을 살포하고, 국제법과 미국법에 분명히 보장된 난민신청 권리를 막으려는 시도들이 수많은 예 중 일부이다.

▲미국-멕시코 국경의 장벽 [사진=미국 정부 홈페이지]

8일 대국민 연설에서 트럼프가 유일하게 진실에 가까운 말을 한 것이 있는데, 바로 “척 슈머 상원의원을 비롯해 많은 민주당 의원들은 과거 여러 차례 국경에 물리적 장벽(physical barrier)을 세우는 것을 지지했다”며 자신이 대통령이 되니까 입장을 바꿨다고 한 것이다.

미국 주류언론은 이것을 트럼프가 맥락을 왜곡한 것이라고 한다. 2006년 척 슈머 상원의원과 당시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 등 민주당 의원 26명이 찬성해 통과된 법안은 미국-멕시코 국경 700마일(약 1,127km)에 ‘장벽’이 아니라 ‘펜스’를 세운 것이라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짓겠다는 콘크리트 ‘장벽’과는 차이가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본질은 같은 얘기다. 공화당과 민주당 둘 다 인종주의적 반이민 기조에 기반한 ‘국경 통제’에 기본적으로 찬성하고 있다. 문제는 14세기에나 어울리는 장벽이냐, 아니면 21세기 첨단 국경 통제인가를 놓고 대립하는 것이다. 주류언론이 떠드는 것처럼 반이민 대 친이민의 대결구도가 아니다.

미국이 밀입국을 막는다며 국경에 처음으로 물리적 구조물을 설치한 것은 1990년대 민주당 클린턴 정부 때다. 클린턴 정부는 불법이민에 단호히 대처한다며 국경지역 곳곳에 펜스와 구조물을 설치했다. 지난 2006년에 부시 대통령하에서 민주당의 지지를 받고 통과한 국경보안법(Secure Fence Act)으로 남부 국경을 따라 더 많은 펜스와 물리적 장벽이 세워졌다. 오바마 행정부 때 국경 통제는 더욱 강화되어 국경 통제에 필요한 인력과 장비를 대폭 늘리고 최첨단 군사화하면서 오늘날의 ‘군사화된 국경’이 만들어졌다. 또한 역사상 가장 많은 이민자들이 미국에서 추방되었다.

지금도 민주당은 트럼프가 요구하는 콘크리트 장벽 설치는 거부하지만, 국경 안보강화를 위한 13억 달러(약 1조2600억 원)에 달하는 예산을 제안하고 있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오해하지 마라. 민주당은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국경 안보의 강화를 원한다. 하지만 우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무엇인가에 대해 대통령과 의견을 극명하게 달리한다”고 말한다. 콘크리트 장벽은 “21세기의 문제에 14세기 해결책”일 뿐 효과적인 국경 통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구태의연하고 효력 없는 장벽이 아니라 21세기에 걸맞은 첨단 경비와 통제 수단을 늘리자는 것이 민주당의 주장이다. 민주당은 트럼프의 노골적인 이민자혐오 표현에만 반대하고 있을 뿐 인종주의적으로 이민을 통제하고 더 많은 사람들은 추방해야 한다는 기본 프레임 자체에는 반대하지 않는다.

클린턴이 처음 국경 펜스를 건설한 이후 지금까지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밀입국을 시도하다 목숨을 잃었다고 추산된다. 가난과 폭력을 피해 미국으로 넘어 오려는 이주민들이 국경 수비대를 피해 자연환경이 더 열악한 산악지대나 사막지역을 통해 밀입국을 시도하도록 내몰렸기 때문이다.

국경을 넘다 용케 살아남아도 국경 지역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국경수비대의 손에 살해당하거나 이민 구치소에서 죽음을 맞는 경우가 늘고 있다. 특히 트럼프 정권 2년 동안 이민구치소에 구금 중 사망한 사람들이 22명에 달한다. 지난달에는 두 명의 과테말라 출신 아동이 이민구치소에서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목숨을 잃었다. 12월 초 아버지와 국경을 넘다 체포된 지 48시간 만에 죽은 재클린이라는 7세 소녀와 이민구치소에 구금 중 제대로 치료를 못 받아 크리스마스 전날 죽은 8세 소년 펠리페의 소식에 많은 이들이 분노했다.

하지만 지금 예산안 책정을 놓고 대립하고 있는 공화, 민주 양당 지도부 중 그 누구도 이들의 억울한 죽음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국경에서의 인권 유린은 지금 미국의 정치 지도자들에게 위기로 느껴지지 않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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