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먹칠] ‘그 교육’을 버릴 때 / 박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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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3 14:16 | 최종 업데이트 2019-12-13 14:16

다시 정시 원서접수 시즌이 돌아왔다. 12월 중순에 접어들면 수시 전형 결과가 하나둘씩 발표 나고 수시에서 떨어진 학생들은 0점대의 점수로 대학이 갈리는 첨예한 정시 경쟁시스템에서 눈치싸움을 해야 한다. 2019년 대한민국을 한바탕 뒤흔들어 놓은 조국 사태로 불거진 ‘교육 불공정성’ 문제에 대해 문재인 정부는 두 가지 대책을 내놓았다.

2019학년도 수능이 치러지던 2018년 11월 15일 오전, 한 여고 후보들이 선배들의 응원하고 있다. (사진=이희훈 오마이뉴스 기자)

첫째는 정시 비중 확대이고, 다른 하나는 과학고와 영재학교를 제외한 특수목적고를 일괄 폐지하는 것이다. 학생부종합전형 실태조사 결과 과학고‧영재고, 외국어고, 자사고, 일반고의 고교유형별 서열화가 확인되면서 학생부종합전형과 특수학교의 존재가 교육 생태계 불균형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이로써 대한민국 교육 생태계는 ‘다수의 학생이 같은 공간에서 공정한 절차를 통해 시험으로 평가받는’ 것으로 재편되었다.

조국 사태에서 확인된 ‘불공정성’은 부모의 계급이 자식 교육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계급적 불평등’과 관련된 것이다. 자사고나 특목고에 진학하기 위해선 일반고보다 훨씬 높은 학비를 감당해야 하고, 여기에 진학한 학생의 명문대학 진학률이 일반고에 비해 현저히 높다. 여기에 학생부종합전형은 학교 내신 성적 외에 학부모의 네트워크를 동반한 각종 스펙이 주요한 전형이다. 결국 학종과 특목고 및 자사고는 대학입시에서 소득이 높은 이들에게 더 유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이러한 불공정성을 교정해야 한다는 것이 조국 사태에서 확인된 문제였다.

그러나 조국 사태에서 논란이 된 공정성이 ‘계급적 불평등’에 관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정부가 내놓은 방안은 ‘개천에서 용 나던 시대’로 회귀함으로써 단순히 국민적 반발을 최소화하는데 방점이 찍혀 있다. 정시 비중 확대 정책이 발표되자 가장 먼저 들썩인 것은 사교육 시장과 부동산 시장이었다. 정시는 학교생활의 성실 유무와 상관없이 정형화된 시험에 특화된 능력이 중요한 전형이다. 당연히 좋은 학원에 다닐수록 좋은 성적을 받기가 쉽다.

또한 모든 학교를 일반고를 전환한다고 해서 부모의 계급이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과거 전 국민이 다 함께 못살던 시절의 고교평준화와 학력고사가 그나마 교육 자원에 대한 접근성을 모두에게 평등하게 보장했다면, 이미 경제적 격차가 엄청나게 벌어진 상황에서 돈이 많은 이들에게 어디에서 공부하는지는 사실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고액의 사교육은 여전히 성행하고 계급을 매개로 형성되는 학부모 네트워크는 일반고에서도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

결국 교육부의 개혁 방향은 계급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과 크게 상관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이 같은 교육정책 방향에 꽤 긍정적이다. 결국 이들이 바랐던 공정성에 대한 요구는 ‘실질적인 계급적 불평등’을 교정하는 것과 거리가 멀었다는 것이다. 특목고 및 자사고 폐지와 정시 확대에 찬성하는 이들이 바라는 공정성은 과연 무엇인가? 이는 평등의 관점에서 명백하게 교육권이 침해당하고 있는 약자에 대한 차별을 배제하고 학벌 위주의 서열을 폐지하자는 요구가 아니라 계급의 사다리에 올라탈 수 있는 기회를 나한테도 제공해달라는 것에 가깝다. 다시 말해 과정의 공정성만 확보되면 그 결과는 차별적이라도 기꺼이 수용하겠다는 태도, 중산층의 계급 욕망으로부터 비롯된 요구이다.

평등한 기회와 정의로운 결과에 무관심한 기계적 공정성 담론의 끝은 어디일까? 오로지 자신의 노력으로 성취될 수 없는 능력이 ‘정시’를 매개로 공정한 능력의 경합으로 여겨진다면, 여기에서 탈락한 이들은 자신의 사회경제적 환경을 탓하기보다 자신의 무능력을 탓하게 될 것이다. 이는 다시 ‘합법적 불공정함’으로의 회귀이자, 오히려 구조의 문제를 개인의 능력 문제로 치환함으로써 불평등에 대한 문제제기를 틀어막는 철저한 보수성에 이를 것이다.

따라서 이 정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조국 사태로 확인된 ‘계급적 불평등’에 대한 제대로 된 문제 해결, 즉 까다롭고 엄중한 기준을 마련해 더 공정하게 서열을 매기는 방법을 고안하는 것이 아니라 ‘입시제도’의 틀을 넘어선 교육을 지향하는 것이다. 학교 말고도 교육을 누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대학에 가지 않는 것을 포함해 ‘누구나가’ 다양한 삶을 상상할 수 있도록 교육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그렇게 지금까지 한국 사회가 해왔던 ‘그 교육’을 포기할 때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평등을 위한 교육 개혁은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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