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벽청야(堅壁淸野) 푸른 밤에] (2) 잠과 밥 / 설날 / 정월 초이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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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연재>
[견벽청야(堅壁淸野) 푸른 밤에] (1) 섣달그믐

■ 잠과 밥
한 해의 운수를 알기 위해
접시에 들기름이나 아주까리기름을 담아
실이나 창호지를 꼬아 심지를 만들어
식구들 수대로 불을 밝힌다
불이 선명하게 밝으면
그해는 건강하고 운이 좋고
불이 흐릿하면 운이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상하게도 작은형의 불빛이 흐렸다

그믐밤에 잠을 자면 굼벵이가 되어
닭 모이가 된다는 어머니 말에
잠은 쏟아지는데 닭 모이가 되지 않으려고
접시불만 보다가 머리를 태우기도 했다
머리카락 타는 노린내가 방안을 채웠다
에라, 모르겠다
이불 속으로 들어가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잠이 들었다
밖에서는 일어나라는 아버지의 헛기침 소리가
꿈결에도 들렸다
찬바람이 이불 속으로 파고드는가 싶었는데
아버지의 신발짝이 날아온다
아버지가 늦잠을 자는 작은형과 나를 깨우는 방식이다
우리 형제들은 아버지를 무서워했고
아버지 말씀은 우리 집의 법이었다

아침에만 밥을 했다
보리와 무, 그리고 쌀 한 줌
솥 밑바닥에는 무를 썰어서 깔고
중간에는 보리, 그리고 다시 쌀 한 줌
그렇게 다섯 식구의 밥을 지었다
밥을 풀 때는
맨 위의 쌀과 보리는 잘 섞어서 아버지 밥으로 드리고
중간의 보리와 무를 섞으면 작은형과 내 밥이 되었다
마지막 솥바닥엔 무 누룽지가 남는데
물을 부어 끓여서 나무주걱으로 문지르면
숭늉이 되었다
아버지 몫으로 한 사발을 드리고
남는 것은 어머니가 드셨다
어머니는 동생에게 젖도 먹여야 하는데
멀건 숭늉으로는 배를 채울 수가 없어
불이 꺼진 아궁이 앞에 앉아
담배로 허기를 달래셨다

점심은 거의 건너 뛸 때가 많았고
저녁은 쌀 한 줌과 김치를 넣고 국시기(김치국밥)를 끓였는데
숟가락으로 휘휘 저어야
겨우 밥알 구경을 할 수 있었다
작은형과 나는 한창 뛰어놀 나이인데
옷이 떨어진다고
애들과 어울려 놀지도 못하게 하였다

▲박산골 아이들 묘소. 큰 뼈는 남자, 중간 뼈는 여자, 작은 뼈는 아이들로 분류한 후에 화장해서 묘소를 만들었다고 한다. (사진=김성경 제공)

■ 설날
전쟁이 나고 사람이 죽어도 밤은 오고 새벽은 다시 밝았다
1951년 2월 6일(음력 1월 1일) 설날,
새해 아침 낯을 씻고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아버지께 세배를 하고 큰집으로 차례를 지내러 간다
증조부께서 슬하에 할아버지 두 분을 두셨는데
청용마을에 큰집이 있고 내동에는 작은집이 있다
큰집부터 먼저 가야하는데 가마니로 덮어놓은
시체 옆을 지나가려니 너무나 무서웠다
죽은 시체가 손을 내밀어 발목을 끌어당길 것 같았다
어머니 치맛자락을 꼭 잡았다
그곳을 지나서 반시간
큰집으로 가는 길은 그래도 행복했다

큰아버지께 세배하고 나오니 대청마루 차례상에는
산해진미로 가득하다
큰집은 종갓집인데
주변마을의 모든 일가친척들이 모여서 차례를 지낸다
덕담을 하고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
시국이 워낙 불안하다며 모두가 걱정을 했다
어제 내동에서 군인들의 행동이 예사롭지 않았는데,
피난을 가야할지 말아야할지
의논을 돌렸으나 어른들은 결론을 내지 못했다

어른들의 걱정과는 상관없이 애들은 먹는데 정신이 팔렸다
먹을 게 부족한 시절이니 항상 배를 채우지 못했다
그러다가 설이나 추석이 되면 배탈이 나도록 먹는다
결국은 먹은 것이 살로 가지 못하고 변소만 들락거린다
저녁때가 되면 중병을 앓은 것 같이 눈이 쑥 들어간다
먼 데서 여우가 울었고
어디선가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 정월 초이틀(2월 7일)
정월 초하루가 무사히 넘어갔다
이튿날은 마을 어른들께 세배도 하고
신혼의 부부들은 타지에 있는 처가로 인사를 갔다
거창군에서도 가장 산골인 신원면은
그믐날 군인들의 행동이 예사롭지 않았기에
한가로운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큰집 식구와 우리 집 식구를 합하면 대식구다
많은 식구를 거느리고 어디로 피난을 가야할지 문제였다
짧은 겨울 해는 벌써 지고 또 밤이 찾아왔다

나는 배탈이 나서 어제부터 초죽음이 되었다
내가 밥을 먹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저녁상은 물리어졌고
방에는 석유 등잔불이 밝혀졌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아랫목 차지를 하고 누워
큰어머니와 어머니의 이야기 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하는데 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낯선 사람이 뭐라고 했는지
큰어머니가 등잔불을 끄셨다
캄캄해진 방에 수상한 사람이 관솔불을 들고 들어와
선반 위의 물건을 뒤졌다

방에는 큰어머니와 어머니,
사촌 누나 둘, 작은형, 나와 여동생이 있었다
우리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제자리에 죽은 듯 엎드려있었다
괴한의 발길이 옆구리를 스칠 때에는
오금이 저려오고 죽을 듯 무서웠다
그 괴한이 기역자로 되어있는 선반을 뒤져서
무엇을 가져갔는지 모른다
그가 떠나고 얼마 안 되어 별안간
앞산에서는 콩을 볶는 듯 총소리가 들렸다

신원면 청수리 청용마을 앞산을 ‘안산’이라고 불렀다
높지 않았지만 동서로 뻗은 산이었다
그 산 왼편 ‘도독골’ 상공으로
벌건 불덩어리가 수없이 날아다니며 폭음을 냈다
나는 큰집의 대청마루 기둥에 숨어서
겁도 없이 불덩어리를 바라보았다
콩을 볶는 듯 총소리가 들렸다
한참을 볶아대는가 싶더니
신원면사무소 있는 곳이 환해졌다
신원면사무소가 불에 타고 있었다
그 소식은 이튿날 날개 돋친 듯이 번졌다

지난해 12월 5일에도 경찰과 산사람이
서로 총질을 해대다가
경찰과 방위대 여럿이 죽고 다쳤다
똑같은 상황이 닥쳐올까 사람들은 불안에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