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선우] '기생충' 그리고 기생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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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1 18:49 | 최종 업데이트 2020-02-11 18:49

2019년 5월부터 10개월 동안 전 세계가 봉준호 감독에 열광하고 있다. 봉 감독이 연출한 <기생충>이 제72회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을 시작으로 지난 10일(미국 현지시간 9일) 제92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감독상, 국제장편영화상, 각본상을 수상하면서다. <기생충>은 지난 1년간 온 나라에서 열린 58개 영화제와 62개 시상식에서 167개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한국 영화를 넘어 세계 영화계 역사에 새로운 획을 그었다.

국내 주요 종합일간지를 비롯해 모든 언론은 찬사를 쏟아냈다. <기생충>과 봉준호 감독에 관련한 모든 뉴스가 총망라됐다. <기생충>의 아카데미 4관왕을 역사적 승리로 표현한 조선일보는 봉 감독이 월북 소설가 구보 박태원의 외손자라는 점을 언급하며 예술가 집안의 핏줄을 강조했다. 한겨레는 그간 <기생충>의 전 세계 영화제, 시상식 수상을 정리한 기사를 내보냈다. SBS는 <기생충> 쾌거에 투자와 배급을 맡은 CJ의 역할이 컸다는 것을 강조한 기사를 선보였다. 상당한 비용을 들여 힘을 보탠 게 수상에 도움이 됐다는 것이다.

대구지역에 기반을 둔 언론사들은 봉 감독이 대구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점을 내세워 기사를 내보냈다. 아카데미극장 가던 대명동 소년이 할리우드를 정복했다는 제목을 달거나, 봉덕동에서 출생한 봉 감독이 남도초등학교 3학년까지 다녔던 점과 봉 감독의 어린 시절 추억이 주 내용이다. ‘대구 아들 만세’와 ‘세계적 거장이 된 달구벌 소년’이라는 제목이 붙기도 했다. 이들 기사에는 로컬의 한계를 깨부수고 세계로 나아간 봉 감독을 ‘출신’이라는 로컬에 가둔 늬앙스가 잔뜩 묻어난다.

총선 출마자들과 지방자치단체장들은 앞 다퉈 “봉 감독이 대구 출신이어서 더욱 자랑스럽다”면서 봉 감독을 주제로 한 사업과 공약을 구상하고 있다. 어릴 적부터 영화감독을 꿈꿨다는 봉 감독은 유년 시절을 보낸 대구에서 어떤 영향을 받았을까, 아카데미극장과 만경관에서 영화를 보던 추억을 통해 영화적 영감을 얻었을까. 봉 감독과 대구의 인연은 유 년시절 10년 정도다. 아버지 고(故) 봉상균 전 한국디자인트렌트학회 이사장이 대구에서 교수 생활을 할 때였다.

그 후 봉 감독과 대구의 인연은 2017년 <옥자> 홍보차 만경관을 찾았을 때 봉 감독이 대구의 추억을 언급하는 것이 전부였다. 봉 감독의 <기생충>과 대구를 굳이 연관시킨다면 영화의 주제인 빈부격차와 계급갈등이다. 전국에서 경제 관련 지표가 위기인 반면에 부자가 많고 소비 수준은 높은 대구와 어울린다.

▲2017년 6월 ‘옥자’ 일본 상영 당시 봉준호 감독 ⓒDick Thomas Johnson

봉 감독과 대구의 인연이 다시 알려지기 시작한 건 지난해 5월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소식이 전해진 무렵부터다. 그때부터 봉 감독은 자랑스러운 대구의 아들이 됐다. 아카데미 4관왕 소식이 전해진 뒤에는 봉준호 영화박물관, 봉준호 공원, 기념관을 지어야 한다는 주장이 쏟아지고 있다. 이는 봉 감독의 의사와는 무관하고, 대구시민들을 위한 취지와도 거리가 멀다. 지겹게도 반복돼 온 행정적·정치적 클리셰에 불과하다. 마블과 협의조차 없이 마블 슈퍼히어로 테마파크 조성사업을 발표해 비판받는 강릉시와 뭐가 다른가. 봉 감독의 인기에 편승하려는 진정한 기생충의 의미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기생충>에 대한 열광은 영화계의 보이지 않는 장벽을 깨부순 데 있다. 아카데미 92년 역사상 비영어권 영화가 작품상을 받은 것은 <기생충>이 처음이다. 정성일 평론가는 언론 인터뷰에서 “미국 영화나 유럽 영화가 아닌, 한국 영화가 세계 최고 권위의 영화제와 영화상에서 큰 상을 받았다는 것은 한국 영화의 경사를 넘어 세계 영화사를 다시 쓴 기념비적 사건”이라고 풀이했다. 봉 감독은 로컬의 한계를 깨부수고 한국 영화의 위상을 드높였고,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은 인종차별과 전통 영화문법에 대한 숭배와 편향에 머물렀다는 비판에서 벗어났다.

아카데미 4관왕 소식이 전해진 뒤,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샌드라 오의 축하다. 인종차별이 공공연한 할리우드에서 한국계 배우로 활동해 온 그는 <기생충> 수상 소식에 열광했다. 동병상련의 심정이었을 것이다. 샌드라 오는 2005년 시작돼 인기를 끌고 있는 미국 의학 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로 스타덤에 올랐지만, 배우로 성공하기까지 스트레스와 희생이 뒤따랐다. 그가 지난해 1월 미국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을 받기까지 얼마나 우여곡절이 많았을 지 짐작된다. 샌드라 오는 “주류 사회에서 배역을 얻는 데 어려움을 많았다”고 말했다. 옹졸한 지역주의에 빠져 형용사와 부사로 덮은 축하와 진정성이 담긴 축하는 느껴지는 감동 자체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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