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수경 칼럼] 나중은 결코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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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주=문재인 대통령은 9일 오전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임명을 재가했다. 이 글은 임명 전인 후보자였던 시기를 기준으로 작성했다.]

소위 “이성애자 프라이드(Straight Pride)” 행진이 8월 31일 미국 보스턴에서 열렸다. 이성애야말로 신의 섭리와 인간 본성에 맞는다고 주장하면서, “이성애자는 위대하다”라는 모토 아래 열린 이 행진은 실상 극우세력의 성소수자 혐오선동 행진이었다.

이성애자 프라이드 행진이 혐오선동인 이유는 다음의 비유를 생각하면 분명해진다. 흑인민권운동과 아래로부터의 대중투쟁의 압력으로 인종차별을 ‘합법적’으로 용인해오던 인종차별법들이 철폐되고 있는 와중에 백인이 ‘억압당하는 다수’라고 주장하면서 위대한 백인의 힘을 한데 모으자는 행진이 열리는 것을 상상해 보자. 실제 역사에서 시대의 흐름을 되돌리려는 백인우월주의자들의 반동적인 시위는 공공연히 있었다. 흰 두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횃불을 들고 행진하던 악명 높은 KKK단의 행진은 그 자체가 소수인종에게 공포를 조장하는 테러였다.

▲8월 31일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이성애자 프라이드 행진. [사진=WCVB 유튜브 갈무리]

마찬가지로 소위 ‘이성애자 프라이드’ 행진은 단순히 자신들의 성적 취향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성애만이 ‘정상’임을 과시하고, 이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모든 이들을 혐오하는 테러이다.

이성애자 프라이드 행진은 당연히 백인우월주의자들에 의해 조직되었는데, 행사 당일 연사로 나온 마일로 이아노풀로스의 경우 이미 지독한 혐오 발언으로 페이스북과 트위터에서 퇴출당한 바 있다. 그는 “미국을 다시 이성애자 나라로 만들자(Make America Straight Again)”라고 쓰인 모자를 쓰고 나와서, 이성애자들에게 적대적인 현대 사회에서 공개적으로 이성애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이야말로 용감한 사람들이라고 칭찬했다. 이성애자들이 ‘억압받는 다수’라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이성애 혐오’에 맞서야 한다고 선동했다.

하지만 현실은 이성애자라는 이유로 그 누구도 직장에서 해고되고, 집을 얻거나 의료서비스를 이용하는데 차별을 당하고, 심지어 린치와 살해까지 당하는 혐오범죄의 피해자가 되지 않는다. 즉, 성소수자 프라이드 행진과 이성애자 프라이드 행진은 그 정치적 의미가 근본적으로 다르다.

보스턴뿐 아니라 다른 주에서 원정 온 200여 명 남짓한 참가자들은 성조기와 이스라엘기를 흔들며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는 트럼프주의의 대표적 구호를 비롯해 반이민과 난민 혐오를 조장하는 “장벽을 세우자” 그리고 인종차별적인 경찰폭력에 반대하는 운동인 “흑인의 생명이 소중하다”를 조롱하는 “경찰의 생명이 중요하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힘을 과시하려고 했다. 다행히도 그보다 몇 배나 더 많은 반대 시위대가 거리로 나와 성소수자 혐오를 조장하는 사람들은 설 자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보스턴은 미국에서 대표적으로 성소수자에게 우호적인 도시 중의 하나다. 보스턴에서 행사가 열리리라는 것이 알려진 후 지난 몇 달 동안 행진에 반대하는 여론이 거세게 일어났다. 그런데도 보스턴 시장은 혐오세력의 ‘표현의 자유’도 보호해야 한다면서 ‘이성애자 프라이드’ 행진이 보스턴 시내 한복판에서 열리는 것을 허용했다.

뿐만 아니라 행진 당일 경찰은 혐오세력을 보호하면서 도리어 반대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을 36명이나 체포했다. 경찰은 이성애자 프라이드 행진에 대해 항의하는 시위대를 향해 페퍼 스프레이를 발사하며 폭력을 행사하는 등 과잉 진압을 펼쳤다. 이 또한 그동안 경찰이 신나치 등 극우집회가 열릴 때마다 일관적으로 보여준 모습으로 새삼스럽지 않았다.

이례적인 일은 바로 며칠 전 법정에서 벌어졌다. 담당 검사가 경찰이 무리하게 시위대를 체포했다면서 이들에 대한 기소를 철회하겠다고 했지만, 판사가 이를 허용하지 않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판사는 이성애자 프라이드 행진에 참가한 혐오세력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당한 ‘피해자’라면서 검사의 기소 철회 의견을 묵살했다. 심지어 법 조항을 지적하면서 판사의 월권행위를 지적하는 변호인을 법정에서 체포하는 무리수를 두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하는 세력들은 비슷한 논리를 내세운다. 예를 들면, 성소수자 보호를 포함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동성애를 반대할 자유를 박탈한다는 것이다. 지난 2006년 제정 논의가 시작된 이래 일부 보수 기독교 세력이 앞장서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면서 내세우는 논리가 바로 동성애를 ‘반대할 권리’다. 차별금지법은 그런 자신들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며칠 전 온 국민의 관심 속에 열린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를 지켜보다가,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소리를 들었다. 질의에 나선 박지원 의원이 기독교계의 가장 큰 관심 사안이라 “몇 분의 목사님들이 문의를 해왔다”며 조 후보자에게 동성애, 동성혼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대한민국 헌법은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고 있다. 기독교계 몇 명 목사의 관심사가 주목을 받아야 할 이유가 전혀 없음에도 박지원 의원은 동성애 반대 여부가 법무장관 자격 심사의 중요한 기준인 양 일부 보수적 기독교 인사들의 입장을 대변했다.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 청문회에서 박지원 의원은 동성애, 동성혼에 대해 질문했다. [사진=YTN 영상 갈무리]

하지만 이보다 더 실망스러운건 조 후보자의 대응이었다. 그는 “동성혼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건 우리나라 상황에서 이르다”고 답했다. 이어진 질문에선 군형법상의 동성애자 군인 처벌 조항에 대해 “근무 중 동성애는 보다 강한 제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고,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대해서도 “현실을 고려할 때 개별적 차별금지법을 차례차례 확정해 궁극적으로 차별금지법을 도입하는 방안이 맞다”고 했다. 성소수자를 포함한 모든 차별에 반대하는 법을 만들기는 어려우니 단계론적으로 접근을 하자는 말인데, 결국은 성소수자들에게 아직은 시기상조이니 좀 더 기다리라는 주문을 한 것이다.

그동안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진보적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지금 여러 논란 속에서도 소위 사법개혁을 단행할 유일한 인물이라고 추켜세워지는 조국 후보자조차 그동안 자신이 주장해 온 것과는 실제로 다른 인권 의식을 지녔다는 게 드러났다.

단적으로 불과 8년 전인 2011년 발표한 논문에서 당시 조국 교수는 합의에 의한 동성 간 성행위를 처벌하는 군형법 제92조의5(현재의 92조의 6)에 대해 비판하면서 “동성애를 변태 또는 비정상으로 파악하고 차별하는 ‘호모포비아’가 군형법에 반영돼 있다”는 올바른 주장을 했었다. 그러면서 “한국 인권 수준의 후진성이 세계에 알려지는 일이 계속 발생할 것”이라고 개탄했다. 마찬가지로 조국 교수는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하는 입장을 표명해 왔었다.

몇 년 사이 말이 바뀐 것이 그가 정치 권력의 핵심에 올라간 것과 궤를 같이하고, 진보적 지식인 조국과 대한민국 권력의 핵심에 있는 지금의 조국은 다를 수밖에 없다고 하는 이도 있겠다. 소위 현실 정치는 이상과 다르다는 것이다. 사상 전향을 했느냐는 도발적인 질문에 대해서는 “전향이라는 단어 자체가 갖고 있는 낙인 효과 때문”에 답을 하지 않는 것이 맞다고 당당히 받아친 그도 법무장관이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보수 기독교계의 눈치를 봐야 된다고 생각한 것일까. 의도가 어떠하든 간에 현실적인 타협을 위해서는 성소수자들의 인권 따위는 쉽게 던져버릴 수 있다고 생각한 것만은 분명하다.

믿었던 정치인이 결정적 순간에 성소수자들을 2등 시민 취급하고 배반한 것은 불행하게도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대통령 선거 당시인 2017년 4월에 열린 대통령 후보자 티브이 토론회에서 홍준표 후보가 문재인 후보에게 동성애를 찬성하느냐고 물었다. 문 후보는 이 말도 안 되는 질문에 동성애에 반대하고, 동성혼 합법화에 찬성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소위 인권변호사 출신의 유력 대통령 후보의 입에서 나올 말이 아니었다. 당연히 이에 대한 항의가 있었다. 다음 날 문 후보의 기자회견장에서 성소수자들이 이 발언에 항의하는 기습시위를 벌였다. 당시 문 후보 지지자들은 정권 교체가 우선이니 성소수자 인권 문제는 ‘나중에’ 얘기하자고 했다. 하지만 그 나중은 아직도 오지 않았다. 촛불 정부가 들어서 2년 반이 지난 지금도 ‘아직은 이르다, 나중에 하자’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다.

성소수자단체인 ‘트랜스해방전선’은 온 국민이 지켜보는 청문회에서 성소수자 혐오에 동조한 조 후보자를 비판하면서, 조 후보자의 말을 빌려 그에게 전했다. “후보자에 대한 호불호는 법적 사안 아니고 장관은 아직 이르다”라고. 나도 조국 후보가 2011년 논문에서 쓴 말을 그대로 빌려서 전해주고 싶다. 이런 식이면 촛불 정권이 사법개혁과 적폐청산의 적임자라고 내세우는 법무부 장관 후보의 인권 감수성과 한국 인권 수준의 후진성이 세계에 알려지는 일이 계속 발생할 것이라고.

마르크스는 노동계급에게 조국이 없다고 했다. 대한민국의 성소수자에게도 ‘조국’은 없다. 기다리라고,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사실 알고 있다. 그들이 빈말로 하는 나중은 결코 오지 않는다는 걸. 그래서 가만히 앉아서 정치인 나리들이 나서 줄 때까지 기다릴 수 없다. ‘트랜스해방전선’의 말처럼 성소수자의 인권은 “누군가에겐 삶이고 생존”이다. 따라서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성소수자의 삶과 생존을 계속 나중으로 미룰 수는 없다. 지금, 당장 바꾸지 않으면, 나중은 결코 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