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먹칠] ‘동물국회’ 보도가 숨기는 진실 / 노재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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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10 09:52 | 최종 업데이트 2019-05-10 09:52

국회선진화법 제정 이후 7년 만에 몸싸움 국회가 재현됐다. 발의된 법안이 무한정 표류하는 것을 막고 신속하게 처리하기 위한 제도인 패스트트랙이 발단이다. 여야는 선거제 개혁, 공수처 설치,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할지를 두고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그 과정에서 국회는 말 그대로 ‘난장판’이 됐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국회를 점거하고 물리적 폭력을 휘둘렀으며, 바른미래당 의원이 7시간 동안 감금되어 창틈으로 회견을 하는 이례적인 사건도 발생했다. 상황이 고조됨에 따라 언론은 여야의 충돌에 관련한 보도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지난달 29, 30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안, 검경수사권 조정법, 선거제도 개혁법안 패스트트랙 지정 후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회의장 앞 복도에 누워 “원천무효”를 주장하고 있다. (사진=남소연 오마이뉴스 기자)

대부분의 언론이 여야 충돌 관련 보도에 붙인 제목은 ‘동물국회’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국회를 의미하는 ‘식물국회’와 반대로 폭력과 난투극이 만연한 국회를 비유한 말이다. 나아가 보도 내용은 ‘광기의 국회’, ‘아수라장’, ‘전쟁터’ 등 물리적 충돌을 부각하는 자극적인 표현으로 채워졌다. 민주언론시민연합에 따르면 실제로 어수선한 국회 상황을 부각해 단순 중계한 보도가 78%인 반면, 상황을 정확하게 평가하고 해설하는 보도는 14%에 그쳤다. 이 같은 보도는 잘잘못을 가릴 것 없이 여야 모두를 싸잡아 ‘동등하게 비판받아야 할 대상’으로 만들었다.

‘동물국회’ 보도는 마치 이성적이지 못한 당사자들 간의 싸움을 구경하듯, 문제를 단순히 여야의 대결 구도로 축소했다. 사건의 쟁점은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국회 내 무차별적인 폭력 행사와 기물 파손, 사무처 직원들의 공무 집행과 회의 방해, 국회 불법 점거 및 의안 접수 저지 등 국회선진화법을 일방적으로 위반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언론은 정파적 중립을 명분으로 야당에 대응하는 여당의 ‘맞불 놓기’식 보도를 통해 자유한국당의 위법행위를 교묘하게 가렸다. 객관성을 핑계로 양비론을 일삼고 자유한국당의 범법행위를 여야 난투극으로 포장함으로써 특정 정파를 옹호하는 모양새다. 언론의 기계적 중립은 오히려 사안의 맥락을 희석시켜 진실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런 방식의 언론 보도는 시민 사회의 정치혐오를 조장한다. 갈등의 외피만 설명하는 것에 그쳐 사안의 본질을 꿰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번 패스트트랙 역시 각 정당 대표나 당원들의 발언을 그대로 옮겨 보도하는 것에 그치는 이른바 따옴표 저널리즘이 보도를 장악했다. 그들의 발언이 타당한지 판단할 수 있는 객관적인 준거를 제시하거나, 법안 자체가 나의 삶에 어떻게 직결되는지 상세하게 보도하는 것은 뒷전이었다. 결국 패스트트랙을 각 당의 상황을 나열한 단순 중계로 접한 시민들은 법안에 대한 불만과 신뢰할 수 없는 국회에 대한 분노를 느낄 수밖에 없다.

‘동물국회’라는 이름 아래 패스트트랙은 하나의 블랙코미디로 전락했다. 이번 사안에서 보도되었어야 할 것은 여야의 표면적인 대치 상황이 아니다. 상황의 책임 주체와 당사자들의 행위에 대한 적법성과 정당성을 제대로 밝히고 그에 대한 시민의 판단을 담아야 했다. 더 이상 시민사회가 정치적 사안을 그들의 삶과 동떨어진 블랙코미디로 소비하지 않으려면 언론은 기계적 중립에서 벗어나야 한다. 구체적이고 심층적인 질문을 던져 국민들이 정치적 판단에 동참하고 올바르게 비판할 수 있도록 그 이면의 진실을 보여줘야 할 때다. 언론은 언제까지 지나친 균형 감각을 발휘할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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