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미문화원폭파 고문·투옥 피해자 더 있다

섬유노동자 야학 교사 신창일, 폭파 빌미로 대공분실 조사
미문화원 사건과 관련 없이 국가보안법 위반 1년 6개월 만기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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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9 18:43 | 최종 업데이트 2019-11-19 18:43

1983년 9월 22일 대구 미문화원 폭파 사건이 있고, 사나흘 후 점심께, 비산동에 있는 신창일(59, 당시 23세) 씨의 자취방에 수사관 2명이 들이닥쳤다. 수사관들은 신 씨에게 북부경찰서로 임의동행을 요구했다. 신 씨는 보호감호 대상이었기 때문에, 처음 보는 수사관이 자취방에 찾아온 것이 놀랍지는 않았다. 신 씨는 1980년 9월, 광주민주화 운동 소식을 유인물로 만들어 배포하고 벽서를 붙이다가 현행범으로 체포돼 집행유예 선고를 받았다. 이 일로 신 씨는 경북대학교에서 퇴학됐고, 보호감호 대상이 됐다.

폭파 사건이 벌어진 후 신 씨는 경찰 수사 대상이 될 걸 예상하고 사건 당시 친구와 함께 영화를 보고 있었다는 알리바이를 만들었다. 사실 폭파 당시 신 씨는 경북대학교 운동권 학생들과 함께 다른 일로 회의를 하던 중이었다. 폭파 사건을 빌미로 학생운동 조직이 발각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공안 당국에 진술할 내용을 머릿속에 여러 번 되새겼다.

북부서, 중부서에서도 알리바이는 통했다. 서부서로 이송 후 미문화원 폭파와 관련한 혐의는 벗었지만, 야학교사로 활동하며 북한을 고무찬양 해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는 새로운 혐의를 받게 됐다. 불법 구금 후 공안 당국은 없는 죄라도 만들 기세였지만, 신 씨는 부인했다.

북부서, 중부서에서 구타 정도의 고문은 있었는데 서부서에서는 전기 고문으로 강도가 높아졌다. 섬유공장에서 일하다 잘린 손가락에 전기 충격을 받았다. 신 씨를 무너트린 것은 고문이 아니었다. 서부서 수사관은 신 씨가 가르치던 야학 학생들과 대질신문 했다. 고개를 숙인 학생들을 보자 신 씨는 대공과장과 면담에 나섰다. 죄를 시인하면 학생들은 훈방조치 된다는 말을 듣고 신 씨는 수긍했다.

결국 미문화원 사건과는 무관하게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실형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유화국면, 학원자율화 조치에 따라 석방될 것으로 예상하고 항소하지는 않았다. 항소한다면 가석방 대상에서 제외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 씨는 가석방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교도관은 죄목에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이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고 귀띔했다. 결국 1년 6개월을 채우고 만기 출소했다.

수감생활이 억울했지만,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는 계기도 됐다. 기결수가 돼 대구교도소에 입감된 신 씨는 그곳에서 여러 비전향 장기수,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 관련자와 만나며 평화와 통일에 대해 듣게 됐다. 또한 그곳에는 미문화원에 불을 지른 문부식 씨, 재일 동포이자 인권운동가인 서승 씨도 화상을 입은 얼굴로 수감 생활을 하고 있었다.

출소 후 신 씨는 사회과학 전문 서점인 신우서적을 운영했다. 서점 주인이던 아내와 교도소 생활 중 인연을 맺었고, 그와 결혼했다. 딸이 날 때부터 중증장애인이었다. 운동과 생계 사이에서 고민하던 신 씨는 이후 생계에 매진하게 됐다.

이후 생업에 매진하던 신 씨는 대구미문화원 폭파 사건 관련 재심에서 함종호(61) 씨 등 선배들이 무죄·면소 판결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선배들의 재심 재판으로, 당시 불법 연행돼 고문받고 옥살이한 민간인들의 억울함이 조금이라도 해소됐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본인이 재심 재판을 신청하는 것에는 결심을 하지 못했다.

"대구에는 미문화원 사건 이후 저처럼 억울하게 피해받은 이들이 더 있습니다. 저처럼 실제로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들도 있고, 실형 선고는 아니지만 불법 연행됐던 사람도 수백 명에 달하는 거로 압니다···선배들의 재심으로 당시 당국의 잘못이 드러났습니다. 재심은 개인적인 의미는 있겠지만, 사회적 의미에 대해서는 아직 고민됩니다"

▲13일, 신창일 씨가 운영하는 한 음식점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대구미문화원 폭파 관련 사건 판결 이후, 대구에서는 해당 사건의 실체를 다각도로 드러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구경북의 인권시민사회단체는 오는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일을 맞아 여는 토론회에서 미문화원 폭파 사건을 빌미로 민주화·민중운동 세력을 탄압한 사건을 조명한다. 이들은 폭파 사건 관련 피해자 사례를 발굴하고,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계획도 마련할 예정이다.

이날 토론회에 발제자로 참여할 김상숙 성공회대학교 민주자료관 연구교수는 <뉴스민>과의 통화에서 "당시 대구 미문화원 폭파 사건을 빌미로 연행됐다가 실형 선고받은 사람은 숫자가 많지 않다. 이 사건으로 고문받은 사람이 많고, 강제 징집된 피해자들도 많이 있다"며 "실형 선고받은 사람뿐만 아니라 강제 징집과 고문받은 피해자들에 관한 이야기들도 조명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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