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철호 칼럼] 한상균 위원장의 연행, 그리고 남겨진 진보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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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14 11:49 | 최종 업데이트 2015-12-14 12:03

마음도 식힐 겸 성주군 초전면에 있는 이발소에 갔다. 마침, 이발사와 이발을 금방 끝낸 사람이 TV를 보다가 말고 “한상균이 저래도 한 달 수입이 중소기업 사장보다 많고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 놈인데...쯧 저런 범죄자를 조계사에서 감싸 안다니!!” 이발사는 내가 당연히 맞장구를 쳐 줄 것이라는 생각으로 나에게 이야기를 건넸다.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가벼운 언쟁을 벌였다. 그러자 이발사는 억울한 듯 눈자욱이 충혈이 되었다. 그래서 이발은 어쩔 수 없이 했지만, 도저히 면도할 용기가 나지 않아 집에 오니, 머리가 왜 그 모양이냐 한다. 이발사가 머리도 대충해버린 모양이다.

조선 말기부터 수많은 격동의 시기에 지배자들로부터 받은 억압과 탄압의 상처들을 단 한 번도 제대로 치유 받지 못한 우리 민초들의 삶, 그래서 지배계급의 논리와 같은 괘를 가지는 이발사의 모습과 다르지 않은 것일 것이다.

박근혜 정권-새누리당(극우정당)

대통령과 당의 수직적 질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대다수 서민의 팍팍한 삶에 대한 이해부족, 사람을 귀하게 여길 줄 모르는 자세,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를 알 수 없는 분노. 후보 시절 그나마 약속했던 복지확대 약속은 사라지고 자신을 향한 섬김, 충성을 강요하면서 이에 맞서는 태도를 가지는 사람에게는 차가우리만치 배신의 칼날로 응징하였다.

또, 지난 시기 수많은 투쟁의 결과로 이루어진 사회적 합의를 통해 구성된 민주주의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정책이 급격하게 훼손되었다. 선친에 대한 집착과 박근혜 자신의 내면 불안이 겹쳐지면서 보복성 정책이 당에 하달됐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은 고사하고 철저히 박근혜 정권의 행동대원으로 전락하며 극우정당으로 자리매김 했다.

새정치민주연합(보수정당)

절차적 민주주의를 선호하며 민족관계에 다소 유화적이고 극우세력 새누리당에 비해 다소 도덕적 우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지난 시기 노동자·농민에게 고통을 주는 재벌중심 경제정책으로 신자유주의를 과도하게 적용해 서민정책은 새누리당과 근본적 차이가 없다. 현재는 새정치민주연합 이해관계로 인한 내부다툼으로 침몰 직전에 있다. 박근혜 정권은 새정치민주연합을 정적으로 선명하게 규정한다. 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은 박근혜 정권을 국가지도자로서 인식하고 대응함으로써 유약할 따름이며 더는 견제세력으로써 기능마저 상실한지 오래되었다.

한국정치는 보수의 자리를 극우가 차지하면서 보수가 진보의 자리를 밀어냄으로써 사실상 진보는, 자신의 자리를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고 하나의 권력으로 보이지 않는다.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12월10일 조계사). 사진=노동과 세계 변백선기자
▲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12월10일 조계사). 사진=노동과 세계 변백선기자

조계사에서 기자회견을 앞두고 조계사 신도들의 인간띠 사이에 걸어 나오는 모습은 무척이나 외롭게 보였다. 한상균 위원장과 사회운동을 하는 활동가의 모습이 겹쳐져 보였던 게다. “기자 여러분! 여기에 왜 오셨습니까? 내가 잡혀가는 것을 보러 오셨습니까? 한 번이라도 노동자들의 요구가 무엇인지 다루어 준 적이 있습니까?” 하고 절규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참 뭉클했다.

그 짧은 몇 마디는 노동자의 처지를 정확하게 짚어낸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 언론은 한상균 위원장이 연행되는 모습, 노동자가 권력에 감금되는 모습을 담고 싶은 것이지 노동법 개악으로 인해 빚어질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통스러운 삶과 절규를 담아낼 생각은 애초에 추호도 없었을 게다.

진보가 취약한 한국사회에서 이제 보수마저 실종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이 연행되는 모습을 우리는 똑똑히 기억하고 아로새겨야 한다. 한상균 위원장이 극우세력에게 끌려가고 있었던 그 시각 보수는 무엇을 하였는지,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보수는 극우와 함께 ‘노동법을 분리처리’라는 이름으로 함께 하였다. 한상균 위원장의 절규는 단 한 번도 귀 기울이지 않았던 보수의 민낯이다. 이제 우리는 진보와 보수는 다른 가치와 다른 시각에 있다는 사실만이라도 대중들에게 분명하게 드러내 주어야 한다.

그중에서 예를 들면, 한 달 종합소득이 부동산 포함 4000만 원 넘는 사람들에게 월 복지세 50%, 실제 재산 400억 넘는 사람에게는 사망세 60% 등 이런 과감한 요구를 하여야 한다. 이는 이미 북유럽과 북미에서 실정에 맞게 시행하고 있는 정책이다.

보수와 극우가 함께하고 노동자에게 여전히 가혹한 12월의 끝자락, 이제 저들의 장단을 집어치우고, 보수와 극우가 함께 이야기하는 합리성을 떨쳐버리고 제대로 된 우리의 이야기, 진보의 이야기를 할 때다. 진보의 이야기를 노동자 농민 그리고 빈민의 요구와 인간다운 삶을 염원하는 이야기가 진보의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줄기차게 쉽고 재미있게 우리의 언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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