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수 칼럼] 3선 연임제한 없앤 이기흥, 스포츠의 암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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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체육회 제31차 이사회가 열린 5월 31일 10시, 대한체육회 주변은 시위대의 외침으로 뜨거웠다. 대한테니스협회의 관리단체 지정과 체육회장의 무한 연임을 위한 정관 개정안 심의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사회는 체육계의 고질병으로 지적된 조직 사유화 문제를 거수기처럼 통과시켰다. 이제 문화체육관광부의 정관 승인절차만 거치면 체육계에서 이들의 기득권은 더욱 공고해지게 된다.

▲이기흥 대한체육회 회장 [사진=대한체육회]

이기흥 회장은 얼마나 훌륭한 업적을 남겼나?

현 이사회가 연임의 멍석을 깔아줄 정도로 이기흥 회장의 재임 8년은 훌륭했는가? 그의 재임 기간은 한국 엘리트 스포츠의 암흑기라 부를 수 있다. 48년 만에 올림픽 최소인원 참가 유력, 여자핸드볼 외 모든 구기종목 탈락, 남자축구의 10회 연속 출전 좌절, 남자체조의 9회 연속 출전 좌절. 투기 종목의 뚜렷한 하향세, 2021년 도쿄올림픽에서 종합 16위로 37년 만에 최악의 성적표, 2004년 아테네부터 2016년 리우 올림픽까지 유지하던 10위권 좌절 등 그는 수많은 좌절의 역사를 썼다.

4년 전, 故 최숙현 선수가 지도자들의 가혹한 폭력에 운명을 달리했을 때였다. 국회가 승리지상주의에 경도된 스포츠 패러다임을 바꿔보고자, 국민체육진흥법의 목적에서 ‘국위선양’을 삭제했을 때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대한체육회 정관에 명시된 ‘국위선양’을 유지했다. 이렇게 남다르게 엘리트 스포츠를 챙기던 그는 엄동설한에 선수들의 정신력이 부족하다며, 해병대에 캠프까지 차린 시대착오적 인물이 아니었던가? 그런 그가 스스로 스포츠대통령의 자격이 충분하다며 장기집권을 선포했다.

이기흥 재임 8년, 국민체육은 어디에 있는가?

이기흥 회장은 엘리트 스포츠에만 좌절의 역사를 만들지 않았다. 최근 저출생이 심각한 가운데 체육, 스포츠의 기반이 무너져 내리는 현상을 목도하고 있다. 이때 누구보다 풀뿌리 체육을 세심하게 들여다봐야 할 사람이 바로 대한체육회장이 아닌가? 그의 행보를 보면 IOC 위원으로서 국빈대우에 취해 화려한 외유만 즐기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많은 보좌진을 거느리는 것은 물론,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활약을 핑계로 수많은 해외 출장에도 모자라 스위스에 출장소까지 만들었다.

그러는 동안 청소년들의 신체활동지수는 OECD 국가 중 최하위에 머물러 있다. 또 유소년 스포츠는 한두 종목을 제외하고는 선수가 없어 고사 직전에 와 있다. 더구나 본인의 재선 공약 1호였던 스포츠 인권은 다시 과거로 뒷걸음질 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놔두라는 회장

이기흥 회장이 재임 기간 특별히 강조한 것은 바로 체육계의 자율성과 체육인들의 자부심이다. 문체부와 사사건건 맞서는 모습은 마치 체육인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것처럼 비춰지기도 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그의 기개는 체육계의 자율성 확보인지, 권력자의 실력행사인지 헷갈린다. 법 개정을 통해 국가가 구성한 국가스포츠정책위원회 위원 선임은 정부의 권한임에도 협의와 다르다며, 대놓고 참석을 거부하고, 자기들끼리 위원회를 새로 만들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또 온라인으로 세계를 넘나드는 현재 시점에 느닷없이 스위스 출장소를 만들겠다면서 힘없는 선수들, 행정가들을 체육관에 동원해 실력행사를 하는 모습은 일부 체육인들의 기득권 지키기로밖에 안 보인다.

그도 그지만, 대한체육회 이사들의 사유 부재는 너무나 아쉽다. 그와 함께 한 8년, 한국 체육의 암흑기에 가까운 그 기간이 그들에게 명예이자, 자부심이 될 만한 일인가? 정치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말했다. 악인은 악인처럼 생긴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평범한 이웃처럼 생긴 이들의 사유의 부재로부터 악의 평범성이 나타난다고 말이다. 선량한 이들에게서 체육계는 복마전이라는 비아냥은 그냥 들리는 소리가 아니다. 체육인들의 사유와 반성이 필요한 오늘이다.