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먹칠] 깃발을 내려야 하는 이유 / 김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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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9 09:22 | 최종 업데이트 2019-08-14 09:47

서울 중구가 때아닌 이슈의 중심에 섰다.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한 것에 대한 항의의 뜻으로 '노 재팬'이 쓰인 배너를 1,100개를 배부하고 설치하기로 한 것이다. 시민들 사이에서 '명동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이를 보고 무엇이라고 생각하겠느냐', '불매운동은 국민들이 알아서 할 일이지 지자체가 상관할 일이 아니다' 등의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서양호 중구청장은 이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왜 구청은 나서면 안 되나'라는 글을 올렸다 삭제하고, '불필요한 오해를 줄 수 있다는 우려와 비판, 겸허히 받아들인다'는 글을 다시 올렸다. 배너 설치도 철회했다.

▲서울 중구청이 거리에 내걸었던 '노 재팬' 배너. (사진=서울 중구)

불매운동은 왜 구청이 끼어들 일이 아닐까? 서 구청장도 그런 의문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는 이미 내린 글에서 '캠페인과 운동에 정치인과 지방정부는 빠져야 하고 순수한 민간만 필요하다는 주장에 동의하기 어렵다'는 표현을 썼다. 한 일 무역전쟁을 맞아 기술자립을 위해 온갖 국가적 정책이 쏟아지는 상황이다. '극일', '지지 않는다' 같은 구호도 정치권에서 연일 나오고 있다. 이미 '관'이 나설 만큼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배너 하나 거는 게 큰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어차피 똑같은 '노 재팬' 아닌가.

캠페인은 기본적으로 '어떤 효과'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특정한 여론을 한 번 더 환기하는 역할을 한다. 정부의 '극일'은 어떤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캠페인인가. 일정 부분 일본에 대한 반감을 환기할 수 있다. 하지만 '지지 않는다, 뛰어넘는다'는 표현에서 볼 수 있듯 기본적으로 이 캠페인은 무역전쟁에 처한 우리의 현실을 먼저 상기시킨다. '일본 의존적이었던 일부 기술 품목에 대해 대책을 마련해 이 위험을 극복할 테니, 모두 힘내보자'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이 캠페인의 기본이다.

지자체가 '노 재팬'이라는 깃발을 거는 것은 '반일 감정'을 환기하긴 하지만 '효과' 측면에서 부정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많았다. 서 구청장은 지운 글에서 '전 세계에 일본의 부당함과 함께 이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우리의 강한 의지'를 보여주겠다고 했다. '노 재팬' 깃발이 환기하고 싶은 것은 결국 내·외국인 가리지 않는 '반일 감정'인 셈이다. '일본에 대한 부당함을 알리는' 정책은 없고, 구체적인 행동도 이미 민간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불매 운동을 강조하는 데 그쳤다. 이렇게 되면 남는 것은 일본 정부와 일본 국민을 뭉뚱그려 미워하는 감정뿐이다. 무엇을 하더라도 반일 감정을 한 번 더 생각하게 되는 것이 효과라면 효과다. 그것은 결국 문제 해결보다는 국가주의적 관점에서 일반 시민들의 생활이나 가치를 통제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우리는 그걸 흔히 파시즘이라고 부른다.

‘우리끼리 알아서 잘하고 있는데 왜 관이 끼어드나’라는 비판은 결국 파시즘에 대한 경계로 볼 수 있다. 이 경계를 실수를 저지른 지자체를 비판하는 데 쓰는 것을 넘어서, 내부의 파시즘을 경계하는 데도 쓰면 좋을 것이다. 자성을 위한 자료는 곳곳에 널려 있다. 일본 정부의 배한 정책 때문에 무너져가는 일본의 지방 경제에 관한 기사가 거의 매일 나오고 있다. 이것을 '고소하다', '불매운동 효과가 이 정도다' 식의 사이다 서사로 소비할 것이 아니라, 저들이 '국가를 위해서'라는 논리 때문에 국민을 어떻게 희생시키는지 봐야 한다. 반면교사를 통해 우리 안의 희생을 최소화하고, 일본의 경제 공격에 대해서 기술적으로 방어하는 것. 그것이 이번 한·일 무역전쟁에서 피해를 최소화할 방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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