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수경 칼럼] 미국의 이스마엘 로페즈와 한국의 이주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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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21 13:38 | 최종 업데이트 2019-10-21 15:21

이스마엘 로페즈는 멕시코에서 왔다. 미시시피주의 사우스헤이븐이라는 소도시에 자리잡고 살면서 열심히 일했다. 고향에서 보다 더 나은 삶이라는 그의 소박한 아메리칸 드림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2017년 여름의 어느 날, 한밤중에 집에 들이닥친 경찰에게 이스마엘은 뒷머리에 총을 맞고 살해당했다. 기가 막힌 것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향하던 곳은 이스마엘의 집이 아니었다. 집을 잘못 찾은 경찰이 엉뚱한 사람에게 총을 쏜 것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미국에 온 이스마엘의 아메리카 드림은 그렇게 비극으로 끝나고 말았다.

경찰에 의해 살해된 수없이 많은 무고한 미국인들의 경우처럼, 이스마엘을 죽인 두 명의 경찰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 무고한 사람이 죽었는데,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그래서 유가족들은 사우스헤이븐 시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사우스헤이븐 시는 최근 법정에서 이스마엘이 서류 미비자이기 때문에 미국 헌법의 보호를 받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법적 근거가 없는 유가족의 소송은 기각되어야 한다면서.

“위더피플 (We, the People)”로 시작하는 미국 헌법은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존엄한 존재라는 천부인권 사상에 근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사우스헤이븐 시에 의하면, 서류 미비자인 이스마엘은 헌법이 보호하는 사람인 “위더피플”에 속하지 않는다.

복잡하게 들리는 법리 논쟁을 떠나 솔직하고 쉽게 말해보자. 서류 미비자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다.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서류 미비자를 죽여도 아무도 책임질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이런 끔찍한 주장이 법정에서 아무런 제재 없이 나왔다. 그것도 극우 나치가 아니라 시 정부를 대리하는 변호사의 입에서. 오싹하지 않은가. 이것이 지금 민주주의의 본고장이라는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 기막힌 일이 트럼프의 미국에서만 일어나는 예외적인 현상인가? 불행하게도 그 답은 아니올시다다.

한국인들이 촛불시위로 대통령을 물러나게 했다는 소식은 미국인들에게도 많은 영감을 주었다. 가끔 그들에게 질문을 받는다. 투쟁으로 탄생한 촛불 정권에서 얼마나 많은 것들이 바뀌고 있느냐고. 하지만 나는 이에 긍정적인 답을 해주지 못한다. 왜냐하면 한국의 인권 상황은 조금도 나아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 사회의 인권 상황을 알려면 그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 사람들의 인권이 어떻게 취급되고 있는지를 보아야 한다. 그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의 삶이 더 나아지고 있는가? 아니, 그들이 ‘사람' 취급을 받고 있는가?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단적인 예로, 문재인 정부 하에서도 비인권적인 토끼몰이식 ‘불법체류자’ 색출은 계속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이주민이 다치거나 심지어 목숨을 잃는다. 법무부 자체 집계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7년까지 단속 과정에서 이주노동자 80명이 부상하거나 숨졌다.

작년 8월 법무부 산하 인천출입국-외국인청의 단속 과정에서 미얀마 이주노동자 딴저테이 씨가 8m 아래로 떨어져 사망했다. 그가 죽은 지 1년이 더 지났지만 아직까지 법무부는 그의 죽음에 대한 공개 사과나 책임 인정을 하고 있지 않다. 올해 초, 딴저테이 씨 사망에 대한 책임이 법무부에 있음으로 관련자들을 징계해야 한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가 있었지만, 법무부는 여전히 꿈쩍도 안 하고 있다.

법무부가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사이 또 다른 이주노동자가 단속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다. 9월 24일 경남 김해에서 부산출입국관리소의 단속을 피하려던 이주노동자가 사망했다. 태국에서 온 29살의 청년이었다. 도주하는 이주노동자들을 추격하거나 신체 접촉을 하지 않았다는 단속반원들의 주장과 달리 목격자들은 단속반원들이 공장의 옹벽 뒤에 숨어 있다가 도망치는 이주노동자들을 덮쳤고, 그 과정에서 이주노동자들을 넘어뜨리고 목을 조르기도 했다고 말한다.

같은 날, 지금은 사퇴한 조국 법무부 장관은 ‘불법 체류 외국인’의 수를 감축하라고 지시했다. 진보적인 법학자 출신으로 알려진 조 장관이 이주민을 범죄자 취급하는 인종차별적인 ‘불법체류자’라는 용어를 쓴 것도 문제지만, 고귀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단속반원들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은 거부하면서 단속을 더 강화하라고 지시한 것은, 사실상 걱정 말고 계속해서 폭력적인 과잉 단속을 하라고 격려한 것이다.

단속 과정에서 “목숨보다는, 미등록 숫자 줄이고 실적을 올리는 것에 신경 쓴다”는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의 말처럼 이주노동자는 사람이 아니라 단속 실적을 올려야 하는 숫자일 뿐이다. 경찰 손에 살해되어도 서류 미비 이주민은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미시시피 사우스헤이븐 시와 무엇이 다른가?

▲2015년 8월 16일 228기념중앙공원에서 열린 대구경북 이주노동자 결의대회(사진=뉴스민 자료사진)

이주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은 정부의 단속뿐만이 아니다. 사용주의 허가 없이는 직장을 옮길 수 없는 ‘현대판 노예제’인 고용허가제 때문에 이주노동자들은 안전하지 않은 작업을 거부할 수 조차 없다. 극단적으로 열악한 노동환경에 내몰린 결과는 이주노동자들의 죽음으로 이어진다.

최근 5년간 산재 승인을 받은 이주노동자 사망자는 557명이라고 한다. 작년 한 해 동안에만 150명의 이주노동자들이 죽었다. 지난 5년 동안 산재로 죽은 이주노동자의 수는 60%나 증가했다. 산재 인정을 받지 못한 경우까지 합치면 사망자 수는 더 늘어난다. 하지만 “이주노동자가 사망해도 사업장은 아무 불이익이 없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고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은 고발한다. 이주노동자의 목숨값은 헐값이다. 20일 서울에서 열린 ‘2019 전국이주노동자대회’에 참석한 이주노동자들이 “죽지 않고 일하고 싶다”고 외친 것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그들의 피울음이다.

자국민이 우선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주장은 이주민에 대한 차별을 기본값으로 설정하고 이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다. 사회의 위계질서 사다리 가장 밑에 있는 이주민에 대한 차별을 당연한 것, 또는 불가피한 것으로 여긴다면, 그 사다리 바로 위에 있는 사람들은 차별로부터 안전할까? 아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겪는 고통을 봐도 알 수 있다. 이른바 위험의 외주화로 인해 하루가 멀다고 들려오는 노동 현장에서의 죽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숨값도 헐값이다. 이주민에 대한 차별과 똑같은 논리다. 정육점에 진열된 고기의 등급을 나누듯이 사람의 등급을 매기는 것을 허용하는 한 우리들 중 누군가는 제대로 된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한다. 정규직을 요구하며 투쟁하는 톨게이트 노동자들을 향해 어차피 없어질 직종이라는 청와대 고위 관계자의 망발에서도 이는 잘 드러났다. 그들 눈에 비정규직 노동자는 이주노동자처럼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 서류 미비 이주민이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우스헤이븐 시정부와 도대체 무엇이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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