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기고] ② 고령화 시대 가족의 초상 <할머니의 외출> / 김상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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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24 14:38 | 최종 업데이트 2019-02-24 14:39

[편집자주] 김상목 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가 최근 끝난 대구 독립영화관 오오극장 개관 4주년 기획전에서 관람한 대구 감독들의 신작 영화를 본 소감을 보내왔다. 지역 영화계에 대한 총론을 시작으로 각 영화에 대한 리뷰를 순차적으로 공개한다.

① [연재기고] ① 대구 감독들의 신작 영화 3편을 본 후

전작이자 공식 입봉작 <맥북이면 다 되지요>(2016)로 2017년 15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국내 경쟁 대상을 수상한 장병기 감독의 <할머니의 외출>은 ‘대구’라는 지역 특색보다는 보편적인 핵가족과 고령화 시대의 가족 초상을 보여주는데 집중하는 작품이다. 단편으로 기획했으나 1시간짜리 장편으로 완성된 <할머니의 외출>은 그 상영 시간부터 감독의 뚝심을 드러낸다.

대개 장편영화는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이내, 단편영화는 길어도 40분 이내 상영 시간으로 완성된다. 특히 독립영화에서 단편 상영 시간은 이들 작품이 영화제를 통해 소개되고 배급사의 라인업에 포함되기 위해 오히려 장편 상업영화보다 더 엄격하게 자기규제를 거친다. 그런데 <할머니의 외출>은 감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호흡과 스토리를 담아내기 위해 그 틀을 무시한다. 창작의 자유를 위해 ‘잘 풀릴’ 틀을 포기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 ‘독립영화’의 기본정신과 통한다.

▲장병기 감독의 <할머니의 외출>

영화제 프로그래머로서 작품정보를 처음 본 순간 덜컥 걱정이 앞섰다. 단편영화 감독들이 군더더기를 끼워 넣고자 시간이 늘어지면서 오히려 작품의 호흡이 느릿느릿해지고 산만해지는 경우는 숱하다. 그러나 엔딩크레딧이 올라간 순간 그런 걱정은 사라졌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할머니의 외출>은 1시간이 적절한 작품이다. TV 드라마가 빈곤한 연기와 설정을 만회하기 위해 과도하게 집어넣는 배경음악이나 화면효과는 철저히 배제된다. 영화가 현실을 반영하고 때로는 압축적으로 극적인 장면을 넣는 기본에 매우 충실한 구성이다. 그런 감독의 초지일관 고집으로 본 작품은 마치 우리 주변의 이야기를 눈으로 지켜보는 기분을 조성한다.

치매에 걸린 노모를 부양하는 한부모 가족의 이야기가 펼쳐지고, 남매 중 한 명도 이른 죽음을 맞는다. 어머니를, 할머니를 케어하는데 지쳐버린, 이젠 아버지와 딸로 단출해진 가족은 끝내 노인요양원으로 할머니를 보내려 한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 남자배우의 지친 외모와 성실한 태도는 아직도 버티고 있는 한국사회의 가족주의 의무감을 사수한다. 고등학생 딸 또한 할머니의 약을 챙기고 걱정하는 게 평균치 이상이다. 천편일률적으로 비슷한 조건의 가족 묘사와 달리 성실하고 기본 도리를 다하는 가족이 등장하지만, 현실의 변화된 사회상은 그저 착하고 묵묵하게만 이 가족들을 묘사하지 않는다. 결국 지치고, 주변 권유에 귀를 기울이게 된 가족은 요양원에 할머니를 보내게 된다. 해방감을 숨기지만 부녀는 작은 일탈을 시작하고 열린 결말로 마무리된다.

▲장병기 감독

<할머니의 외출>은 억지 해피엔딩이나 디스토피아적 결말이 아닌, 할 만큼 하지만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이나 압도적인 주변 환경에 패배하고 마는 주인공과 가족의 이야기이다. 프랑스 19세기 자연주의 문학을 연상시키는 스토리텔링과 오 헨리의 단편소설에서 자주 쓰이는 트위스트 엔딩이 단편이라면 길고 장편으로는 좀 모자란 상영 시간 내에서 효과적으로 결합된다. 다소 심심해 보이는 초반부와 중반부이지만 감독은 몇 가지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쌓아 올리면서 관객과 지적 유희를 즐기려 한다. 대사나 극적 사건으로 전개를 직접적으로 끌고 가기보다는 관객 각자의 체험과 영화 속 풍경이 어우러지면서 생각을 자아내게 한다. 어찌 보면 극단적인 암전은 뚝뚝 끊어지는 부자연스러운 효과를 내지만, 단막극 연극에서 조명이 사라졌을 때 느끼는 기분을 연상케 한다.

<할머니의 외출>은 경북 고령을 배경으로 했던 전작 <맥북이면 다 되지요>에서 관객이 함정에 빠졌을, 훈훈한 가족 드라마의 형식과 감독의 세계관은 사실 별로 접점이 없음을 확인시킨다. 이미 가족의 개념은 차가운 현대자본주의 사회에서 실리적인 부분에 주도권이 넘어갔고, 효자 효녀로 칭송받는 가족의 행태도 상당 부분 사회적 위신에 긴박 되어 있음을 이 작품은 명백하게 주장하고 있다. 주인공이 선인이고 악인이고 간에 사회적 조건에 종속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주장하는 감독의 태도는 (영화에 대한 찬반과 호불호는 논외로 한다면) 영화라는 매체가 시대상을 기록하고 극적으로 재현하는데 유효적절한 방식으로 증명되었다고 믿는다. <할머니의 외출>은 굳이 대구영화라는 수식어를 붙이지 않더라도 2019년 한국의 가족문화를 준거하는 기록으로 유용하게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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