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수경 칼럼] ‘스톤월 항쟁’ 50년, 뉴욕의 ‘퀴어해방 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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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7 14:48 | 최종 업데이트 2019-06-17 14:48

스톤월 항쟁이 올해로 50주년을 맞았다. 1969년 6월 28일, 뉴욕시 그리니치 빌리지의 스톤월 인(Stonewall Inn)이라는 게이바에서 경찰 폭력에 맞서 일어난 자생적인 투쟁은 성수소자 운동의 분수령이 되었다. (이전=[남수경 칼럼] 스톤월 항쟁의 교훈, ‘빼앗긴 권리’ 앞에 기다림은 미학이 아니다)

뉴욕시에서는 6월 한 달 내내 스톤월 항쟁 50주년을 기념하는 각종 공연, 전시, 강연 등 기념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정점은 6월 30일에 열릴 프라이드 행진이 될 것이다. 올해 뉴욕 프라이드 행진에는 스톤월 항쟁 50주년을 맞아 예년보다 두 배 이상 많은 4백만 명이 모일 것으로 예상된다. 역대 최대 규모의 행진이 될 것이다.

스톤월 항쟁 1주년을 기념해 1970년에 시작된 프라이드 행진은 세월이 흐르면서 이제 소수자만의 시위가 아닌 주류 사회의 행사로 자리 잡은 듯하다. 유권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으려는 정치인들도 함께 행진을 하고, 유명 연예인들의 공연도 진행된다. 미국 주요 공영 방송사 중 하나인 ABC가 실황 중계를 할 정도다. 올해 20주년을 맞은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과 대조적이다.

프라이드 행진이 주류 사회에 자리 잡았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것 중 하나는 기업 후원이다. 세계적인 기업들이 앞을 다투어 스폰서로 참여한다. 작년의 경우, 800개에 달하는 기업이 뉴욕 프라이드 행진의 스폰서로 참여했다. 반면, 행진에 참여하는 풀뿌리 단체 수는 주최 측이 200개로 제한해서 원성을 사기도 했다. 프라이드 행진이 지나치게 상업화 되면서 원래 스톤월 항쟁의 정신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 지 오래됐다.

그래서 스톤월 항쟁 50주년인 올해 뉴욕에서는 주류 행진과 다른 대안 행진이 진행될 예정이다. 기업과 경찰의 참여를 배제한 ‘퀴어해방 행진’이다. 스톤월 항쟁의 저항 정신을 이어가자는 의미에서 이 대안 행진의 조직자들은 스스로의 이름을 ‘프라이드 되찾기 연합(Reclaim Pride Coalition)’으로 지었다.

이들은 기업이 성소수자 권리를 지지하는 소위 ‘핑크세탁(pink washing)’을 통해 진보적인 이미지를 얻으려고 하는 것은 성소수자들의 투쟁을 지지해서라기보다는 구매력이 있는 소비자로서 성소수자와 그 앨라이(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사람)에게 어필 하려는 것이라고 본다. 이것은 오늘날 대다수 성소수자들이 여전히 직면하고 있는 차별과 억압적인 현실을 바꾸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세계적인 거대 방위산업체인 록히드 마틴이나 노스롭 그루먼도 프라이드 행진을 후원하는데, 이 기업들은 성소수자와 여성의 권리가 거의 바닥 수준인 사우디아라비아에 무기를 판매해 막대한 이익을 얻고 있다. 사우디는 동성애자를 사형에 처하는 야만적인 국가 중 하나다. 무기를 팔아 이윤을 남기는 한 록히드 마틴이나 노스롭 그루먼에게 사우디 정부의 성소수자 탄압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런 기업들의 피묻은 돈이 프라이드 행진에 후원되는 것은 스톤월 정신과 전혀 맞지 않는 것이다.

또한 퀴어해방 행진은 기업 뿐 아니라 경찰의 참여를 배제하는 행진이 될 것이다. 그동안 뉴욕경찰은 제복을 입고 프라이드 행진에 참여해 왔다. 그런데 스톤월 항쟁은 성소수자들이 다름 아닌 바로 이들 경찰에 맞서 싸운 것이다. 당시 경찰은 게이바를 정기적으로 급습해 성소수자들을 마구잡이로 체포했다.

스톤월 인에서 경찰에 맞서 싸운 항쟁의 주역들은 애플 CEO 팀 쿡이나 CNN의 간판 앵커 앤더슨 쿠퍼로 대표되는 성공한 전문직 백인 남성이 아니라, 유색인종 성소수자, 트랜스젠더, 드랙퀸(여장남자) 등이었다. 성소수자 중에서도 가장 소외되고 억눌려 있던 이들을 끊임없이 괴롭히던 경찰의 폭력에 맞서 일어난 것이 스톤월 항쟁이었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지금, 동성 결혼이 합법화 되고, 사회 곳곳에서 활약하는 성소수자들의 존재가 점점 더 가시화 되는 등 세상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만, 성소수자의 완전한 권리와 해방을 위한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대다수 보통 성소수자의 삶은 차별로 인한 빈곤, 소외와 억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유색인종 성소수자와 트랜스젠더에 대한 경찰의 억압과 폭력은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2015년 트랜스젠더 2만 7천명 이상을 대상으로 행해진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경찰과 마주친 트랜스젠더 성소수자 중 58%가 경찰이 체포를 위협 하면서 성관계를 강요하거나, 체포된 트랜스젠더 여성을 구치소의 남성 방에 수용하는 등의 경찰 폭력을 경험 했다고 답했다.

지난 6일, 뉴욕 경찰은 50년 만에 처음으로 경찰의 ‘스톤월 인 급습’에 대해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이라며 공식 사과를 했다. 당시 경찰의 행동이 성소수자에 대해 차별적이고 억압적인 명백한 잘못이었음을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경찰의 사과가 빈껍데기 말 뿐이라는 것이 드러나는 데 채 하루가 걸리지 않았다. 경찰 사과 후 바로 다음 날, 뉴욕의 악명 높은 라이커스 아일랜드 구치소에서 한 트랜스젠더 여성이 숨진 채로 발견되었다.

희생자는 레이린 폴랑코(Layleen Polanco)라는 이름의 유색인종 트랜스젠더 여성이다. 그녀는 가벼운 경범죄로 체포 되었지만, 500 달러의 보석금을 구하지 못해 구치소에 갇혀 있다가 두 달 만에 독방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아직 정확한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녀의 경우처럼 수많은 유색인종 트랜스젠더 여성들이 경찰에 체포 되어 가혹 행위를 당하거나, 적절한 의료 조치를 받지 못하고 방치되는 경우가 흔하다.

이런 상황에서 경찰이 폭력의 상징인 제복을 입고 권총을 허리에 찬 채 프라이드 행진에 함께 하는 것은 수많은 성소수자에게 자긍심과 해방감이 아닌 수치심과 공포를 느끼게 한다. 특히 지금 미국에서 트럼프 정부의 성소수자 공격에 직면해 역사의 시계를 되돌리지 않으려는 투쟁은 더 절실해졌다. 그래서 50년 전 스톤월 항쟁의 저항 정신을 되찾으려는 움직임이 더욱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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