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선우] 멀지 않은 현실, ‘날씨의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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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 해비타트’의 고위급 원탁회의에서 먼 미래의 일로만 여겨져 온 해상도시의 현실화에 대해 검토했다. 이유는 지구 온난화 때문이다. 인류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화석연료를 끊임없이 사용하고, 온실가스를 흡수하는 산림을 없앤 대가다. 이대로 가면 2100년 지구 기온은 산업화 이전 대비 3.2도 상승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기온이 높아지면 바다의 수위도 높아진다. 기후변화정부협의체(IPCC) 5차 보고서는 온실가스 배출을 방치할 경우 2100년까지 해수면 상승 폭이 52~98㎝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최근 상승 폭이 2100년 2m를 넘을 수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뉴욕과 상하이, 뭄바이, 도쿄, 베네치아 등 주요 대도시는 바다와 닿아 있다. 전 세계 인구 30%(24억 명)는 해안지대에 거주한다. 대규모 기후난민 사태는 우려를 넘어 현실이 되고 있다. 유엔은 삶의 터전을 위협하는 해수면 상승 문제의 대책으로 해상도시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2016년 애니메이션 영화 <너의 이름은>으로 한국에서 열풍을 일으킨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신작 <날씨의 아이>에서는 이상기후로 두 달 넘게 비가 그치지 않는 도쿄가 배경이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비가 내리는 회색빛의 도시 도쿄에서 “이상기후로 오늘도 비가 온다”는 기상예보가 나온다. 침수되는 도시는 전 세계가 당면한 대재앙이 닥칠 미래를 상징하지만 정작 사람들은 자연재해는 낯설다고 느낀다. 주인공은 기후변화의 가장 큰 피해자인 젊은 세대다.

신카이 감독은 언론 인터뷰에서 “일본에서는 자연재해가 삶의 가장 큰 걱정거리가 돼 버렸다. 이상기후로 이전엔 경험하지 못했던 폭우가 쏟아지기도 한다. 어떤 의미에선 세상이 조금씩 미쳐가고 있는 건가 싶은데, 그런 세상에서도 소년과 소녀는 어떻게든 살아가야만 한다”고 말했다. 섬마을에서 가출해 도쿄로 온 호다카 모리시마(다이고 코타로)는 갈 곳 없이 떠돌다가 아르바이트를 하며 남동생과 함께 도쿄 외곽에서 지내는 히나 아마노(모리 나나)를 만나 친구가 된다. 호다카는 비를 멈추는 신비한 능력을 가진 히나와 함께 맑은 날씨를 판매하는 작은 사업을 벌인다.

그러나 히나의 능력에 숨겨진 비밀은 희생이다. 일본의 신화에서 비를 그치게 하는 무녀처럼 히나는 제물로 바쳐지고, 도쿄에는 비가 그치고 햇살이 비춘다. 이는 다양한 생물들의 멸종, 긴 세월 축적된 빙하의 소멸, 태풍·허리케인 등 자연재해의 빈발, 폭우·한발 지역의 확산, 여름과 겨울의 높은 온도 차, 지역에 따른 농수산물의 흉작 등 자연재해로 인해 전 세계가 당면한 미래에 맞서 청년들이 적극적인 기후행동을 벌이고 있는 현실과 포개진다. 어른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살아가는 히나와 호다카는 세상을 구원하는 주체다. 국가 지도자, 기업가, 공동체가 해결해야 할 환경문제를 10대 소년, 소녀가 자신을 희생해가며 해결한다.

자연재해에 대한 경고를 담은 메시지와 함께 영화가 주는 감정이 특별한 건 신카이 감독의 서정적인 작화 덕분이다. 송알송알 내리는 빗방울과 폭우가 내린 뒤 선명하게 빛나는 햇살, 선명한 색을 드러내는 폭죽 등 사진처럼 사실적이면서도 묘하게 아름다운 색채가 입혀진 영상미는 감동을 더 한다. 특히 이번 영화에서는 추격과 같은 액션신도 등장하며, 유머도 적절하게 녹아 있다. 이 밖에도 <너의 이름은>의 팬이라면 반가울 캐릭터도 등장한다.

<날씨의 아이>는 개봉이 한 달쯤 미뤄졌다. 경색된 한일 관계 때문이다. 개봉에 맞춰 내한한 신카이 감독은 예전에 없던 기자회견을 열고 관객과 대화에 여섯 번이나 참여했다. 그는 “3년 뒤에는 한국과 일본의 사이가 좋아지기를 바란다”며 “그때 신작을 들고 한국에 다시 찾아와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