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명절 밥상머리 시사 이슈 해설 / 김민하

12:56

명절이니만큼 식구들이 오순도순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는 장면을 상상하게 된다. 최근에 명절 이야기를 하면 젊은 사람들에게 결혼이나 취업 압박을 주는 행위에 대한 규탄이 가장 먼저 나온다. 그런데 아무래도 정치에 대해 말하고 쓰는 것으로 먹고 사는 사람 입장에선 최근 정치적 사건들에 대해 어떤 대화가 오갈지에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구속되거나 유죄 선고를 받은 전·현직 도지사들에 대한 대화가 많이 오가지 않을까 한다. 대한민국 언론을 대표하는 인물을 둘러싼 이상한 사건 이야기도 화제가 될 것 같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월 2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2019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 추진방안에 대한 발표문을 낭독하고 있다. (사진=기획재정부)

정부가 최근 발표한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대상 사업 선정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갈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전형적인 비판은 이 정부가 과거 대규모 건설투자 등을 통한 경기 부양에 비판적이었으면서 다를 바 없는 일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 사실 자체에 대해서는 여당 국회의원도 제대로 된 반론을 제기하지 못하는 것 같다. 기껏해야 경기 부양이 아니라 균형발전이 목표라는 주장을 하는 정도다. 각 광역지자체에 면제 대상 사업을 신청하라고 한 후 정부가 지역별로 안배를 하는 게 과연 균형발전인지는 의문이다.

이런 말장난보다 좀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예를 들자면 건설투자를 통한 경기 부양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특히 지난해 고용 관련 지표가 저조했던 상황에 비추어 보면, 어떤 형태로든 부양책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어떤’ 건설투자이냐에 있다. 4대강 사업이 비판 받았던 주요 이유 중 하나는 환경보존 등의 가치와 충돌하는 사업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핵심 가치와 충돌하지 않는 건설투자는 불가능할까? 미국의 민주당 지지자들이 ‘녹색뉴딜’을 요구하고 있다는 게 답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이 정부 초기만 해도 생활 SOC와 도시재생사업을 연계하자거나 ‘에코 스마트시티’ 등 생태 혹은 녹색뉴딜을 추진하겠다는 얘기가 나왔다.

그런데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대상으로 결정한 사업에선 이런 철학을 발견하기 어렵다. 각 광역지자체가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신청을 한 사업들은 과거에 계획되어 이미 추진 중인 것들로 대개 철도, 도로, 공항 등 건설이나 산업단지 조성 등이다. 결국 “어떤 건설투자이냐”라는 질문은 사실상 제기될 겨를도 없었다. 고용지표 악화가 정치적으로 부정적 영향과 직결되는 국면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긴급히 재정을 투입하는 방법을 어떻게든 동원한 것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이것은 ‘개혁’을 내세운 정권이 기성의 해법만을 반복하게 되는 전형적 경로라고 평가할 수 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한다. 실패를 예감하는 이런 사건이 시민사회에 중요한 교훈을 남기고 한 발이라도 더 앞으로 나아가는 정치적 실천을 가능케 하는 밑거름이 될 수 있을까? 아마 설날 밥상머리에서 현실을 직시할 수 있을 것 같다. 단언컨대 화기애애한 명절 분위기 속에서 이 주제에 대한 대화는 “왜 우리 지역만 홀대하느냐”는 결론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대구·경북은 기대도 안 했다는 분위기일 거고, 경남은 정권 실세 도지사가 와서 이제야 뭐가 좀 되나 했는데 그만 구속되어버렸다고 할 것이다. 민주평화당은 이미 ‘전북홀대론’을 제기하면서 이 사업을 ‘측근 챙기기’라고 했는데, 김경수 도지사가 구속되었다는 사실이 이런 생각을 변화시키진 못할 것이다. 인천이나 수원 같은 지역들은 ‘수도권 역차별’이라며 난리다.

물론 기쁨에만 차 있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7호선 연장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를 주장하며 삭발까지 했던 경기 포천시 주민들이다. 지역 주민들은 원하던 바가 이뤄져 한껏 기대에 부풀어 있다고 한다. 이곳을 지역구로 하는 자유한국당 김영우 의원은 총선용 선심성 사업이라는 자기 당의 평가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반가운 정부 발표를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감격입니다”라고 했다.

여기서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정치가 오로지 이해관계 문제로만 여겨지는 현실이다. 몇 가지 사건을 거치면서 순식간에 옛날 일(?)이 되어버리고만 손혜원 의원의 ‘목포사랑’ 문제는 어떨까? 손혜원 의원은 목포 적산가옥에 대한 순수한 사랑과 온전한 선의로 투자를 했다고 주장하는데, 그랬으리라 믿는다. 문제는 ‘이해충돌’이란 개념은 이런 것과 별 관계가 없다는 거다. 그런데도 손혜원 의원은 자신이 특별히 이익을 본 게 없다는 주장으로 이런 비판을 피해갔다. 오히려 ‘손해충돌’이 아니냐는 주장까지 할 정도다.

‘이해충돌’이란 게 과연 이해가 어려운 개념일까? 그렇지 않다. 공직자로서 직무가 자신의 주요 이해관계를 좌우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면 그 일은 그냥 안 하는 게 좋다는, 간단한 윤리적 판단을 할 수 있으면 된다. 그럼에도 이 개념이 소홀히 다뤄지는 건 ‘이해충돌’과 같은 팔자 좋은 도덕관념 논쟁보다는 실제 누가 이익을 봤는지의 문제가 더 중요하다고들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사건에선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의 오락가락 태도가 논란이 됐는데, 처음에는 손혜원 의원의 진심을 믿는다고 하다가 ‘투기의 아이콘’이라며 비난을 했고, 그러다 다시 “내가 졌다”는 선언을 했다. 이런 일이 벌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박지원 의원의 태도가 바뀌게 된 시점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따져보면 이유를 알게 된다.

박지원 의원이 ‘투기의 아이콘’ 얘길 꺼낸 시점은 SBS 등 언론이 손혜원 의원의 가족과 측근 등 명의로 된 건물이 20채에 이른다는 보도를 했을 때다. “내가 졌다”고 했을 때는 손혜원 의원이 직접 목포로 내려가 기자회견을 한 이후다.

언론은 실제 이 사건들을 기점으로 목포 주민들의 여론 변화를 중계(?)했다. 이에 따르면 목포 주민들은 애초 완전히 상권이 죽어버린 목포 구도심을 손혜원 의원이 ‘오해를 살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투자를 강행해 살려준다는 점에서 환호했지만, 20채나 되는 건물에 투자했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그건 너무 심하지 않으냐”는 반응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러다 손혜원 의원이 목포에서 기자회견을 하면서 “그래도 믿어보자”고들 하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지역 여론이라는 게 지금 서술한 것처럼 단순하진 않겠지만, 대략 이런 방식으로 요동친 것은 사실에 가까운 것 같다. 어쨌든 이 사건과 관련한 주민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이해충돌 등의 정치윤리가 아니라 과연 근대역사문화공간 사업이 엎어지느냐 지속되느냐 여부였던 걸로 볼 수 있다.

이런 세계관은 앞서 잠시 언급한 안희정, 김경수 지사나 손석희 JTBC 대표이사 사건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날 것이다. 사건의 본질적 문제를 따지는 게 아니라 ‘내로남불’인지 아닌지, 즉 누가 거짓말을 했고 대중을 속였는지에 대해서만 뜨거운 공방이 오가는 것이다. 이게 가장 중요한 이유는 명분을 내세우는 정치인 혹은 어떤 공인은 반드시 이를 핑계로 사익을 채우고 있는데, 이걸 막는 게 ‘정의’의 전부라고 모두가 믿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정치의 본질은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것이고 명분을 핑계로 사익을 채우는 사람은 정의로운 심판의 대상이 돼야 한다. 여기서도 어떤 이해관계인지 또 어떤 정의인지가 중요하다. 이걸 논하기 위해서는 일단 이해관계의 문제만 따지는 정치관으로부터 빠져나와야 한다. 당장 남과 비교한 ‘나’만의 이득과 손해가 아니라 기득권과 약자 사이의 이해관계를 재설정하는 정치를 가능하게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나’는 손해를 볼 수도 있는데, 이걸 설득하는 것은 개혁을 내세우는 정권 역시도 감당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오히려 그보다는 정권이 “누구도 손해 보도록 하지 않겠다”고 하고 있다는 사실이 최근 정부 정책에 대한 연이은 논란을 통해 드러난 게 아닐까 싶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유권자들은 어떤 연대나 상생이 아니라 ‘각자도생’이라는 틀 안에서 자신만이 더 잘 살아남을 수 있는 조건을 누가 만들어주느냐를 기준으로 정치를 판단하게 된다. 그리고 그 결말이 이명박 정권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경험했다. 물론 당장 다음 대선에서 정권이 교체되긴 쉽지 않으리라 생각하지만, 손쉽게 20년, 50년 집권을 말할 때는 아니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