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먹칠] 외교의 균형을 맞출 때 / 최혁규

16:45

지소미아 조건부 연장 이후 한·일 양국 간의 신경전은 여전히 날카롭다. 한·일 정상회담을 통해 수출규제 문제를 대화로 해결하겠다고 합의했지만, 여전히 갈등의 근본인 강제징용 문제는 답보상태다. 지소미아와 관련한 국내 여론은 파기가 우세했지만, 정부는 선뜻 파기를 선택하지 못했다. 미국의 집요한 연장요구 때문이었다.

지소미아는 원래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한 한·일 군사당국 정보공유라는 명분으로 체결됐다. 하지만 미국의 본 속셈은 따로 있다. 에스퍼 미 국방장관은 “지소미아 종료로 득을 보는 곳은 중국과 북한”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지소미아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미국은 지소미아를 한·미·일 동맹 강화를 통한 대중국 억제정책의 일환으로 본다. 한·일 갈등처럼 비치는 지소미아 문제를 한·일 양국 문제가 아닌 미·중 관계 하위범주로 바라봐야 하는 이유다.

미·중 관계와 우리의 입장을 고려할 때, 지소미아는 철회해야 한다. 지소미아 갈등은 미·중 패권 경쟁 사이에서 한국이 어느 편에 설지를 물어보는 질문과 같기 때문이다. 미국이 한국에 강요하는 지소미아의 궁극적인 이유는 중국 압박을 위한 미국의 대중국 정책 일환이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 왕이 외교부장이 방한한 것도 지소미아 연장 이후 미국으로 기우는 한반도 외교 추를 중국 쪽으로 당기려는 시도로 풀이할 수 있다.

북핵 문제 역시 미·중 관계 하위범주에서 바라볼 수 있다. 미국의 제재·압박에 맞서 중국의 제재 완화가 충돌하는 형국이지만, 미국의 제재 일변도 정책에서 북핵은 해결되긴커녕 긴장 관계는 더욱 고조됐다. 북한과 긴장 관계는 우리에게 정치적으로 막대한 비용을 유발시킨다. 이는 지소미아 파기를 통해 미·중 갈등에 포섭되지 않고, 동북아 긴장 비용의 균형을 잡을 한반도가 필요한 이유와도 만난다.

미·중 관계 맥락 속에서 우리는 철저하게 실리를 따져야만 한다. 우리가 고려해야 할 실리는 중국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실익이다. 이미 우리는 미·중 갈등 속에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은 경험이 있다. 사드 사태 이후 중국의 경제보복이 대표적이다. 2017년 중국의 사드 보복이 본격화하면서 각종 경제연구소는 우리가 입는 피해가 만만치 않는 수준이라고 발표했다. KDB산업은행 보고서는 손실액이 200억 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했고, IBK 경제연구소는 76억 9천만 달러, NH투자증권은 경제성장률이 0.25% 정도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수도권 방어가 되지 않는 사드는 철저하게 미국의 이해관계로 한반도에 배치됐다. 미국은 중국의 경제보복에 대해 아무런 간섭도 하지 않았고, 오롯이 한국이 피해를 감내해야만 했다. 이는 국제 관계에서 정치적 명분보다, 실리가 우선시 됨을 방증한다. 문제는 사드 보복보다 지소미아 연장 이후 중국 보복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지소미아 연장을 통해 궁극적으로 한국을 미국의 미사일방어체제에 편입하려한다. 이는 사드 보복 이후 중국과 체결한 ‘3불(不) 합의’에 충돌하는 만큼 피해는 클 것이다.

지소미아 종료로 생길 미국의 불만은 상응하는 혜택을 통해 잠재울 필요가 있다. 지소미아 종료는 한국의 대외정책 방향이 미국으로부터 이탈하는 모습으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상응 혜택 중 하나로 방위비 협상에서 미국이 원하는 요소를 일부 들어주는 걸 고려할 수 있다. 미국이 요구하는 지소미아 연장과 방위비 분담금 문제는 각각 미국의 기존 주류 보수와 비용의 관점에서 외교 문제를 푸는 트럼프의 입장이 반영된 것이다.

대통령 중심제인 미국에서 최고결정권자인 트럼프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내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의 재선 가능성도 높게 전망된다. 이 모든 것을 고려해 트럼프가 원하는 바를 들어주고 장기적으로 우리의 실리를 취할 필요가 있다. 물론 방위비 분담금 50억 불은 터무니없다. 대신 트럼프가 원하는 미 군수품 구입으로 그에 상응하되 합리적인 지출을 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중국과 실리적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더 큰 이익의 상실을 보존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