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교협 시사 칼럼] 참을 수 없는 엉뚱한 집에 대한 상상 / 최홍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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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위와 학력이 나를 말하고 집은 얼마나 비싼 것이냐에 따라 나의 가치가 정해지는 희한한 세상이다. 일하고 돌아와서 자신만의 공간도 없이 거실 소파에 누워 TV를 장악하는 것이 인생의 꿈이었던가? 우리나라의 아파트는 가족 구성원에게, 특히 남자들에게는 참 아쉬운 구석이 많은 구조인데, 대개 거실의 소파 한구석이 집안 가장의 가장 아끼는 장소라는 애처로운 현실이다. 집이라는 것은 보금자리, 미래 가치, 교통, 부동산 가치 등도 현실적으로 중요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공간’에 대한 욕망 실현이어야 하는 것 아닐까.

참을 수 없는 공간적 속박은 이젠 그만하자. 공간에 대한 엉뚱한 상상을 저질러 보자. 그리고 실행해 보자. 상상대로는 다 하지 못하더라도 현실을 반영하여 최선을 다해보자. 그리하려면 기존의 집에 관한 문법을 모두 다시 한번 검토해 보자.

오로지 나와 가족만의 공간인 단독주택의 꿈을 꾸고 그걸 실현해서 지금까지 오는데 대략 10년이 걸렸다. 이제 정식 사용승인(준공)된 지 3년이 되어간다. 설계하고 건축하는 과정은 ‘집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문부터 집의 각 요소인 방, 침대, 공동거실, 마당, 작업실 등에 대해 그 근본의 존재 이유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막상 완성하고 집을 꾸며가는 과정에서 왜 더 과감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가득하다. 본 글은 머리속에서 맴돌았던, 경제력만 된다면, 그리고 대중적 가치를 무시할 수 있는 배포가 나에게 더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가진 아이디어들에 대한 배출이다.

어려서부터 커다란 원룸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10평 수준이 아닌 30~50평 정도의 커다란 하나의 공간에 적당히 칸막이나 가구로 공간을 구획하고 자유롭게 노니는 구조를 상상했다. 원룸인 만큼 공간의 배치는 언제든지 바꿀 수 있다. 최근에는 모 쇼핑몰을 가서 상상을 해본 것인데 중앙에 커다란 농구장 같은 비어 있는 거실이 있고 거기를 퀵보드나 스케이트보드로 오고 가고 저 멀리 벽에는 방들이 벽에 붙어 있는 실내운동장 같은 나의 집을 상상해 보았다. 이런 상상 덕분이었을까, 현재 지하층 개인 작업실은 나름 널찍한 공간에 공부 책상, 작업 책상, 놀이 책상 등 책상 3개를 확보하고 당구대와 내 마음대로 오디오를 아무 때나 틀어대는 환경을 갖추는데 성공했다. 한켠에는 양쪽인 트인 책장으로 구분된 침대공간이 있다. 상상보다는 초라하지만, 보통의 아파트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화려함이다.

원룸 형태의 극단적인 상상을 하나 더 소개하자. 집을 설계한 분과 나눈 대화 중 인상적이었던 것인데, 그분은 아이디어를 툭 던지듯이 했지만, 필자는 나름 진지하게 그런 구조를 구현할 방법에 대해 고민을 한참 해본적이 있다. 그 구조는 원박스(One box)구조의 집인데, 한 변이 10미터쯤 되는 3차원 콘크리트 박스공간을 생각하면 된다.

수평으로 긴 슬릿형 창문이 나 있고 바깥은 충분히 단열 처리를 한다. 핵심은 내부인데 천장이 매우 높은 단일한 육면체의 주사위 같은 공간이 덩그러니 있고 그 내부에 방과 같은 공간을 3차원적으로 배치하는 것이다. 굳이 1층, 2층으로 나뉠 필요가 없다. 마치 조그만 오두막들이 들쑥날쑥 크기와 높이가 다른 형태로 제작이 가능할 것이다. 심지어 천장에 매달린 타잔형 오두막도 가능할 것이다. 이런 오두막식의 방은 각자가 창문이 있을 수도 있어 옆집(옆방)과 아랫집 창문 너머 손을 흔들어 볼 수도 있겠다. 내부공간의 오두막은 목재등으로 구성하여 사용하다가 지겨우면 부분적으로 철거하고 다시 만든다.

집을 놀이공원화 하자. 유투브의 한 꼭지에서 본 것 중에서 집을 아예 거실에 텐트를 칠 수 있게 하여 캠핑장으로 활용하고 모든 의자와 도구 등은 캠핑용구로 채운 집이다. 일반가구에 비하면 캠핑용구는 저렴하다. 마당은 거실과 연결된 야외 바베큐장이다. 잠은 실내에 친 캠핑텐트에서 잔다.

놀이공원 차원에서, 집의 천장이 높은 구조라면 한 벽면을 스포츠 클라이밍 설비를 설치하자. 4미터 정도 이상의 높이라면 충분히 즐길 만할 것이다. 필자도 초기에 견적도 받아가면서 지하공간에 구체화했으나 건축이 늦어지며 흐지부지된 아이디어다.

유치원에 보통 설치되어있는 플라스틱 슬라이드 놀이기구를 집에 설치하자. 좀 폼나게 하려면 스테인리스 강판을 사용한 스틸 슬라이드도 가능하다. 2층에서 1층으로 슬라이드 타고 내려오는 것이다. 다만 스틸 슬라이드는 제작 가격이 엄청나게 높다는 것이 단점.

우연히 관광객으로 살짝 구경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던 작가 김정운의 여수의 집을 소개해 본다. 김정운 씨는 평시에도 색다른 시각과 달변의 보유자이며 창조란 개념은 편집이라고 주장하고 평시 언행이 얽매여 있지 않은 자유로운 사고의 인물로 평가받는다. 김 작가의 집은 위에 언급한 박스구조의 공간과 비슷한데 미역 창고라는 모티브로 창고의 구조를 살린 도선관형 집이다. 6미터쯤 되는 높은 천장에 벽의 2층 바닥에 해당하는 높이에서 벽에 붙은 복도를 만들어 넣고 그 중간쯤 복도를 넓혀 자신의 책상과 연구공간을 배치하였다. 1층 바닥에는 사람과 담소할 수 있는 소파 공간과 음악감상실 그리고 음식 등을 준비할 수 있는 주방과 다용도실 정도가 있고 나머지 전체 벽면 공간은 수만 권의 책으로 장식되어 있다. 웅장하다. 그리고 묘한 안정감을 준다. 단순한 구조이므로 단열도 우수한 편이라 실용성도 있다. 잠자는 공간은 외부에 별채로 15평 수준으로 따로 마련한 구조. 혼자 또는 친구와 즐기기에 아주 재미나고 좋은 구조라 생각한다.

아마도 여기 열거한 것 외에도 독자들의 상상까지 더해진다면 수년간 연재를 해도 끝나지 않을 것이다. 현실적인 제약을 벗어나서 상상의 숲으로 들어가기까지 시간이 걸리겠지만. 상상에 상상이 더해질 때 인간은 행복하다. 사실 우리나라의 미친 듯한 가격의 아파트라면 그걸 대치해서 상상의 집을 짓는데 충분히 가능한 액수가 되리라 본다.

전원의 삶에 대한 상상, 층간소음 없는 공간, 평시 꿈꾸던 작업실을 소유하는 기쁨, 남들과 다르지만 나에겐 정서적으로 충만한, 참을 수 없는 엉뚱한 집이 생각보다 가까이 있지 않을까.

최홍순 경북대학교 IT대학 전기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