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강남역 살인' 추모 공간 철거, "더 유지할 자신 없었다"

중앙로역서 흉기 든 남성 체포...현장 자원봉사자들의 공포, "20분 차이로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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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23 16:42 | 최종 업데이트 2016-05-23 16:42

대구 중앙로역 2번 출구 '강남역 살인 사건' 추모 공간을 꾸린 이들이 "더 유지할 자신이 없었다"며 스스로 철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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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도시철도 1호선 중앙로역 출입구 앞, 추모 메모와 조화가 모두 철거됐다.

지난 22일 오후 8시 50분 경, 대구 지하철 중앙로역 2번 출구 앞 '강남역 살인 사건' 추모글과 조화가 모두 철거됐다. 이 공간은 사건이 일어난 17일부터 SNS 등에서 자발적으로 모인 시민들이 꾸렸다.

철거 자원봉사를 모집한 기린(가명, 29세) 씨는 "더 이 공간을 유지할 자신이 없었다"며 "훼손 사건도 몇 번 있었고, 공간을 지키고 있는 자원봉사자들에게 욕설을 하거나 주먹을 들어 올리는 사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닷새 동안 이 공간은 두 번이나 훼손당했다.

철거된 메모지는 강남역, 대전역, 부산역 메모지와 함께 서울 여성가족재단으로 옮겨진다. 대전, 부산도 이날 오후 10시경 철거를 마무리했다.

기린 씨는 "젠더 권력 사회에서 사는 여성으로서 구조적 피해뿐 아니라 직접적인 피해자가 된 사건이다. 그래서 더 안타깝고 공감이 됐던 것 같다"며 "그 마음을 오랫동안 보호하기 위해 함께 시작했다. 이 공간은 옮기지만 이를 계기로 약자의 권리가 보장받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중앙로역서 흉기 든 남성 체포...
현장 자원봉사자들의 공포, "20분 차이로 살아남았다"

이날 인터넷에 공지된 철거 작업 시간은 오후 8시부터 9시 30분까지였다. 예상보다 자원봉사자가 많이 모여 40분가량 작업이 일찍 끝났다. 철거 작업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9시 20분경 중앙로역에서 흉기를 든 남성(53세)이 경찰에 체포됐다.

이 남성은 주머니에서 공업용 커터칼을 넣었다 뺐다 하며 주변을 배회했지만, 별다른 범행은 저지르지 않았다. 경찰 역시 "강남역 사건 추모 현장과 연관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현장에 있던 자원봉사자들에게는 공포였다.

기린 씨는 "그분이 범행을 저지르지는 않았지만 저희가 공지한 시간까지 철거가 진행됐다면 누구든 커터칼 피해자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하니 끔찍하다"며 "저는 철거한 메모지를 들고 미리 일어났지만, 나머지 자원봉사자들은 근처 분식집에 있었다. 제가 모은 자원봉사자까지 피해자가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운이 좋아 20분 차이로 살아남았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경찰은 이 남성이 신분증을 제시하지 않아 현행범으로 체포하고 경범죄처벌법 위반 혐의로 즉결심판을 청구했다.

▲대구도시철도 1호선 중앙로역 출입구 앞에서 시민들이 여성혐오 살인에 대한 추모의 쪽글을 남기고 있다. [사진=독자 제공]
▲대구도시철도 1호선 중앙로역 출입구 앞에서 시민들이 여성혐오 살인에 대한 추모의 쪽글을 남기고 있다. [사진=독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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