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수경 칼럼] 혐오를 선동하는 국회의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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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8 15:30 | 최종 업데이트 2019-11-18 15:31

세계에서 가장 리버럴한 도시 중 하나인 뉴욕에 살면서 비영리 공익로펌에서 일하는 나는 운이 좋게도 일 때문에 만나는 사람들 대부분이 소위 진보적인 성향의 사람들이다. 이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자기소개를 할 때 보통 이름이나 소속 단체뿐 아니라 어떤 성(性)의 대명사를 쓰는지도 함께 밝힌다. 무슨 말이냐고?

영어에서 여성은 '쉬(She)', 남성은 '히(He)' 라는 대명사를 쓴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이 성별을 구분할 때 별 의문 없이 이 두 대명사 중 하나를 써왔다. 하지만 자신의 성별 정체성을 여성도 남성도 아니라고 여기는 '넌 바이너리(non-binary)' 성소수자는 스스로를 칭할 때 '쉬(She)'도 '히(He)'도 아닌 '데이(They)'라는 대명사를 쓴다.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데 더 적합한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이들을 존중하는 의미로 사람들은 이제 이름뿐 아니라 어떤 성별 대명사를 쓰는지도 먼저 물어보면서 대화를 시작하고 있다.

이는 남들이 지정해 주는 인위적인 정체성이 아닌 스스로 가장 맞는 정체성으로 인식되는 것이 사람으로서 존엄성을 지키는데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인식하게 된 결과다. 그리고 동시에, 설사 우리가 알지 못할지라도 우리 주변에 남성이나 여성이라는 이분법적 성별 구분에 들어맞지 않는 사람이 존재하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런 추세를 반영해 최근 미국의 미리엄-웹스터 영어사전은 지금까지 3인칭 복수 대명사로만 써온 '데이(They)'의 정의에 제3의 성을 가진 사람을 지칭하는 단수 대명사라는 의미를 공식적으로 추가했다.

뉴욕이라는 ‘유별난’ 도시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사람의 성별을 고정불변의 이분법적 구분으로만 나눌 수 없다는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제3의 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인식이 빠르게 퍼져 나가면서 많은 나라가 출생증명서 등 공식 문서에 남성이나 여성이 아닌 제3의 성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미국, 독일,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인도, 파키스탄, 몰타, 태국, 네팔 등이 대표적인 나라다.

미국에서는 현재 캘리포니아, 오리건, 워싱턴, 콜로라도, 뉴저지, 뉴욕시에서 제3의 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뉴욕시의 경우 올해 1월 1일부터 출생증명서에 여성이나 남성이 아닌 제3의 성을 선택할 수 있도록 법이 바뀌었다. 이제 자신을 여성이나 남성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성소수자는 출생증명서 성별을 여성도 남성도 아닌 제3의 성인 'X'로 표기할 수 있다. 특히 기존 성별 정정에 요구되었던 의사 소견서나 성전환 수술 없이도 제3의 성별을 선택할 수 있게 함으로써 소수자 인권 보호를 한층 더 강화했다.

이분법적 성별 구분은 실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인위적인 구분일 뿐이다. 예를 들면, 남녀 양성의 특질을 모두 지니고 태어난 간성(間性, intersex)인 사람은 유엔 추산으로 전 세계 인구의 약 1.7%를 차지한다. 태어날 때 생물학적으로 지정된 성별과 자신이 생각하는 성별이 다른 트랜스젠더도 이분법적인 성별 구분에 맞지 않는 또 다른 예이다. 미국에서 자신을 트랜스젠더로 여기는 사람은 최소 140만 명이라고 추정된다. 한국에서도 트랜스젠더 인구는 최소 5만 명에서 25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렇듯 소수이지만 이분법적 성별 구분에 맞지 않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맞지도 않는 이분법적 성별 구분 박스에 억지로 구겨 넣으려는 시도를 지금 한국의 일부 국회의원들이 하려 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바로 자유한국당 안상수 의원을 대표로 자유한국당 외 더불어민주당, 바른미래당 등 국회의원 40명이 국가인원위원회법 개정안 발의에서 다음의 두 가지 내용을 바꾸려 하고 있다.

첫 번째는 현 국가인권위원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에서 성적 지향을 삭제하자는 것이다. 즉, 동성애나 양성애 등 이성애가 아닌 성적 지향은 차별해도 된다는 말이다. 두 번째는 성별에 대한 법적 정의를 “개인이 자유로이 선택할 수 없고 변경하기 어려운 신체적 특징으로 남성 또는 여성 중의 하나”로 국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남성과 여성이 아닌 다른 성별은 존재하지 않고, 설사 존재하더라도 제대로 된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현행 국가인권위원회법이 차별행위에 성별을 포함하고 있지만, 이렇게 성별을 오직 남성과 여성만으로 정의한다면 전통적인 남성이나 여성에 맞지 않는 트랜스젠더, 간성인, 젠더 퀴어 등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는 차별행위가 아니게 된다. 사실상 성소수자 혐오를 선동하고 있는 것이다.

11월 20일은 '증오 범죄'로 숨진 트랜스젠더 여성 리타 헤스터를 추모하며 만들어진 세계 트렌스젠더 추모의 날이다.(사진=transgendersociety.yolasite.com)

이 소식을 듣고 나는 개정안 내용에도 어이가 없었지만, 이런 내용이 발표된 시기도 기가 막힌다고 생각했다. 개정 발의안은 11월 20일 국제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Transgender Day of Remembrance, TDoR)을 바로 코앞에 두고 발표되었다.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은 20년 전인 1999년 미국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그 한 해 전인 1998년 11월 28일 리타 헤스터(Rita Hester)라는 트렌스젠더 여성이 살해된 것을 계기로 혐오 범죄로 살해된 모든 트랜스젠더를 추모하는 행사로 시작되었다.

리타 헤스터는 트랜스젠더 흑인 여성이었다. 미국 최대 명절인 추수감사절 다음 날, 만 35세 생일을 이틀 앞두고 자신의 아파트에서 수십 차례 칼에 찔린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1998년 당시 주류 언론은 리타의 죽음을 알리는 보도에서 그녀를 지칭하면서 남성형 대명사인 '히(He)'와 성전환 전에 불리었던 이름 윌리암을 사용했다. 한 기사는 리타를 수상한 ‘이중생활’을 하는 변태 여장남자로 묘사하기도 했다. 이렇게 리타는 두 번 살해 당했다. 오늘날까지 잡히지 않고 있는 범인에게 물리적인 목숨을 잃었고, 트랜스 혐오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회에 의해 사회적 존재 자체를 부정당했다.

이런 혐오에 맞서 시작된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은 트랜스젠더에 대한 물리적 폭력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모든 사회적 편견과 차별, 혐오에 맞서 싸워야 함을 우리에게 일깨워 주는 날이다. 또한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을 앞둔 11월 13일부터 19일은 트랜스젠더 가시화 주간(Transgender Awareness Week)이다.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인 11월 20일까지 일주일 동안 다양한 행사를 통해 우리 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서 트랜스젠더에 대한 이해와 그들이 겪고 있는 편견과 차별, 혐오의 심각성을 알리는 각종 행사와 캠페인이 진행된다. 이제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은 전 세계 200여 개의 도시에서 벌어지는 국제적인 기념일로 자리 잡았다. 서울에서도 11월 16일 열린 ‘보통의 트랜스들의 위대한 생존’ 행진에 약 300명이 참가했다고 한다.

혐오를 선동하는 법안을 발의한 국회의원들이 이런 세계적인 흐름과 기념일에 대해 알고 있는지 확인할 수는 없다. 만약 일부러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을 앞두고 발표한 것이라면 대단히 악의적인 선전포고다. 모른다면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의 국제 감각이 많이 뒤처져 있음을 스스로 고백하는 꼴이다. 세금으로 열심히 ‘외유성 해외연수’만 다니지 말고 제발 이런 소수자 인권을 강화하는 국제적 흐름에 대해서도 좀 배우길 바란다. 보수적인 종교 지도자들의 말만 듣지 말고.

역사의 수레바퀴를 되돌리려는 반동적 시도이자 혐오 선동인 국가인권위원회법 개정발의안은 반드시 저지되어야 한다. 더불어 2007년 처음 법안이 발의된 이래 지금까지 여전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차별금지법이 왜 꼭 제정되어야 하는지, 그 절박한 필요성을 다시 한번 우리에게 다시 일깨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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