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선우] 상처는 저절로 치유되지 않는다, ‘돈 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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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선우(映畫選祐)’는 손선우 전 영남일보 기자가 읽은 영화 속 세상 이야기입니다. 스포일러보다는 영화 속 이야기를 뽑아내서 독자들의 영화 감상에 도움을 주고자 합니다.]

<돈 워리(Don’t Worry)>는 미국 포틀랜드의 만화가 존 캘러핸(1951~2010년)의 실화를 다룬 영화다. 원제는 <Don’t Worry, He Won’t Get Far on Foot(걱정 마요, 걸어서는 멀리 못 갈 거예요)>이다. 존 캘러핸의 자서전 제목을 그대로 따왔다.

▲영화 ‘Don`t worry’ 포스터

연출은 제70회 아카데미 9개 상을 수상한 <굿 윌 헌팅(Good Will Hunting, 1997년)>의 구스 반 산트 감독이 맡았다. 사실 구스 반 산트 감독은 20년 전 로빈 윌리엄스와 이 영화를 준비했다. 원작이 마음에 든 로빈 윌리엄스가 판권을 확보했으나, 2010년 존 캘러핸이 사망하고, 2014년 로빈 윌리엄스가 세상을 떠나면서 무산됐다. 하지만 구스 반 산트 감독은 포기하지 않고 호아킨 피닉스로 주인공을 바꿔 다시 각본을 쓰고 결국 스크린에 옮겼다. 이 때문인지 여러모로 <굿 윌 헌팅>을 닮았다.

영화는 심각한 알코올중독에 교통사고로 전신마비까지 되면서 절망하다가 새 삶을 살기 시작한 존 캘러핸의 인생을 그렸다. 한 인간이 지나온 깊은 슬픔의 격류에 애써 저항하지 않고 함께 휘말려든다. 그를 옹호하거나 동정하지는 않는다. 좌절을 극복해 나가는 존 캘러핸을 비춘다.

자신의 재능을 발견해 발전하는 것은 대단한 일이지만, 이 모든 일이 성자처럼 떠받들 것도 없다는 듯 담담하게 그의 생애를 화면에 담는다. 존 캘러핸의 만화도 완전히 옹호하지도 않고 비판하지도 않는다. 중간자의 입장에서 지켜본다. 덕분에 존 캘러핸이 지닌 감정의 표현을 누구나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다.

창작의 과정을 무게 있게 다루지는 않는다. 존 캘러핸이 자조모임을 통해 조금씩 알코올중독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중점적으로 지켜본다. 존이 깨달음을 얻는 순간도 극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상처를 극복하는 과정이 번개 같은 깨달음처럼 한순간에 이뤄지는 게 아니라 서서히, 비연속적으로 진행된다는 것을 알려준다. 어느 날은 극복한 것 같다가도 또 어느 날은 그 상처가 더 아프게 다가오기도 한다는 것도 보여준다.

영화는 25일 만에 촬영을 마쳤다고 한다. 짧은 기간 내에 완성된 영화이지만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는 짙고 생생하다. 자조모임의 리더이자 존 캘러핸의 멘토 도니 역을 맡은 조나 힐의 연기 역시 감동적이다.

▲영화 ‘Don`t worry’ 의 한 장면

영화에서 가장 뚜렷한 여운을 남기는 건 절망 속에서도 자신을 긍정하고 희망을 찾길 바라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건넨다는 점이다. 자조모임에서 멘토 도니는 구구절절한 사연을 늘어놓는 사람들을 무조건 위로하지 않는다. 때론 단호하고 때론 다정한 말을 건넨다.

자기 연민에서 빠져나와 객관적으로 자신을 직시하도록 이끈다. 이를 통해 자칫 딱딱한 교훈 위주로 전락할 수 있는 영화에 생명력이 부여된다. <굿 윌 헌팅>에서는 ‘네 탓이 아니라’고 위로했다면, <돈 워리>는 ‘네 탓도 인정하고 스스로를 용서하라’고 토닥인다.

영화는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행하다는 자기 연민에 빠진 이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도니의 명대사를 전한다.

“저절로 상처가 치유되지는 않아요. 매일 그 상처들과 싸워야 해요. 어떤 고통은 영영 사라지지 않고 어떤 수치는 영원히 남아 있어요. 그걸 이겨내지 않으면 당신이 죽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