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상위 10%의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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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30 11:50 | 최종 업데이트 2019-09-30 11:50

지난주 서초동에서 열린 촛불집회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검찰개혁’과 ‘조국수호’, 그리고 ‘문재인을 지키자’는 구호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집회가 전하는 메시지는 명확했다. 그러나 이 메시지가 명확할수록 조국 장관 임명이 촉발한 문제들은 점점 더 아이러니로 빠져들고 있다는 생각이다.

▲[사진=오마이뉴스]

28일 촛불집회에서 등장한 주장은 근본적인 모순을 내포하고 있는데, 정치검찰을 규탄하면서 정작 그 정치검찰의 수장 격인 검찰총장을 해임하라는 요구가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런 모순의 일단을 보여주는 증상이다. 조국 장관이든, 윤석열 총장이든, 결국 임명권자는 대통령이다. ‘문재인을 지키자’는 구호가 암시하듯, 지난 촛불집회는 ‘대통령과 검찰’이라는 대결구도를 전제하고 있었다. ‘정치검찰’이 ‘국민의 대통령’을 위협한다는 설정인 셈이다.

그러나 조금만 뜯어봐도 이런 설정 자체가 과장되어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최대한 양보해서 이 전제를 받아들이더라도, 임명권을 쥐고 있는 대통령이 모든 문제를 풀 수 있는 열쇠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토록 검찰개혁의 의지가 강하고 윤 총장이 걸림돌이라고 생각한다면, 대통령이 직접 해임하면 될 일이다. 촛불집회에 모인 참가자들이 검찰개혁만을 외칠 뿐, 대통령에게 해임할 것을 직접적으로 요구하지 못한 까닭은 무엇일까. 당연히 정치적 계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이 촛불집회가 검찰개혁을 요구하는 ‘순수한 국민의 열망’이라고 강변하는 것은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다. 명백하게 검찰개혁보다 대통령의 부담을 우선순위에 놓는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또한, 100만이든 200만이든, 이 촛불의 스펙터클은 한국 사회의 파워엘리트라고 할 수 있는 검찰조직에 대한 경고를 보여주는 것이긴 하지만, 조국 장관 임명이 불러온 계급과 세대 격차의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그 문제제기 자체를 봉합하려는 시도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애초에 이 문제는 뚜껑을 열어보니 말과 행동이 달랐던 ‘유명인’ 조국 장관의 모순에서 시작한 것이고, 적법하다고 주장했던 내용들이 수사 과정을 통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혹으로 번지면서 커진 것이다.

말하자면, 이 문제의 기원은 문재인 정부가 표방해온 정의와 공정이라는 규범과 계급현실 사이에 가로놓인 괴리이다. 그럼에도 지난 서초동 촛불집회는 이 문제에 그렇게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이 역시 지금 여권의 입장에서 정치적 부담이었기에 관심 밖이었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28일 촛불집회를 ‘직접 민주주의의 발현’이라고 주장하는 일부의 입장에 크게 동의하기 어렵다. 물론 그럼에도, 보수세력이 주장하는 것처럼, 동원된 지지자 집단이라고 규정하는 것도 잘못된 것이다. 특정 집단이 동원했다기보다, 소셜미디어를 매개로 자발적으로 모인 집회였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러나 자발성에 기반을 두었을 뿐만 아니라, 분명 검찰이라는 국가권력에 대항한다는 의제를 설정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이런 행동이 국민 전체의 이름으로 대의제 자체의 해체를 요구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역설적으로 지금 상태의 지속과 강화를 요청한다는 점에서 이번 집회는 ‘체제수호’의 성격이 강했다고 볼 수 있다. 조국 장관 논란의 근본에 놓여 있는 계급과 세대 격차의 문제가 크게 부각되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애초에 무엇인가를 지키기 위해 모였으니, 지금 체제에 균열을 가하는 문제들은 주변으로 밀려나거나 은폐될 수밖에 없다.

28일 촛불집회가 지키고자 했던 체제는 무엇일까. 나는 이 질문이 본질적인 사안을 건드린다고 본다. 2016년 촛불을 통해 만들어진 ‘탄핵 이후 체제’라고 말한다면 반만 맞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이 체제는 ‘87체제’라고 명명해온 민주화 이후의 대의민주주의 제도이다. 한마디로 이 대의민주주의 제도가 겉으로 표방하는 것과 달리 모든 국민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상위 10%만을 위한 민주주의라는 사실이 폭로된 것이 이번 사태의 본질이다.

보수세력뿐만 아니라 진보세력이라고 자처했던 이들마저 이 ‘과두제 민주주의’의 수혜자들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보수양당구도에 각을 세우면서 청년세대의 입장을 대변한다던 정의당마저 이 단합구조를 과감하게 비판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한국의 기성 정치는 말 그대로 기득권 집단의 논공행상에 지나지 않음을 스스로 폭로했다고 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을 향해 비판의 날을 세우는 한국당도 사실 따져보면 이 체제를 만든 당사자이자 수혜자이다. 한국당이든, 민주당이든, 청와대든, 촛불집회든, 입을 모아 정의와 공정의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상위 10%의 체제를 지키자는 속내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 민주주의의 과제는 이 상위 10%의 민주주의를 나머지 90%를 위한 민주주의로 바꾸는 것 아닌가. 이 의제를 내걸고 집권한 문재인 정부가 자기모순에 빠져 기득권의 이익을 옹호하고, 그 반대편에 있는 보수세력이 정의와 공정을 운운하는 촌극은 더 이상 없어야할 것이다. 물론 당분간 이 촌극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28일 촛불집회가 확인시켰다는 점에서 사태는 아이러니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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