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총선거:TK민심번역기] ③ 20대에게 조국은?

'조국' 먼저 언급한 6명 중 4명은 20대 초반
20대, ‘공정’ 의제로 모아낼 키워드 다수
지역차별, 남녀차별 문제도 관심사

19:01

[편집자주] 뉴스민은 대구KBS 밭캐스트 제작팀과 지난 12월 안동, 포항, 구미 등 경북 3개 도시와 대구 곳곳을 다니며 주민을 만나 총선을 앞둔 민심을 들어봤다. 현장에서 만난 대구·경북민들의 이야기를 연속해서 전한다.

[시민 인터뷰 영상보기]
[2020총선거:TK민심번역기] ① 다시 ‘먹고 사는 일’ 
[2020총선거:TK민심번역기] ② 다시, 더불어민주당?
[2020총선거:TK민심번역기] ④ 불신하고, 무용한 정치

“뉴스를 평소에 많이 보나 봐요?”
“볼 수밖에 없더라구요”
“왜요?”
“조국 사건도 있었고···”

‘조국’을 처음 입에 올린 사람은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딛는 김윤정(19) 씨다. 안동과 포항을 지나 구미역을 찾았을 때다. 그는 올해 2월 마이스터고를 졸업하고 취업을 앞뒀다. 공직선거법 개정 덕에 그도 올해 첫 투표를 할 수 있게 됐다. “저도 취업을 해야 하니까 뉴스를 계속 보게 되는 편”이라는 그는 홀린 듯 특정 정당에 표를 몰아주는 어른들이 생각이 짧아 보인다.

“저희 윗분들은 그런 계열을 되게 좋아하잖아요. 빨간색 분들. 너무 정당만 보고 뽑으면, 좀 생각이 짧지 않나(싶어요). 미래는 저희가 나아가야 할 사회인데 저희를 안 보고 정당만 보고 하니까, 좀 사회가 좋아져야 하는데 점점 더 지체되는 거 같아요, 그런 것 때문에”

생각이 짧은 어른들처럼 그는 정당만 보고 표를 줄 생각이 없다. “저는 마이스터고 전형이어서 선 취업, 후 진학이란 말이에요. 마이스터고 학생을 위한 공약을 많이 펼치는 국회의원을 뽑고 싶어요” 그는 유권자로서 분명한 자기 이해에 바탕한 권리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그는 ‘조국 사건’도 자신이 처한 조건(학생)에서 ‘있으면 안 될 일’로 판단했다. 그는 “있으면 안 될 일이 일어났으니까. 저희 학생들 입장에선 다신 안 일어났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대구·경북에서 만난 100명 중 먼저 ‘조국’을 입에 올린 사람은 김 씨를 포함해서 6명이다. 그중 4명은 20대인데, 이들은 모두 대입을 치른 지 얼마 되지 않는 20대 초반이다. 상대적으로 20대에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언급하는 사례가 많다는 건 흥미로운 지점이다. 20대는 모두 조 전 장관을 언급하며 작게는 대입 문제를 지적했지만, 크게는 공정 사회를 향한 바람으로 이어졌다.

경북대에서 만난 정호성(20) 씨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4월 총선에서 어떤 사람이 뽑혀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요즘 뉴스에 조국 사태 이런 거 뜨고 하는데, 좀 공정한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 학교 입학한 지 별로 안 되다 보니까, 특히 조국 사태처럼 약간 입학에 대한 부정 이런 건 좀···”이라며 부정적인 입장을 분명하게 했다.

마찬가지로 경북대에서 만난 박선호(23) 씨는 같은 물음에 “최근 조국 관련 일 때문에 도덕성이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박 씨는 사건을 접했을 때 화가 많이 났느냐는 물음에 “화가 난 건 아니고, 언짢았어요”라며 “어머니, 아버지 잘나가면 인생도 쉽게 살고 하니까”라고 답했다.

역시 경북대생인 최지연(20) 씨도 “개인적으로 공부하면서 약간 문제가 많다고 생각이 들었어요”라며 “조국 사태도 있지만 교육 관련해서 불공정한 게 개편이 많이 됐으면 해요”라고 말했다. 이처럼 이들 모두 조 전 장관 사건에서 드러난 불공정성에 대해 불만을 드러냈다.

조국 전 장관 문제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20대라고 해서 그것이 곧장 문재인 정부나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지 않은 건 다른 연령과 차이기도 했다. 조국 전 장관 일로 느낀 불공정성의 문제를 특정 개인이나 정치 세력의 문제로 보기 보다 사회 문제로 본다는 해석을 할 수 있다. 이는 공정의 문제를 우리나라 정치 세력이 해결할 수 없는 일로 바라보거나, 그들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최지연 씨는 공정한 교육 제도 도입을 강조하면서 정당에 대한 평가는 유보했다. 그는 오히려 “또래에서 ‘너 조국 사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라고 물어볼 수 없는 분위기”라며 “제 바람은 약간 정치적인 이야기도 자유롭게 털어놓고 할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한다”고 정치적이고 민감한 주제를 내놓고 대화할 수 없는 사회 분위기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호성 씨의 경우엔 현재 우리나라의 보수-진보 정치 진영이 모두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 씨는 “보수는 너무 극단적이고, 막말이 많은 것 같고, 진보는 진보 같지 않아요. 미국의 샌더스 정도는 되어야 진보라고 볼 수 있는데 (우리나라는) 색채가 옅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를 언급하면서 “보수는 본연의 가치를 잃어버린 것 같아요. 황교안 대표가 대학 강연가서 청년들 요즘 일 안 하네 이런 식으로 이야기했다고 들었는데, 약간 서운한 면이 없지 않은 것 같아요”라고 덧붙였다.

박선호 씨의 경우엔 정치에 대한 기대가 별로 없고, 정치 효용성을 느끼지 못하는 축에 들었다. 2017년 대통령 선거에서 첫 투표를 한 그는 오는 총선은 투표를 할 생각이 별로 없다. “제 삶이랑 연관이 있나 싶기도 하다”며 그는 막연하게 “착한 사람, 도덕적인 사람”을 국회의원의 조건으로 꼽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월 3일 새해 첫 현장 행보로 정부 지원 창업공간 ‘메이커 스페이스’를 방문해 청년 벤처창업가들과 기념촬영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20대, ‘공정’ 의제로 모아낼 키워드 다수
지역차별, 남녀차별 문제도 관심사

상대적으로 다른 연령대에 비해 대구·경북 지역 20대들은 조 전 장관 문제를 비롯해 ‘공정’ 의제로 모아낼 수 있는 키워드를 많이 이야기했다. ‘공정’은 청년 세대와 문재인 정부가 초반부터 불화했던 의제 중 하나다. 2018년 평창올림픽 당시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 문제를 두고 불거진 공정성 논란이 대표적이다.

천관률 시사인 기자는 ‘문재인 정부를 흔든 ‘공정의 역습’’이란 기사에서 당시의 청년 세대 민심 이반 현상을 이들이 보편 원리의 공정보다 비례 원리의 공정에 더 소구되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조 전 장관 사건에 20대가 좀 더 반응하는 이유도 여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비례 원리가 노력한 만큼 보상받도록 하는 것이라면 보편 원리는 사회 구조적 불평등을 보정하는 데 방점이 찍힌다. 남녀차별이나 지역차별 문제가 여기에 해당한다.

조국 전 장관 문제에서 비례 원리의 공정에 민감성을 보였다면, 동시에 보편 원리의 공정 문제에도 대구·경북 20대들은 관심을 갖고 있다. 특히 남녀차별 문제는 수도권과 지역의 차이와 별개로 20대 여성들에겐 뜨거운 감자다. 여성 안전, 남녀차별 문제를 언급하는 20대 여성은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조혜은(21) 씨는 새로 뽑히는 국회의원이 해결해야 할 과제로 ‘심신미약 감경’을 꼽았다. 그는 “성폭력 관련 기사를 많이 보니까, 심신미약이라고 봐주고 이런 부분은 없어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더라. 그런 법들이 생기면 좋겠다”고 말했다.

허은채(25) 씨도 “여성인권 관련 청원이 계속 올라오는데 미온적인 답변만 들었던 것 같아요. 처벌 형량이라든지, 밤에 안심 귀갓길 같은 걸 많이 하거나 실질적인 불안을 해소해줬으면 좋겠어요”라고 바랬다. 그는 “여성 시위는 엄청 많은 사람이 모여도, 제가 느끼기엔 말로만 때우려 하는 피드백이 전부였다고 느껴진다”고 덧붙였다.

‘취업’이나 ‘일자리’ 같은 키워드로 언급된 ‘먹고 사는 일’ 의제에서도 ‘블라인드 채용 확대’나 ‘지역할당 확대’ 같은 보편적 공정 키워드가 언급됐다. 취업 준비를 하고 있다는 김근희(24) 씨는 “학점이 안 좋다고 해서, 학교가 안 좋은 곳이라고 해서 질이 떨어지는 건 아니잖아요. 블라인드 채용을 확대를 해줬으면 해요”라고 했고, 20살인 조현준, 김병재 씨는 “지역할당제를 늘리는 게 좋아 보인다”고 했다.

물론 자기 편의적인 입장에서 공정 키워드를 언급하는 사례도 있다. 지역할당제 확대를 주장한 김병재 씨의 경우 남녀차별 문제에선 남성이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 씨는 “남녀갈등이 많잖아요, 요즘. 오히려 남자가 역차별당하는 것도 많은 것 같아요”라며 이른바 ‘곰탕집 성추행 사건’을 예로 들었다.

그는 “남자가 고소당하면 자기가 안 했다는 걸 증명해야 되는 게 어렵다. 무고죄 처벌을 강화하고 적절한 기준이 생겼으면 한다”고 했다. 그의 주장을 종합하면 그는 스스로 지역이어서 차별당하고 남자여서 차별당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셈이다. 지역 차별은 사회 구조적 측면에서 접근하지만, 남녀차별은 그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천관률 기자는 앞의 기사에서 “문재인 정부가 만난 일련의 ‘공정 스캔들’은 아주 의미심장한 예고편이었다”며 “비례 원리와 보편 원리의 단층선은 결국 임기 내에 중대한 균열로 떠오를 수 있다. 단일팀 파동으로 빠진 지지율은 일시적이겠으나, 이 잠재적 균열이 진정으로 중대하다는 징후는 일시적일 수 없다”고 결론 지었다. 만 18세 선거권 확대가 이른바 진보 진영에게 이익으로 돌아올지는 그래서 지켜보아야 할 일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